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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May 20. 2021

기념일을 잘 챙기는 섬세한 남자 2



https://brunch.co.kr/@redangel619/270






"오빠는 스포츠 안 좋아해? 남자들은 다들 좋아하는 야구선수나 축구팀 같은 게 있던데."

"넌? 넌 어떤 선수나 팀 좋아하는데?"

"나? 난 스포츠엔 관심없어. 그냥 오빠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 있음 같이 보러 가주고 싶어서. 뭐 좋아해? 야구? 한화? 축구? 토트넘?"

"음......글쎄? 현지야 잠시만 나 화장실 좀 다녀 올게."



이런 식이었다. 나와 다른 그의 취향이 궁금해 물어 보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꼭 화장실로 갔다. 나는 그의 취향을 알 길이 없었다.


  가지. 나와 다른 그의 취향은 전자기기를 좋아한다는 거였다. 애플 워치에 에어팟 프로, 구글 글래스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와 헤어지기 싫어서, 다음  출근인 그를 붙들고   시가 넘게까지 술을 마시던 날이었다.


삐이----------

그의 옷 안에서 이상한 기계음이 들렸다. 도청기라도 들어 있는 걸까? 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 영화에서 봤던 애인이나 아내를 죽인 살인범들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오빠 이게 무슨 소리야?"

"아 이거 워치에서 나는 소리야."

"응? 아닌데 어디 주머니에 뭐 넣어둔 거 아냐?"

"아니야. 여기서 나는 거잖아. 현지야 잠시만 나 화장실 좀 다녀 올게."


이상한 일은 이후에 더 많이 일어났다. 그는 계획에서 벗어나는 데이트를 하는 것을 싫어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집착했다. 늘 정해진 시간에 만나고 일정한 시간에 헤어졌다. 스스로가 계획한 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만나면 지나치게 당황했다.


"어? 오늘 여기 문 닫았네?!"

"어? 오늘 화요일인데, 여기 월요일에 닫는데? 이상하네?"

"그러게? 어쩔 수 없지. 어디 가지? 난 꼭 오늘 크림파스타 먹고 싶은데......"

"그래? 음...... 어디로 갈까...... 현지야 잠시만 나 화장실 좀 다녀 올게."


그와 만난 지 3개월이 지났는데도,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위해 만들어진 사람처럼 나를 너무 잘 알고 내게 너무 잘 맞춰준다는 것.

깎아 놓은 듯 잘생겼고, 운동 선수처럼 체력이 좋다는 것.

매사에 계획적이고 규칙적이며 정확하고, 돌발 상황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것.

무언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면, 늘 화장실을 찾는다는 것.


이것이 내가 아는 그의 전부였다. 나는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러 돌발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  그의 취향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어김없이 화장실을 갈 뿐, 그에 대해 그 이상을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귀여운 우리 현지가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니 당황스러워서 그러지."

"오빠는 원래 계획에서 벗어나는 걸 싫어해."

"현지가 왜 좋냐구? 당연한 걸 왜 물어봐~ 이쁘고 착한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니까 좋아하지~"


이런 말들을 똑같이 반복하며 그 순간을 피해갔다.


나는 잘 다듬어진 교과서 같은 대답들이 섬뜩해졌다. 내게 맞춰준다고 했지만, 그런 말들은 이 세상 어떤 여자에게든 잘 맞을 것 같았다. 나는 정연수 그 인간과 헤어진 지 일 년도 안되어, 그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만이 가질 수 있었던 것들과, 그걸로 인해 우리가 주고 받을 수 있었던 다듬어지지 않은 우리만의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우리 현지는 이마에서 코끝까지 이어지는 선이 너무 이뻐. 앞 얼굴도 예쁘지만, 옆 선이 너처럼 예쁜 여자는 처음 봤어. 너 한번씩 삐졌다가 내가 웃기면 얼굴 나 쪽으로 돌리면서 배시시 웃잖아~ 그럴 때 얼마나 귀여운지 넌 모르지?!"

"스포츠를 안 좋아하는 놈은 남자가 아냐. 너 그런 남자는 앞으로도 절대 만나면 안 돼! 알겠지? 하하하하하"

"이번에 어벤저스 6편 나왔는데, 주말에 같이 봐주면 안돼? 난 너랑 같이 가고 싶은데."






나는 이무영이 왜 자꾸 화장실을 가려 하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오늘은 절대로 이무영을 제 시간에 집에 보내지 않고 술을 잔뜩 취하게 만들어서 재울 것이다. 그는 술에도 잘 취하지 않는 편이라, 감기약에서 항히스타민제를 빼서 잔뜩 갈아 놓았다. 그의 옷과 핸드폰을 모조리 다 뒤져서 그의 비밀을 알아 내고 말리라.




"현지야 잠시만 오...오빠... 화장...실......."

항히스타민제를 탄 소주를 세 병이나 다 마시고 나서야 그는 쓰러진다.


삐----------


대체 몸에 뭘 숨기고 있을까. 나는 삐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내기 위해  그의 바지 주머니와 셔츠 주머니를 뒤진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 속옷인가. 나는 그의 다리를 들어 바지를 벗기고, 팔을 들어 셔츠를 벗긴다. 이제 팬티밖에 남지 않았다.


삐----------


소리가 계속 난다. 어? 등쪽인 것 같은데? 나는 쳐져서 더 무거워진 그를 겨우 뒤집는다. 그의 등이 마네킹처럼 매끈하다. 설마? 몸속에 뭐가 있나? 인공장기나 인공관절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정확히 듣고 싶어 그의 등허리와 뒷목을 양 손으로 세게 누르며 등 중간에 귀를 바짝 댄다.


순간 삐이이-----소리가 나며 그의 등허리 쪽 피부가 슬라이드처럼 밀린다. 뭐야? 나는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것 같다. 밀린 피부의 아래에는 검은 액정이 있다. 그리고 이런 글자가 뜬다.


Lee Mu Yeong
N. 82-2026-05-01-00002

Low Battery

This humanoid is too far from its owner.
Warning of loss


"으아아아아아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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