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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 빨간 쿼카 Dec 27. 2023

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21- 대청소?!

어제부터(사실은 더 오래전부터)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는 집청소하기! 마음은 얼른 집정리하고 트리 장식하고 싶은데, 몸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눈은 일찍 떠졌는데 침대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계속 미룰 순 없지…’

큰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내쉬며 침대에서 일어나 본다. 일어나서 한약을 데울 물을 끓이고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을 살펴본다. 무엇이 필요한 지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는 이 생명체들. 어떻게 신호를 주는 것 같긴 한데 잘 몰라서 열심히 눈치껏 햇빛과 물을 조절해 본다. 물이 다 끓었다. 한약을 데우고 다시 소파에 누워 담요를 덮는다. 그래도 안방을 벗어났다. ‘쿼카 기특하다.’라고 생각할 때쯤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 늘어진 목소리로 받으니 아빠가 묻는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아직 안 일어났냐?”

“일어났어!”

“근데 목소리가 왜 아직 잠 안 깬 사람 목소리야.”

“그것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소파에 누워있기 때문일까? 무튼 난 일어났어”

“그게 뭐가 일어난 거냐.”

오전부터 전화로 투닥대는 부녀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해피엔딩이다. 맛있는 점심을 먹자로 결론이 났다. 통화를 마치고 데워진 한약을 먹고 빨래를 걷어 온다. 생활에 지장을 안 준다는 이유로 방치되었던 빨래들, 오늘은 정리해야지. 빨래들을 개고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계속 나의 마음의 짐이었던 책장도 안방으로 자리를 옮겨준다. 본가에서 가져온 책장을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어디에 둘 지 고민만 하다가 베란다에 방치해 두었는데 이제는 정말 어디라도 옮겨놔야 그다음이 진행될 것 같아 안방으로 옮겼다. 두 달 만에 자리를 찾았다. 글로 쓰니 내가 정말 게으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모든 일에 이런 것은 아니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

오늘 아침 겸 점심은 지난 저녁에 먹지 않은 들깨수제비다. 들깨수제비 키트에 애호박, 느타리버섯 그리고 꼬치어묵((?)은 냉동실을 정리하는 겸 넣었다.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을 더 넣어 끓였다. 한 번에 먹기는 양이 많아 보여 우선 반을 덜었다. 반을 먹고 나니 더 먹을 수는 있는데 배고프진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남은 반을 먹을지 말 지 선택을 유보하고 집을 정리한다.

내 간식 수납대에 엉뚱하게 놓여 있는 석고판과 나무판을 베란다에 놓은 책장에 정리한다. 이곳이 너의 제자리였구나. 건조하고 있는 도예작품은 간식들과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데 저 도구들은 좀 어색한 터였는데 딱 맞았다. 식탁(정리가 안돼 식탁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에 늘어진 우편봉투들을 비닐과 종이로 나누어 뜯고 분리 수거함에 분류하여 넣는다.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종이들은 파쇄할 종이를 모아두는 곳에 둔다. 어제 펼쳐 놓은 상자에 지금은 고민하고 싶지 않은 짐들을 넣기도 한다.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얼마나 했다고?!) 남겨둔 수제비를 마저 먹기로 한다.

수제비를 다 먹으면 한 시간 정도 집에서 정리하며 소화하고 산책과 피아노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집 앞 공원 4바퀴를 돌면 만보를 넘으니 2바퀴 돌고 피아노 연습 갔다가 다시 2바퀴를 돌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산책하는 나와 피아노 연습하는 나를 상상해 본다. 완벽하다. 실행하기로 한다. 우선은 설거지를 하고 소파에 앉아 정리할 것을 살펴본다. 정리할 것은 많지만 지금 하고 싶은 것은 없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마음의 짐에서 떨어지고자 하는 의도도 함께 담아 산책을 나선다. 오늘은 어제 그제보다는 좀 따뜻한 느낌이다. 그래도 두 바퀴정도 도니 좀 춥다. 딱이다. 피아노 학원에 갔다. 선생님은 레슨을 하고 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나는 연습실로 들어가 연습한다. 중간에 조금씩 끊기기는 하지만 두 곡 모두 양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칠 수 있다. 기분이 좋다. 40분 정도 연습하고 다시 산책을 나선다. 원래 계획은 두 바퀴였지만 걷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 한 바퀴 더 걸어본다.

도피성 산책을 다녀온 후, 한약을 먹고 저녁을 준비한다. 오늘은 호밀빵 샌드위치를 해 먹기로 한다. 호밀빵에 크림치즈, 무화과잼, 햄, 달걀 후라이 그리고 호밀빵을 다시 얹는다. 오늘도 역시 완벽하다. 호밀빵을 다 먹어서 아쉽다. 따뜻하고 배가 불러지니  잠이 온다. 건강검진에 만성 위염이 나와서 먹고 바로 눕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1시간을 자버렸다. 저런, 깨어보니 곧 내가 챙겨보는 몇 안 되는 드라마가 할 시간이다. 브런치에 오늘 글도 써야 하는데! 온갖 것들을 핑계 삼으며 어제 했던 오늘 대청소를 하겠다는 다짐은 훨훨 날려버린다. 돌아오는 주에 작은 청소들을 자주 하자! 작은 청소들이 모이면 대청소가 되겠지! 이렇게 또 나의 집 돌보기는 미뤄진다. 그래도 조금은 정리된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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