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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Feb 01. 2021

나는 가끔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나에게 놀란다




'소확행'이라는 말을 비웃곤 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웃기고 있네. 커야지 확실하지. 작은데 뭐가 확실해? 괜히 또 작은 거에 만족하고 열심히 살게 하려고 어르고 달래는 말 하나 지어냈네. 나는 소확행 말고 대확행 찾을 거야!!"

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면서 남의 말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나의 남다름을 애인에게 큰 목소리로 과시했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이지만

가끔 놀랄 때가 있다. 별 거 아닌 것에 깊이 만족하여 웃고 있는 나를 봤을 때. 그 모습을 몇 번 보고 나니 이제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은 사실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보다 나는 소박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


이런 말을 들으면 아마 나의 측근들은

'에이, ㅇㅇ이 네가?'라며 안 믿을 수도 있겠다. 확실하진 않지만 나의 주변인들에게 내가 수수하고 욕심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왜 이런 생각이 들었나.


브런치에서 어느 작가님을 구독하게 됐다. 이제 막 브런치의 맛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읽는 맛'을 알게 된 나에게 이 작가님의 브런치는 선물 같았다. 이야깃거리도 많고 글빨도 좋은 분인데, 무엇보다 나를 빠져들게 하는 포인트는 바로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


물론 글 몇 편으로 그 사람의 면면을 다 알 수는 없다. 실제로 오래 부딪고 살아도 어떨 땐 잘 모르겠는 게 사람의 깊은 속이기도 하고. 얼굴 모르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기에 더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렇지만 서로를 구독하며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맛보는 그

 

'말이 통한다.

이 사람이 무슨 말하는지 정확히 알 것 같다.

내가 무슨 말하는지 이 사람이 딱 아는 것 같다.'


는 느낌! 이 너무 좋았다. 행복했다.


사소한 것이라고 제목을 썼지만 사실 사소하다고 하기엔 쉽게 겪기 힘든 일이다.



나는 사실 또래 여자들이랑 소통하는 것에 서툴다. 서툴다는 표현이 좀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 서툴다기 보단 재미를 못 느낀다. 또래 여자들 서너 명이 모여서 하는 대화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 적응을 못 하는 편이다. (물론 그들도 내게 적응을 못 할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이상하냐를 따지면 보편적 기준으로 봤을 때 내가 훨씬 이상한 사람인 건 분명하다.) 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주제에 재미있는 척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하는 이상한 성미를 가졌다. 어릴 때부터 좀 그런 편이라 친구가 별로 없다. 또 재미없는 것에  애써 끼려고 하지도 않는 성격이다 보니(그럴 바엔 그냥 혼자 앉아서 사색하는 것이 좋다.), 보통 말이 잘 통하는 애인이나 동생이랑 논다. 하지만 오래 살아있다 보니 이런 이상한 성미와  맞는 친구들을 가끔씩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그 드문 일이 브런치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행복한 사건을 계기로 생각해 본다.

나는 요즘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나.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많을 때.

애인을 앞에 앉혀 두고 비디오 일기를 쓸 때.

그리고 이 사람이 내 영혼의 구석구석을 다 알고 그대로 사랑해 준다는 것을 느낄 때.

목욕하고 책 들고 침대에 누울 때(잠 오면 바로 낮잠 자려고).

동생과 소주와 수다 삼매경에 빠질 때.

소설이 잘 써져서 내가 소설가가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

브런치에서 '영혼의 최측근'(insamnia작가님 소설 부제인데 너무 좋아서 종종 훔쳐 써요.ㅎㅎ)인 것 같은 작가님들을 만날 때.


정리하면 이런 순간들이다.


본능적인 즐거움.

사색이나 글.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하는 진짜 소통.

진짜 나를 아는 사람에게 받는 달달한 사랑.



이런 것들은 사실 사소해 보인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대단한 인간이 될 필요도 없고

노력 같은 것도 필요 없다.


그냥 '내가 나로 살고 있을 때 오히려 자연스럽게 내게 오는 것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것들이 내 삶에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참 어쩌다 보니 시끄럽게 살아왔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원하는 삶은


정말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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