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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Nov 20. 2020

기.다.림.

기다림의 시간 - 얼마남지 않은 시간

우리반 아이들이 이쁩니다. 잘나서, 공부를 잘해서, 말을 잘 들어서, 성실해서.... 아닙니다. (^-^:;)

때론 피곤하고, 때론 무거운 마음으로 학급 교실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교실에 들어가면 난장에 도떼기시장에 난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쁩니다. 갑갑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고, 무거운 마음이 쉬이 가벼워지며 미소가 생깁니다. 밝은 기운을 줍니다.  그냥 이쁩니다.  부담임선생님이, 교과 담당선생님들이 2반 수업 들어갈 때면 그냥 좋다고 하는 이유도 이런것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희망일까?


지난 수요일. 출장으로 인해 몇 몇 아이에게 청소와 종례를 못하니 미안하다고 말하고 일찍 학교를 떠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학급을 봅니다. 쓰레기 떨어지기가 무섭게 "야~~ 어제 늦게 까지 청소했단 말야~" 하며 줍습니다. 9월 1일 첫 만남 후 청소 담당을 두지 않고 자발적 학급 청소를 운영하겠다고 말한 지 두달여. 오늘은 아침조회시간에 교실 바닥을 둘러 보라고 했습니다. 어떠냐며..

"깨끗해요"

가장 지저분했던 학급, 늘상 바닥에 쓰레기가 뒹굴던 학급은 의무적(?) 청소없이도 깨끗한 교실로 변해갑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스며들듯...


어제 모의고사가 치러졌습니다. 보통 시험 끝나면 해방감에 어수선한대, 정답을 빨리 알려달라는 아이, 우르르 보며 채점을 하는 아이가 보입니다. 공부를 했고, 자신의 결과를 보고 싶은 열망의 표현이겠지요. 흐믓하게 바라봅니다.

여러 우려 속에 시작한 자발적 자율학습 참여도 진행중입니다. 모두가 교실에 정숙하며 앉아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 아닙니다.   친구 모임, 산책, 게임, 수다 등등 다양합니다. 다만, 학급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존중받을 수 있게 해달라 얘기합니다. 방과후 시간만이라도 자발적 의지로 생활을 해보길 희망하며, 이 또한 자리잡을 날이 오리라 생각됩니다. 


교실에 콘센트가 없어 불편함이 보여 교실 벽면에 콘센트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콘센트 주변에 충전기, 고데기, 핸드폰이 널부러집니다. 교실청소도 불편해지고요.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학생 아이가 남는 책상 하나를 가져다 힘을 쓰며 높이를 조절하더니 콘센트 앞에 놓네요. 바닥에 널부러지던 전자기기들이 책상 위에 정리되어 놓입니다.

날이 추워지니 아이들 외투와 담요가 학급 뒤편에 널부러집니다. 여학생 아이가 어디선가 책상을 하나 구해오더니 교실 뒤에 가져다 놓고, 옷가지를 정리해 놓습니다. 옷걸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합니다.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합니다. 머물다 떠나는 교실이 아닌 교실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해 나갑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스며들듯...


요즘 아이들 자기관리(외모^^) 능력이 출중합니다. 화장, 머리 손질, 옷입기 등.  꾸미는 것도 능력이라 제대로 꾸밀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불편하지?  이런 공간있으면 어떨까? 네가 한 번 필요한 물건이나 가구 찾아보고 얘기해줄래? 네가 한 번 공간을 디자인해 볼래?" 묻기만 합니다. 

화장을 하는 아이, 누울 곳을 찾는 아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 아이, 책을 읽고 싶은 아이 등등 묻기만 합니다. 

"좋아요",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

찾아보고나 요구하거나 직접 기획해서 만들어보거나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시키는 것에만 익숙하기에 직접 해보는 것이 낯설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10년(초등 6년, 중등 3년)을 같은 교실에 생활했으니, 교실이란 정형화되고 익숙한 공간의 틀을 깨는것 또한 쉽지 않았겠지요.


아이들 교실생활에서 불편함을 봅니다. 그래도 지켜만 봅니다. '불편할텐데...  이렇게 하면 조금더 좋을텐데...' 생각과 마음이 앞서지만, 꾸욱 참으며 지켜만 봅니다.  스스로 움직일수 있게...

담임교사가 제공하면 쉬이 끝날 일이지만, 시간이 걸려도 혹여나 시작조차 안되더라도 지켜만 봅니다. 

