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비가 왔고, 나는 라면을 먹었고, 오후엔 날이 갰지.
내가 작년 7월 10일에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날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날들 중 하루였을 것이다.
그 날 새벽에는 유달리 엄마와 오래 같이 있었다. 4시쯤 눈이 떠져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감 중 가장 늦게 닫히는 것이 청각이라고 누가 그러기에 간호사들이 듣든지 말든지 계속 말을 했다. 엄마 브런치에 있는 글을 읽어주기도 하고, 읽으면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물어보기도 했다. 나를 이 세상에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했다. 이상했다. 분명 정말이지 슬프고 견디기 힘들었는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것조차 감사해서 나를 이 세상에 낳아준 엄마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말이다.
엄마가 막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밤새 간호를 하는 나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이래서 자식 낳는 것도 죄야.’ 라고 했다. 병간호가 길어졌으면 내가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를 돌보는 것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을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엄마 나는 내가 이걸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하고 대답했다. 엄마가 역시 나 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 나는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을 때는 그럼 절대 안되지. 엄마가 아픈게 제일 나아. 라고 대답했다. 만일 내가 아파서 먼저 죽었다면, 엄마는 남은 생을 어떻게 보냈을까? 나보다 더 마음 아파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남은 기간을 괴로이 혼자 보냈을 엄마가 안쓰러워서라도 그 괴로움은 내 몫이다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도 했다.
아침 8시쯤 병원을 나섰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의식이 있을 때 엄마가 나에게 률아, 보험회사에 연락해봐. 라고 말 한 것이 생각이 나서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필요한 서류를 이것저것 불러주면서 내방을 하라고 했다. 성이에게 잠깐 병원을 맡겨두고 얼른 다녀올 계획이었다. 각종 서류로 가득 찬 가방이 무거웠다.
10시 50분,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밥을 먹기 전에 엄마를 한 번 더 보고 가려고 중환자실 인터폰을 눌렀다. 두어번 눌렀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님들이 회진을 돌고 계실 때나 담당 간호사들이 교대를 할 때, 베드를 갈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려봐도 대답이 없길래 성이랑 지하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과 핫바를 골랐다. 성이는 컵라면 하나랑 도시락을 샀다. 먹다가 모자란다며 볶음면 종류의 컵라면을 하나 더 사왔다. 모든 순간이 방금처럼 생생하다.
밥을 거의 다 먹고 치울 때 쯤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중환자실에서 수시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기에 최대한 빨리 받았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전화를 받았지만 나는 이 전화가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병실로 뛰어 올라가보니 엄마의 맥박이 10정도로 내려 가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모니터의 그래프는 거의 일직선이었다. 엄마의 얼굴은 고작 몇 시간 전인 새벽과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앞에 계신 의사선생님께 물었다. 돌아가신 거예요? 아직이라고 했다. 마지막에도 내 목소리는 들을 수 있겠지 싶어 엄마에게 계속해서 말 했다. 엄마, 나를 낳아줘서 고마워. 나의 엄마여서 고마워. 엄마 딸이어서 너무 행복했어. 조금 뒤 맥박은 완전히 0이 되었다. 11시 25분 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을 붙잡고 말 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의심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요, 이 병원이 아니라 다른 병원이었어도 엄마를 치료하기 힘들다고 했을까요? 중환자실에 들어온 뒤부터 줄곧 내게 차가웠던 선생님이었는데, 눈이 빨개진 채로 내 손을 잡고 대답하셨다. 어머니는 어디를 가셔도 많이 힘드셨을거예요. 보호자분 잘못이 아니에요.
엄마가 이제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싶어서 물었다. 제가 암 환자 고통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엄마가 정말 정말 많이 아프셨죠? 의사 선생님이 처음으로 나에게 다정했다. 네. 말기 암 환자는 정신 착란 증세가 올 만큼 통증이 심해요. 하지만 어머니는 가장 편안하고 고통 없는 상태로 가셨어요. 이제 다시는 안 아프실거예요. 그 말에 참 위안이 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7월 10일 금요일, 아침에는 비가 흩뿌렸지만 12시쯤에는 완전히 날이 개어 해가 쨍했다. 그 날이 나에게도 지극히 평범한 날들 중 하루였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괜히 그런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