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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ug 21. 2020

엄마의 죽음이 나에게 하는 말

상처를 잘 닦아 재산으로 만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저 률이에요.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항상 길게 댓글 달아주시고 또 저를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_^

엄마는 별다른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항상 한 시간에 한 번씩 습관처럼 브런치 어플을 들락날락 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엄마, 남들은 인스타 중독이라던데 엄마는 브런치 중독이다.’ 하면서 놀리곤 했는데 요즘은 제가 그러는 것 같아요.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서서 글들을 올리고 있는데 구구절절이 눈물 나는 이야기만 쓰다 보니 저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오늘은 가볍게 저의 근황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엄마의 죽음을 다룬 글을 쓰면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싶지만.. 글을 쓸 때는 글 속의 제가 되었다가 또 제 3자처럼 저를 지켜보기도 했다가 하면서 꽤나 즐기면서(?) 글을 쓰고 있어요. 엄청나게 슬픈 영화를 보고 나서와 같이 글을 쓰고 나서는 그 때의 기분에서 빠져나와 다시 제 삶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오늘은 출판사 작가님, 피디님, 편집자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책 제목과 표지에 대해 의논하고 국내 최초(?)로 작가 없는 작가 설명회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간단하게 이야기도 해보고요. 피디님께서 하늘을 보시며 ‘작가님(엄마), 제목을 뭘로 할까요?’ 하시는데 순간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진짜 우리 엄마가 하늘에 있구나 싶은 것이 말로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런 기분이랄까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10번도 넘게 읽은 책인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사실 ‘삶이 도대체 나에게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서 우리 엄마까지 데려갔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잔인해서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고요. 그냥 내 삶에 일어난 일을 통해 내가 어떤 말들을 들을 수는 있겠다 싶은 생각은 들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이 일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저의 삶에 오롯이 귀를 기울여 보게 되었습니다. 

  참 많은 삶의 소리를 듣고 있는 나날입니다. 간절히 바란다는 것과 별개로 이 삶이라는 것은 생명체와 같아서 제멋대로 굴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분명 있기에 ‘하늘에 맡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습니다. 산다는 것은 항상 죽는다는 것과 함께하기에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쯤 어른들이 항상 저한테 이런 말을 하셨어요. ‘률이는 이 일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거야.’ 그 말을 들을 때 솔직히 듣기 싫었습니다. 내가 강해지기를 원한 것도 아닌데 왜 더 강해져야하지? 나는 좀 약하고 싶은데? 강해져야만 하는 상황 때문에 강해지는 거라면 그게 좋은 거라고 할 수 있는 건가? 하며 끝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치만 자의든 타의든 이미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좋게 받아들이는게 정신건강에 이롭겠다 싶었습니다.

  한 달 전, 이 일이 있기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강해지기는 확실히 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해진 것 자체로 좋다기 보다는 강해지는 과정 속에서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제가 모르고 살아온 것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상처를 요리조리 닦아 반짝반짝 빛나게 해보렵니다. 그러면 저의 자산이 되겠지요.


엄마, 나 잘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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