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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12. 2021

화장하는 중고생들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

"내면을 가꾸어라."가 답일까?




요즘 애들은 화장을 일상적으로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단 건 아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에 비하면 꽤 높은 비율의 아이들이 화장을 한다. 가끔씩 어른인 나보다 화장이 진하고, (내 화장이 연하기도 하지만) 화장 실력이 좋은 걸 보며 깜짝 놀랄 때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 대해 어른들의 반응은 보통 이런 식이다.


"네 눈에는 예쁘겠지만 사실은 안 예뻐. 자연스럽고 학생다운 게 예뻐."



나도 자연스러운 게 예쁘다고 여기는 쪽이라 보통 이렇게 생각했었다. 아이를 직접 키우는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너무 많은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차라리 좋은 화장품이라도 사주고, 너무 자주 하지는 못하게 시키는 게 현실적인 해결책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90년 대) 화장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좀 '노는' 아이들이었다. 일상적으로 화장을 하기보단, 주로 놀러 나갈 때 했다. 그러다 보니 화장이 너무 부자연스럽게 진하기만 했다. 그에 비해 요즘 애들은 꽤 자연스러운 편이다. 평소에는 베이스 화장에 눈썹을 그리고 립 틴트 같은 것만 바르고, 좀 특별한 날(시험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러 나가는 날 등) 일 때는 섀도나 아이라인 등을 가미해 더 진하게 한다. 그 진하게 한 것도 보통의 어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화장 정도 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씩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화장을 안 해도 예쁘지만, 한 것도 꽤 예쁜데?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그래도 안 한 게 더 귀엽고 예쁘지만, 아이들은 자기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 내 눈에도 예뻐 보이고 자연스러울 정도라면, 자기네들 세계에서는 엄청 예쁠 것이다. 화장뿐만이 아니다. 매체가 워낙 발달해서 그런지 요즘 애들은 옷도 잘 입는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유행을 따르기도 하지만, 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게 나름대로 자기를 꾸밀 줄 안다. 귀밑 2센티 단발에 교복만 주야장천 입고 여중 여고를 다니던 그때의 나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어떤 화장이, 어떤 옷이, 어떤 머리가 자기한테 어울리는지 좀 아는 아이들이 옛날보다 많아졌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또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나도 저 때부터 저런 걸 좀 해 볼 수 있었다면 어뗐을까?


그럼 무료한 학창 시절이 더 재밌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지 않았을까?


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거의 노메이크업에 가까웠지만. 처음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고, 색깔 있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거울을 봤을 때의 그 신기함과 감격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어설픈 화장과 꾸미기가 시작되어 스물 둘 스물 셋이 되며 좀 과해지다가 그 이후로 조금씩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갔던 것 같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감각으로 세계를 지각하는 동물이고, 나이가 어릴수록 내면이 단단히 채워지지 않아 감각적인 것에 더욱 치중해서 외부와 자기를 인식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우리 어른들이 옛날에 그랬고, 지금도 사실 일정 부분 그러한 것처럼.


이런 아이들에게


"외모는 껍데기일 뿐이고, 진짜 중요한 건 내면이야. 외모를 가꾸기보다는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고, 공부 한 자라도 더 해. "


라고 충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 아이들의 행복한 삶에 무슨 도움이 될까. 정작 물건 하나를 사도 '예쁜 것'을 사고, TV에 나오는 미남 미녀 배우에 열광하면서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것과 그것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은 위선이 아닐까.


나는 가까운 중고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네가 공부를 많이 해서 똑똑한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들과 사귀어서 마음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지금 너의 성장에 중요해. 근데 그만큼 또, 네가 너의 얼굴과 몸을 잘 알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사랑받는지도 너의 삶에서 중요한 일이야. 그렇게 화장도 한 번씩 해 보고, 머리도 어울리게 잘라 보고, 너에게 어울리는 예쁜 옷도 입어보고 그렇게 해 보는 것도 삶에 필요한 일이야. 꼭 객관적으로 예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내면이나 외모나 '너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찾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은 네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해봐야 하는 거야."


라고 말해줄 것 같다.




외모와 내면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할 말이 많다. 존재의 내면적인 가치가 외면으로 발현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겉모습과는 별개로 존재는 모두 그만의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내면을 아름답게 채우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 보이는 것을 외면할 수 있을까. 어떤 존재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감각이 먼저 그것을 지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많은 선택은 감각에 좌우됨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감각 기관이 발달한 동물로서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본능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감각적 만족이나 행복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우리 외부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때도 그렇다. 우리는 솔직히 보이는 것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화장을 하나도 안 하고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녀서 외모에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성형을 몇 군데나 한 사람, 공부만 하고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이어트에 목매는 사람들을 살면서 많이 봐 왔다. 반대로 스타일 좋은 미녀가 가방끈 콤플렉스가 있거나 훤칠한 훈남이 읽을 줄도 모르는 영문 서적을 허세로 끼고 다니는 경우도 많이 봐 왔다. 기회만 있다면 우리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사실은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내적인 아름다움까지도 겉으로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내적'인 것조차도 '외면'으로 발현시키고 싶은 게 인간의 솔직한 욕망인 것이다.


드라마 빅뱅이론의 '페니'와 '에이미'는 서로를 부러워한다. '페니'는 치즈케이크 가게의 점원이지만 배우를 꿈꾸는 금발 미녀이고, '에이미'는 뚱뚱하고 촌스럽지만 노벨상을 꿈꾸는 천재 '신경과학자'이다. 각자 자부심을 느끼는 강점들이 있지만,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빅뱅이론’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A는 평생을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어 왔고 그의 하루는 외모에만 집중되어 있다. 반대로 B는 평생을 내면의 수양과 지성의 단련에만 집중해 왔고, 그는 거울 한 번 안 보고 오로지 내적인 것만 생각한다.


누가 나을까. 내 생각엔 둘 다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외모와 내면을 이분법적으로 잘라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그 둘은 존재의 융합된 일부이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객관적인 기준을 들이밀어 예쁘고 못나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수 '화사'를 보면 나는 항상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창의성과  예술가로서의 영감이 외모로 그대로 발현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미인대회 같은 데서 객관적인 점수를 많이 받을 미녀는 아니겠지만, 겉과 속을 모두 포함한 본인만의 고유한 매력으로 '이효리'같은 미녀를 압도한다.


*이미지 출처: 스포츠 한국 포토 기사



'꾸밈'이 '노동'이라는 생각이 번지는 상황이고, 외모 지상주의가 사회문제가 된 지 몇십 년이 넘어 외모 차별이 처벌까지 받는 요즘 세상에 나의 이런 생각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이고, 그 '가치'라는 것이 '내면' 또는 '외면' 한쪽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에, 그리고 우리 모두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세상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고, 자기가 가진 고유성의 발현에서 오는 것이며, 그러한 진짜 '아름다움'이 우리의 감각과 내면을 모두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매력으로

오늘도 아름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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