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때만큼은 나와 같을 사람들에게
며칠 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어 소설을 쓰고 있었다. 휴일이었고, 저녁 약속을 한 동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평일 낮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내가 앉은 곳에서 두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곳에 나와 같은 방향으로 어떤 남자 손님 한 명이 앉아 나처럼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손이 마우스보다 키보드에 자주 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글을 쓸 때 그러듯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한참 동안 창 밖을 보다가, 또 한참 동안 키보드를 두드리기를 반복했다. 반바지에 슬리퍼에 무언가 정돈되지 않은 차림새가 근처에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표정도 가벼워서(멀리서 보이는 느낌으론) 레포트나 논문 같은 걸 쓰는 것 같진 않았다.
모르는 사람을 흘끔흘끔 너무 자세히 관찰한 것 같아 실례가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는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글을 쓸 때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어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좀 사교적인 사람이었다면 그 친근감을 못 이기고 말을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대신 말을 걸고 난 뒤의 상황을 내 마음대로 상상하며 혼자 키득거리기만 했지만.
그러고보면 나는 하루 종일 참 많은 글을 읽는다. 무척 유명해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작가의 글에서부터 몇십 몇백 몇천의 구독자들에게 읽히는 브런치의 글과 내가 끄적여놓은 일기같은 사소한 글까지. 수없이 많은 글들과 마주하며 산다.
대단한 철학이 담긴 대문호의 글에도, 나중에 고쳐야지 하고 끄적여 놓은 내 낙서에도,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나 납득할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모르는 작가의 글에도,
글에는 그걸 쓴 이가 꺼내 놓은 내면의 한 조각이 담겨 있다.
답답해서 남기고 싶은 감정이나 잊으면 안될 것 같은 번뜩이는 생각들. 적어서 풀어 버리고 싶은 아픈 응어리나 떠올리며 기뻐하고 싶은 그리운 기억들. 그런 것들이 글에는 담겨 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도, 유치하고 진부해서 읽을 가치가 없다 느껴지는 글이라도 누군가 그 글을 쓰기 위해 나와 똑같이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서 허공을 쳐다보며 골똘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자기의 내면을 애정어린 눈으로 샅샅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리하여 토해낸 것들이 글에는 적혀있는 것이다.
자기의 내면을 응시하고, 그것을 발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나도 가끔은 피아노를 치거나 꽃을 만지거나 요가를 하거나 수다를 떨며 내 안에 터질 것 같은 감정들을 쏟아 낸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만큼 나를 깨끗하게 비워내고 또 충만하게 채워주는 것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써 놓은 글을 보면 그 글을 쓴 이가 누구이든, 아무리 내가 공감 못할 낯선 이야기를 써 놓았다고 해도, 카페에서 본 그 사람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동질'을 느낀다.
어쨌든 그 글을 쓴 사람은 나처럼 노트북을 펴고 앉아서 자기 내면의 한 켠을 부려 놓고 그것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는 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도 나처럼 그리운 기억에 활짝 웃기도 하고 상처받은 감정에 눈물이 그렁해지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다가 꺄르르 웃음이 터지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에.
사비나의 산문
https://brunch.co.kr/@redangel619/46
https://brunch.co.kr/@redangel619/53
https://brunch.co.kr/@redangel619/146
https://brunch.co.kr/@redangel619/267
https://brunch.co.kr/@redangel619/278
사비나의 소설
https://brunch.co.kr/@redangel619/298
https://brunch.co.kr/@redangel619/299
https://brunch.co.kr/@redangel61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