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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Mar 10. 2021

브런치, 이 힙한 놀이터에서 누가 가장 재미있을까?

진심으로 노는 법





브런치에 글을 쓴 지 두 달이 넘었다. 70여 일 간 꾸준히 글을 쓴 것이다. 처음이다. 그 전에는 '입으로만' 작가가 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다. 브런치 이전에 글쓰기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다 합쳐도 최근 두 달에 못미칠 것이다. 쓰고 싶은 진심들로 머릿 속이 빵빵해졌다. 그것들이 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수분처럼 계속 꺼내어 써도 줄지 않는다. 서툰 옹알이로 어설픈 진심들을 뱉아낸 두 달. 만족스럽다.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것을 재밌게 했던 그 시간이.


며칠 전 브런치 북을 묶었다. 책을 묶을 정도로 글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서 묶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써 놓은 글들을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간 쓴 것을 일단락 지어 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사실 무엇보다 매거진 보다 예뻐서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 예쁘다며 동생한테 내 생일날 이거 종이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농담(반은 진담이다 동생아^^)까지 했다.


브런치 북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제목을 붙이고 서문을 쓰고 목차를 만들었다. 글을 발행하는 것과 비슷해서 재편집이나 수정이 자유로울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발간 이후 글을 빼고 추가하는 것과 순서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고 싶으면 그냥 일단 대충 해보고 마는, 그러다가 꼭 덜렁덜렁 실수를 하는 내 성격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내가 그렇지. ㅋㅋㅋ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돼 있다. 맨 앞에 넣은 글을 프롤로그로 바꾸고 전면 수정했다. 나머지 글들은 문장 오류나 오탈자 수정만 할 생각이다. 어쨌든 돌 사진 같은 첫 번째 브런치 북이 만들어졌다. 완벽하게 완성되어 멋지게 포장된 것도 좋지만, 어설픈 순간을 포착해서 간직해 두는 것에도 나는 일정의 의미를 두는 편이다.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그런 것들로 채워져 있으니까.


https://brunch.co.kr/brunchbook/ilovesavina

***브런치북 안에 있는 글이 모두 발행된 글인데, '1화 너는 지금 너로 살고 있니(프롤로그)'는 발행하지 않았던 새 글입니다.(기존 글을 지우고 전면 수정을 했습니다.) 독자님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심심할 때 읽어주세요.^^





꾸준히 글을 썼다는 것도 만족스럽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것은 글을 쓰며 진심을 주고 받는 이들을 만난 것이다. 덕분에 큰 행복과 용기를 얻었다. 그들과의 소통은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관계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나 같은 아마추어 글쟁이로서는 과분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브런치도 세상과 같아서 마냥 진실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거짓과 가식이 진실로 포장되어 떠다니며 박수를 받기도 하고, 소중한 원석이 그에 응하는 찬사를 받지 못하고 구석에 숨어 있기도 하는 것을 나는 종종 보았다.


나는 그리 진지한 인간은 못 된다. 가까운 이들과의 사적인 나의 시간에는 장난과 농담이 난무한다. 나는 농담과 진담을 공평하게 사랑하며, 농담으로 진실을 말하기를 즐긴다. 진지하진 못하지만 진심으로 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늘 그 진심들을 나의 일부로 소중히 여긴다.






일곱 살 때 동네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친구가 없던 나는 혼자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 놀이터에는 그네가 두 개 뿐이었는데 하나는 줄이 끊어져서 나머지 하나를 내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앞으로 나보다 덩치가 큰 여자애들 세 명이 걸어왔다.


"얘, 너 이 그네 얼마나 탔어? 우리가 너무너무 타고 싶어서 그러는데 잠시만 타고 다시 비켜주면 안 될까? 진짜 잠시만 타고 바로 비켜줄게~ 응?!"


새 친구가 생기면 맛있는 걸 해줄테니 꼭 집에 데려 오라던 엄마 말이 생각났다. 심심해 죽겠는데 드디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동네에서 친하던 아이들이랑 무리지어 다니며 그네를 타고 빙빙을 타고 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이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꼭 집에 데려가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주었다. 그리고 그 애들이 신나게 그네를 타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근데 이상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애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도, 그네에서 비켜주지도 않았다.


"야, 이제 비켜줘. 비켜 주기로 했잖아."

"아하하하하 야!! 너 그말을 믿었어? 뭘 비켜줘~~타고 있는 사람이 임자지!! 이게 니꺼도 아니잖아~~그치 않니 얘들아?!"

"그치그치!! 아하하하하"


그 웃음 소리에 놀이터의 시선들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그 그네가 내 것이 아니라는 그 애 말이 맞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슬퍼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엉엉 울면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꼬마들끼리의 별거 아닌 에피소드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굉장히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런 일을 숱하게 보았다. 진심이 그 무게를 존중받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기만당하는 일들. 특히 낯선 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세상은 내 순수한 열정이나 진심을 이용하기를 즐겼다. 나는 그들을 목적으로 대하는데 그들은 내가 수단인 경우. 물론 반대인 경우가 없었다고 장담치 못한다. 세상의 많은 부분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반면 아무리 계산하여 사고 파는 관계라 해도 진심과 존중이 따스하게 오가는 관계도 많았다. 나는 그럴 때 그들과 어떤 관계이든 그 진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 사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이후 나에게는 진심과 진심이 아닌 것을 쉬이 구분하는 촉수가 생겼다. 나를 수단으로 여기는 존재에게 아까운 내 진심을 흘리지 않았다. 나도 그를 수단으로 여기면 그뿐, 감정이 오가지 않았다. 간결하고 편리하지만 재미는 없는, 내 삶에 포함된 마음에 들지 않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없이 삶이 굴러갈 만큼 세상이 내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탁한 세상은 종종 그런 것에 내 인생의 일부를 할애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내 삶을 많이 쓰고 싶진 않다. 굳이 강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인생론인데, 가끔 강해지고 싶다 생각하는 이유는 최대한 진심으로 살고 싶어서이다. 세상은 약한 자의 진심에 너무 야박하다.



어디에서 어떤 관계를 맺든 진심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승자다. 그 관계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진심을 주고 받은 시간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으로 만들어진 인생을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움은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그렇게 살고 싶다. 



이제 나는 브런치에 대한 낯가림을 끝냈다. 낯설어서 쭈뼛거리며 내가 누군지 말하지 못하던 쌀쌀한 3월이 지나고, 수다를 떨며 도시락을 까먹고 때로는 스탠드 구석에 앉아 비밀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친구들이 생겼던 5월을 맞이한 기분이다. 낯가림이 끝나면 나는 늘 나의 색을 진하게 드러내곤 했다. 좀더 솔직하게 '나'를 뱉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은 늘 그랬고, 나는 늘 세상을 이렇게 대해 왔다. 이곳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진심을 다해 재밌게 놀 것이다.




https://youtu.be/f4Mb8e-7NMk

노래할 때 진심인 것처럼 글로 소통할 때 진심이라고 하시며 Francis작가님이 추천하신 곡 첨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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