'아이들이 이런게 필요할 거야'라는 생각이 교사만의 생각일 수도 있기에,

'내가 이렇게 정성들여 준비해줬어'라는 시혜적인 오만이 교사인 나에게 생길수도 있기에,

'필요해서 해줬는데 왜 이렇게 밖에 사용 못하지'라는 원망이 교사인 내 마음에 싹틀수도 있기에,

 제공해 줄 수 있지만, 제공되는 것은 아이들 것이 아닌 교사의 것으로 관리의 대상이 될 것이기에 직접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제 아이들의 꿈틀대고 싶은 욕구가 보입니다. 여전히 실천은 어려운 도전이겠지만요.


갑갑해하던 아침독서 교실 풍경도, 조용 조용 서로가 "쉿~~"해가며 분위기를 만들고, 책을 읽는 친구도 한 두명씩 늘어나고, 용건 있을때만 찾던 담임교사를 그냥 이야기 나누러 찾는 아이도 생기고, 자신 넋두리를 툭 던지는 아이도 생기니 이제 '1학년 2반' 학급에 담임교사로 첫 발을 내딛는 느낌이 듭니다. 

학급의 불편함에 대한 불평이 가득하다가 '아~~ 이래서 이럴수 있구나!'라며 문제 정의를 하는 친구, 꿈과 진로가 막연하다며 먼저 찾아와 힘겨움을 이야기하는 친구, 꿈이 뚜렷하여 어떻게 준비해야할 지 묻는 친구, 친구의 힘겨움을 이야기 하며 곁에서 도울 방법을 고민하는 친구, 외롭지 않게 찰싹 붙어 친구의 곁에 머물러 주는 친구 등등 늘 존재했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이 겉으로 조금씩 표출됨을 봅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 울타리에 교사인 저를 슬쩍 슬쩍 초대해 줍니다.



아이 몇 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계획서를 들고 옵니다.

놀고 싶고, 먹고 싶고, 떠들고 싶은 아이들.  아이들도 그 욕구를 꾸욱 눌러 놓고 눈치만 보다가 저와 같은 교무실에 있는 윤리교사의 바람잡이로 용기를 냅니다. 계절마다 학급 단합의 추억을 만들어야 된다며 바위공원에서 삼겹살을 구어먹자며(학기 초 보내드린 학급 버킷리스트에도 있던 내용^^) 계획서를 가지고 옵니다. 아마, 눈치보기, 준비하기, 의견모으기, 계획하기 등등 많은 부담이 있었을 듯 합니다. 자신들끼리 몰래 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해 주니 고맙네요.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로 학교일상이 비상상황이고, 학교 일과와 급식, 장소, 주변의 시선 등 조율해야 할 것도 부담입니다. 그래도 그 의도와 마음이 순수하고, 기특하여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긴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학급 추억 하나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꿈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1학년 2반 학급 구성원이라는 것이 따뜻한 자부심이 되는...

학급 친구들이 서로 눈치보는 것없이 대화할 수 있는 가족같은 친구,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되는... 학급 공간이 눈뜨면 오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는... 그 공간, 그 관계 속에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고 표현해보며 서로를 알아가는...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다름이 있더라도 지지와 격려가 넘쳐나는 학급을 희망합니다.

한 학생의 자리가 비면, 무엇때문에 어떤 일로 아이가 자리에 없는지 관심과 염려를 해주는, 생일이면 개인 축하를 넘어 가족들에게도 서로 연락을 해주며 좋은 친구 만나게 해줌에 감사를 전하는... 그런 학급을 꿈꿉니다.

우리 만남이 지나가는 시간이 아닌, 기억되고 회상되고 그리워지는 만남이길 희망합니다. 

기다립니다. 그리고 보입니다. 충분한 가능성이.

다만, 주어진 시간이 짧음이 아쉽네요. 이제 남은 한 달반.  욕심도 있고, 조급함도 있지만 꾸욱 누르며 오늘도 기다려봅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며 하루 하루 치열하게 사는 학생들을 봅니다. 참 대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놓이게 해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기록을 위한 노력과 다그침이 아닌, 존재만으로도 갑갑한 마음과 무거운 마음을 위로해 주는 선한 아이들 삶이 자연스럽게 기록되는 학교생활을 꿈꿔봅니다. 조금 더 여유롭게 만나고 따뜻하게 마주 앉아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알아 가는, 그리고 그 앎과 이해가 존중받고 기록되는 학교문화를 상상해봅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네요. 독감, 코로나19, 수능시험 등 번잡한 환경이지만 마음만은 느긋하게 겨울을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음도 몸도 평안한 주말보내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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