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해 본 상주, 나 말고는 아무도 대신 해줄 사람이 없네
엄마의 임종이 다가올수록 나와 성이는 엄마 장례에 대해 의논해야만 했다. 장례식 준비라니,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피한다고 되는게 아니었다. 이걸 엄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마가 며칠간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성이랑 나는 장례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우리는 상주가 처음이었고 장례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하나도 몰랐기에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구했다. 나 대신 그 일들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에서 장례를 할지부터 정했다. 우리 집은 문경이고 엄마 고향은 상주라서 그 중간인 함창에서 하기로 했다. 장례식에는 나와 성이 손님이 대부분 일거라서 문경과 접근성이 좋아야하고 또 함창이 행정구역으로는 상주시에 속하기 때문에 엄마의 고향에서 엄마를 보내준다는 생각이 들어 그곳에서 하는 것이 제일 낫겠다 싶었다.
어디에서 엄마를 보내드릴지 정한 뒤 상조회에서 연락을 받았다. 나랑 성이 둘 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또 상조회가 뭘 하는 곳인지도 아예 몰랐는데 성이네 직장 상사 분께서 알려주셨다. 다행히도 성이가 공무원이라 공무원 상조회사라는 것을 이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운구부터 장지, 매장, 기타 장례용품 까지 다 도와준다고 했다. 공무원이 좋긴 좋구나, 생각했다.
장지는 어디로 할 것인지 의논했다. 매장을 할 것인지, 화장을 할 것인지도 의논했다. 매장을 하려면 묘터도 닦아야 하고 포크레인을 불러 땅도 파야하고 잔디도 깔아야 하고 또 가족묘를 쓰는 장지에 엄마를 모시려면 이모랑 한바탕 싸움도 해야 하고. 일이 너무 많았다. 그걸 나랑 성이가 다 감당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어서 그냥 화장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숨이 거두어진 엄마를 붙잡고 정신없이 울고 있을 때 성이는 뒤에서 상조회에 전화를 했다. 우는 내 목소리 너머로 성이가 통화 하는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지금 와달라는 전화였다. 상조회에서 엠뷸런스 차를 가지고 와서 엄마의 시신을 운구해 상주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모셔야 했다. 점점 온기가 가시고 시반이 생기는 엄마를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물고 빨고 있자니 상조회에서 도착을 해 흰 천으로 엄마를 감싸겠다고 말했다. 잠시만요. 한 번 만요. 조금 만요. 몇 번쯤 그 말을 한 뒤 이제 엄마를 덮으셔도 된다고 말 했다. 그 모습은 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 뒤돌아서 울었다. 바퀴가 달린 배드에 엄마를 싣고 중환자실을 나와 병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그 침대 뒤를 쫒으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목이 다 쉬도록 장기가 다 쏟아져 나오도록.
최소 한 명은 엄마와 함께 같은 차로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내가 옆에 타고 가겠다고 했다. 나와 엄마는 함께 차를 타고 상주로 내려갔다. 엄마는 누워서, 나는 앉아서.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흰 천에 싸여서 숨 쉬지 않는 채로, 나는 가만히 앉아 눈을 깜빡이며 숨 쉬는 채로.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엄마와 함께 상주로 내려가는 길, 앰뷸런스 안에서 보았던 여름 하늘이 생생히 기억난다. 비온 뒤의 하늘이라 참 맑고 푸르렀다. 왼팔을 뻗어 엄마 배 위에 손을 얹으면 복수로 빵빵하게 불러온 그 단단한 배가 하얀 천 위로도 다 느껴졌다. 빳빳한 천의 감촉도 아직까지 생생하다. 괜히 얼굴 쪽도 한 번 쓸어보았다.
강남을 빠져나오는 동안 몇 대의 경찰차가, 몇 대의 구급차가 지나갔다. 도로를 가득 매운 차에도, 길에도, 가게에도 사람들이 들어 앉아있었다.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길가에 잘 걸어 다니고 있었다. 세상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앰뷸런스를 운전하는 아저씨가 잠시 휴게소에 차를 대더니 화장실 좀 갔다가 가겠다고 했다. 나보고도 볼 일 있으면 보고 오란다. 나는 괜찮다고 말한 뒤 창밖을 보았다. 아저씨가 담배를 한 대 피우시더니 이제 출발해도 되죠? 했다. 역시, 나 빼고 모든 이의 세상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잘 굴러가고 있구나.
그 때 바라본 앰뷸런스 바깥 세상은 아마 내가 죽을 때 까지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나의 세상은 이렇게 무섭게 무너지고 있는데, 다른 세상은 지나치게 평온하고 또 일상적인 순간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든지 아랑곳 하지 않고 난데없이 맑은 하늘을 뽐내는 이 세상이 미워지다가도, 고요한 그 하늘이 '그거 별 거 아니야. 다들 그러고 살아.' 하는 것 같이 느껴져 묘하게 편안하기도 했다. 참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