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으로 쓰고 싶어
"나는 신혼 3년 동안 민낯 안 보여줬어. 남편 도망갈까봐."
"나도 신혼 초에 메이크업 지운 모습 안 보여줬어."
'연애도사'라는 예능 프로에서 연애할 때 단점부터 보여준다는 서인영 씨의 말에 홍진경 씨와 홍현희 씨가 한 말이다. 물론 개성 넘치고 예쁜 두 분이 웃기려고 한 말인 걸 잘 알고 있다. (의도하신 대로 웃겼다. ㅋㅋㅋ)
여자들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화장한 얼굴과 쌩얼. 성인인 여자는 연애 상대를 화장한 얼굴인 채로 처음 대면하는 게 대부분이다. 아무리 '꾸안꾸'가 유행이라지만 우선은 '꾸민 얼굴'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 결혼을 하고 싶었던 나는 오는 소개팅 마다 않고 달에 몇 번씩 소개팅을 하기도 했었다. 그 때 깨달았다. 연애하는 남녀가 서로의 '진짜 얼굴'을 보기까지 세 번의 관문을 거친다는 것을.
일단은 카톡프사. 만나기 전에 먼저 서로의 프사를 보게 된다. 물론 본인 얼굴이 프사가 아닌 경우는 제외하고. 프사를 보고 서로 마음에 들었다 해도 실제로 만났을 때 프사와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면 그것을 커버할 만큼 다른 어떤 부분이 엄청 잘 통하지 않는 이상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다. 사진으로 봤던 소개팅남의 모습과 실제 분위기가 비슷했을 때, 소개팅녀는 좋은 느낌으로 첫 만남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가 "사진이랑 똑같으시네요?!"라는 말을 첫인사로 건넨다면 그녀는 더더욱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그렇게 만나 마음까지 잘 통해 썸을 넘어 결국 연애가 시작되고 나면 두 번째 관문은 쌩얼. 이 부분은 여자들이 더욱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남자들도 자다 일어난 떡진 머리에 수염 정리가 안 된 모습이 처음 대면한 얼굴과 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목구비 자체가 달라지는 여자들에 비하면 무시할 만한 정도가 아닌가 싶다. 사귀고 첫 여행을 가서 화장을 지운 얼굴로 애인을 대면했을 때, 그가 전혀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깊은 사랑을 표현한다면 그녀는 안심할 것이고 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근데 이 두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연인들에게는 세 번째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얼굴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닌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가식과 예의의 옷을 벗은 상대의 '진짜 영혼'을 보게 된다. 이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연인은 오래 사랑하게 된다.
나도 썸을 타거나 연애가 시작될 때, 상대의 진짜 모습이 어떨지에 대해 예의주시했었다. 특히나 사랑하게 된 사람이라면 껍질을 벗긴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애초에 껍질이 얇거나 없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리고 나를 보여줄 땐, 장점 못지 않게 단점을 빨리 노출해 버리는 편이었다.
'진한 화장에 한껏 꾸미고, 상대가 좋아할 만하지만 사실은 내 것이 아닌 성격들을 애써 꺼내 보여서 사랑받은들 그 사랑이 진짜 나를 향한 것일까.'
라는 생각 때문에.
연애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글 또한 그러하다.
'진짜 내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영혼과 포개어지고 싶은 것'이 연애라면
'진짜 내 얼굴을 보여주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소통하고 싶은 것'이 글이다.
어떤 글을 쓰든 간에
그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낼 수 없다면,
'내 감정'을 '내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랑과 찬사를 받는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쓰게 되면 읽히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방식을 잘 쓰는 사람에게 배우고 연습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깨닫게 된다면 좋겠지만, 자기를 잃고 껍데기 같은 글을 쓰게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쓰는 사람으로서 읽히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그 대상이 진짜 내가 아니라면 싫다.
아직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쓰는 사람'일 뿐이지만
적어도 '나'를 쓴다는 최소한의 '자존'을 전제하고 쓰고 싶다.
내게 꼭 맞는 연인을 찾아가듯 글쓰기도 그랬으면 좋겠다.
***표지 이미지 출처: sbs plus ‘연애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