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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Feb 05. 2021

언젠가는 널 까버릴지도 몰라

난 마릴린먼로를 닮았으니까




팔자에 없는(없겠지?) 모델이 된 날이 있었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메이크업 실기 시험을 봐야 하는데 직전까지 모델을 못 구해 급하게 부탁을 해 왔다. 수능 직후라 시간도 있었고, 큰돈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것의 대가 치고는 페이도 괜찮아서 흔쾌히 좋다고 했다. 사실 진짜 이유는 마릴린먼로나 발레 메이크업 같은 특수 화장을 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이미지 출처: 영화 ‘The seven-year itch’



메이크업을 하는 언니와 시험 전에 세 번 정도 만났다. 한 번은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고, 두 번은 연습을 하기 위해서. 화장하기 좋은 얼굴이라 했다. 마릴린먼로 입술 위의 점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점이 있어서 점찍기도 좋다며 그 언니는 내 얼굴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놀라웠다. 내가 마릴린먼로랑 닮은 데가 있었다니. ㅋㅋㅋ 예상했던 대로 재밌는 일이었다. 만날 때마다 두 시간 정도 화장을 하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 시간 내내 폭신한 분 냄새가 코끝에 머물렀다. 계속 눈을 감고 있어야 해서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또 계속 입도 다물고 있어야 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편했다. 작게 슥슥 거리는 소리와 섬세하게 와 닿는 가느다란 손가락 끝의 감촉. 갖가지 모양의 붓과 퍼프, 펜슬이 내 얼굴 곳곳을 두드리고 간질거리며 조심조심 지나가는 느낌. 그런 편안한 느낌을 배경으로 나는 혼자서 내내 딴 생각을 했다. 중간중간에 언니가 무릎을 치면 잠깐 눈을 뜨거나 입을 벌리는 것 빼고는 진짜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입 다물고 눈 감고 가만히 앉아서 마음이 들뜨는 냄새들을 맡으며 머릿속으로는 실컷 딴 생각을 하는 것. 적성에 맞는 일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마지막에 눈을 떠서 거울을 보면, 그 속엔 내가 아닌 다른 얼굴이 있었다. 메이크업이 두꺼워 가면을 쓴 것 같았다. 언니를 만날 때마다 세 번 정도 가면을 바꿔 썼다. 나와 점이 닮은(ㅋㅋ) 마릴린먼로 가면, 발레리나 가면, 신부 가면 같은 것들. 낯선 공간에서 몰랐던 사람이 내 얼굴에 가면을 씌워 주고, 다른 사람 같은 내 얼굴을 거울로 마주하는 기분은 묘했다. 오랫동안 눈을 감았다 떠서 그런지 내내 몽롱한 느낌이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저 깊은 구석에 박혀있던 또 다른 자아를 꺼내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모델이 되겠다는 건 아님.ㅋㅋ)


그런 생각이 거울 속에 그 낯선 얼굴들과 함께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나는 15년 간  '선생님'으로 불려 왔다. 처음에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선생님으로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교생 실습을 할 때부터,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 나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이 되지 않은 건 잘 한 일인 것 같다.(되려고 해도 못 됐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건 확실히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도 알았지만 지금은 더 분명히 알겠다. 학원 '선생님'들과도 나는 너무 달랐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쩌다 학원에서 몇 년 간 일을 하기도 했었는데, 나는 그런 조직 생활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본질적인 것들보다 주변적인 것들이 나를 피곤하게 했고, 내 뜻대로 하려는 독선이 윗사람들과 자주 충돌했다. 우연한 기회에 소속 없이 혼자서 수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나는 가르치는 일이 내가 일정의 보람을 느끼며 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원 원장들과 달리, 학부모님들과 학생들 중에는 고맙게도 나를 신뢰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변적인 것들에 신경을 끄고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니,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도 하고 돈벌이 이외의 것들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순수하게 '돈을 버는 것'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다. 내가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을 쓸모 있는 인간이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  더 열심히 하면 많이 벌겠는 걸 싶어 들뜬 적도 많았고. 근데 그게 다였다.


애석하게도 내가 이 일을 하며 '순수한 열정'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없는 열정을 과장해서 내 마음을 포장하고 싶지 않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이혼할 수 없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거짓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같은 것이다. 그 남편이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정말 순수하게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기 싫다. 이런 생각들은 내 존엄에 대한 내 나름의 애정이다.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진실이 어떠하든 진실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 자체에서 일정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케미가 좋아 수년째 수업 중인 친한 제자가 진로 고민을 털어놓아 직업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직업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해 주려고 내 얘기를 꺼낸 대목이었다.


"네가 보기엔 선생님이 선생님으로만 보이지? 네가 보고 있는 선생님은 진짜 내 정체성 중에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야. 많이 쳐줘도 20%가 안 될걸? 네가 의사가 된다 해도 의사라는 직업은 니 정체성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수도 있어. 직업이 절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야. 물론 전부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든 전부든 그건 그 사람이 선택하는 거야."


그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 눈에 비치는 ‘나’는 굉장히 '선생님' 같아 보이나 보다 싶어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가면을 잘 쓰고 다녔구나 싶어서.



나에겐 내 직업이

오래 간 나를 아껴주고 먹여 살려주었으며, 나도 정이 많이 들어 쉽게 이혼하기는 힘든,

하지만 나의 진짜 열정으로 진짜 사랑한 것은 아닌

남편 같은 것이다.


직업이 자기 정체성의 전부이거나 대부분인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은 행복하게 열정을 불태운다. 그런 분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것이 정말 덕업일치이든 아니든 간에 돈을 버는 일에 순수한 열정이 함께 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자조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정든 남편 같은 일을 언제까지고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체념적인 생각. 그냥 이렇게 몸에 익은 것을 더 열심히 해서 돈도 많이 벌고 평화로이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힘 빠진 생각. 다들 그렇게 사는데. 이 정도가 어디야. 그런 노인 같은 생각들.


그리고 말은 만날 이렇게 하지만 내가 먼저 까이진 않으려고 이것 또한 나의 정체성이며 돈이야 다다익선 아니냐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땅에 발붙이고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맹목의 동물인 것 또한 무시하기 힘든 사실이기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관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분명히 내 영혼 아주 깊숙한 구석에 그걸 놓지 못하고 오랫동안 찌그러져 있는 불쌍한 자아가 안 죽고 있다. 걔를 어디 갖다 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40년 동안 짜져 있었을 걸 생각하면 짠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를 먹여 살려 주고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멀쩡한 생활인으로 살게 해 준,

오늘도 나를 위해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나의 '직업'을

미안하지만 평생 동안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다.


*우측 이미지 출처: 영화 ‘노트북’(표지 이미지 동일)


오랫동안 감았던 눈을 짠 하고 떴을 때,

거울에 보이던 내가 모르는 낯선 내 얼굴을 봤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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