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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 빨간 쿼카 Dec 29. 2023

볼 빨간 쿼카의 병가일지

EP.22- 예방 접종

“우리 독감 예방 주사 맞으러 갈래?”

지난 목요일 필로시코스(이하 필로)와 카페에 갔을 때 필로가 제안했다.

“이번 독감 엄청 아프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 번 맞아볼까 싶어서”

하긴, 내가 병가 들어가기 전에 나의 회사에도 한 번 크게 돌았었다. 독감에 걸렸다 돌아온 아이들의 후기를 들어보면 예방하는 것이 좋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독감 예방접종을 성인이 돼서는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아프면 한 번 앓고 말지.’라고 생각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번 맞아보기로 했다. 새로운 경험하는 것도 좋고, 간 김에 지난 건강검진에서 들었던 ‘B형 간염‘예방 접종도 같이 맞으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좋아, 언제 갈까?”

필로가 알아봐 둔 곳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날짜만 정하면 됐다.

“온천 가기 전이 좋을까, 다녀온 후가 좋을까?”

 필로와 함께 근처 온천에도 가기로 해서 일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예방접종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계속 물음표로 끝나는 말을 하게 됐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에 가기 전에 맞는 게 좋지 않을까? 거기서 전염될 수도 있잖아.”

천재 필로. 그 말에 동의한 나는 가능한 가장 빠른 일정을 잡아본다.

“다음 주 월요일, 점심시간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라고 하니 1시 30분에 만나자!”

“그래! “

그렇게 오늘의 일정이 정해졌다.

오전에 피아노 연습과 운동을 마치고, 한약을 먹고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요리해서 먹기는 시간이 넉넉하진 않으니 간단히 먹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집에 있는 단백질바 하나를 먹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출발할 시간이 돼서 집을 나서본다. 집 근처라 활동량을 채울 겸 걸어가기로 한다. 건물에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어? 근데 올라가도 올라가도 예방접종 장소가 안 나온다. 뭐지? 필로에게 몇 층이냐고 물어본다.

“그 건물 아닌데?”

“으아아아아악”

당연히 이 건물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나사를 빼고 다닌다니. 뭐 하는 거니 쿼카.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건물이어서 부랴부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필로를 만나서는 괜히 민망해 필로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내가 자주 찾던 회전초밥집이 있는 건물이었다. 여기는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데…! 이게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하니 나사를 빼고 다니는 나의 상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겠다.

무튼 평일 낮에 예방접종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예방접종 문진표를 작성하고 접수했다. 접수하면서 혹시 독감, B형 간염, A형 간염 세 개를 같이 맞을 수 있는지(이렇게 보니 나 정말 게으름의 끝판왕이다….ㅎㅎ) 문의하니 두 개까지는 가능한데 3개부터는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셔야 정확하다고 답변해 주셨다. 어떻게 두 개까지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도 가능한 걸 알 수 있지? 하고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은 접종할 때 알게 되었다. 한 번에 3가지를 접종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아 의사 선생님에게 따로 질의하지는 않았다.ㅎㅎ. 의사 선생님과 문진이 끝나고 예방접종실 앞에서 대기했다. 내 차례가 되어 예방접종실에 들어가니 접종해 주시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한 종류씩 한 팔에 맞을 거라고 얘기하셨다. 아, 그래서 두 개는 그냥 접수해 주신 거였구나. 궁금증이 풀렸다. 나는 한 곳에 두 번 접종할 줄 알고 두 번이나 세 번이 뭐가 다른 건가 생각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네. 오른손을 자주 쓰는 나는 덜 불편하려고 왼팔을 먼저 걷었다. 간호사선생님께서 접종할 때나 이후 근육통이 더 아픈 백신을 왼쪽에 놓아주신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B형 간염’ 백신이었다. 어릴 때 접종했는데 항체가 안 생긴 그 백신!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데 이번에는 항체가 생기면 좋겠다. 윽, 간호사선생님이 아플 거라고 예고해 주실 만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왼쪽이 더 뻐근해 오른쪽은 신경도 안 쓰이는데, 예방접종 때도 왼팔의 고통을 느끼며 바로 오른팔을 걷어 독감 백신을 맞아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접수 장소에서 10분 정도 경과를 관찰하고 괜찮으면 가도 된다는 안내를 받고 나와 필로의 옆에 앉았다. 이 느낌 왜 익숙하지 하고 생각해 보니 작년까지 COVID-19 백신 맞았었구나.

10분 대기하는데 왠지 몸에 힘이 빠지고 안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필로가 나를 보며 왜 무기력해졌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백신 때문인가… 모르겠어. “

원래 집에 걸어가려던 계획은 취소하고 필로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도착했다. 점심을 대충 먹어서 당 떨어진 것인지 백신 때문인지 구분이 안되니 우선 여러 변인 중 하나를 제거해 보기로 했다. 냉동실에 소중히(?) 모셔둔 호떡과 도넛을 에어프라이어에 데운다.

‘저걸 먹고도 안 괜찮아지면 예방접종하고 힘 빠진 것이니 바로 누워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에어프라이어가 다 돌아가기를 기다린다. 에어프라이어 덕분에 따끈해진 호떡과 도넛을 두유와 함께 먹는다. 흠, 기분이 좋다. 점점 몸 상태도 괜찮아졌다. 아, 배고픈 거였구나 나. 다음부턴 식사를 대충 하고 밖에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머지 호떡과 도넛을 즐긴다. 나의 소식을 들은 필로는 자기도 뭘 먹으니 괜찮아졌다며, 단백질바는 간식으로 넣어 다니고 밥을 그걸로 때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점심에 이래저래 깜짝 놀랐을 내 몸을 달래기 위해 오늘 저녁은 두부 롤 유부초밥을 해 먹어야지. 사실 그저께 사놓고 안 먹어서 먹는 것이지만, 의미를 갖다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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