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 때 '나'를 지키는 방법
브런치를 서핑하다가 정문정 작가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가난했기 때문에 취향이 있을 수 없었고, 좀 여유가 생긴 지금에야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가난했기 때문에 돈 벌기 바빠서 어학연수를 가는 등의 스펙을 쌓기는 힘들었다.'는 드라마(쌈 마이 웨이) 여주인공의 대사가 인용되어 있었다.
가난했기 때문에 포기한 취향을 주욱 열거해 놓은 그 글을 보며 이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난이 정말 취향도 포기하게 할까? 가난해지면 돈을 버는 것에만 집중해야 해서 자기가 가진 어떤 것도 지키기 힘들 정도로 무력해질까?
상당 부분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가난은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정체성의 일부를 잠식하기도 한다. 가난해질 때 인간은 본질과는 별개로 초라해지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나는 어떻게 가난한 시간을 통과했었나.
'가난'함에도 늘상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가난이 내 영혼을 갉아먹지 않도록 끌어안아 지키려 노력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문학 교과서에서 자주 보는 미당의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난이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의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서정주, '무등을 보며'
어찌 보면 뻔한 희망론 같은 이 구절을 만날 때마다 나는, 청량한 생기를 뿜어 내는 여름 산을 떠올리며 묘한 감동을 받는다. 빛이 들지 않는 습기 찬 반지하 방에서 밀란쿤데라나 김영하, 은희경의 소설을 끌어안고 근근이 영혼을 채우던 과거의 나. 가난이 때때로 나를 초라하게는 했지만, 결국 내 내면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대단할 것 하나 없는 내가 가난할 때 어떻게 내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나'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소설가가 되려면 많이 읽고 써 봐야 한다. 그건 아무리 돈이 없어도 시간만 있으면 지속 가능한 일이었다. 돈이 없을 때는 딱히 밖에 나가서 돈을 쓰며 여가(가령 쇼핑이나 여행 같은 것들)를 보낼 일이 없어서였는지 난 많은 시간 집에 틀어 박혀서 소설책을 읽었다. 그리고 간간이 습작도 했고.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곤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을 비슷하게라도 하며(못 한다면 그 근처에라도 가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브런치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애인인 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꼭 연애가 아니라도 좋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면서도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들.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많을 필요도 없다. 한두 사람과 아주 깊이 교우하면 된다.(단 한 명이라도 괜찮다.) 나를 잘 모르는 많은 친구 말고, 나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좋아하는 진짜 친구와 진심이 오가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물론 일할 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만약 그런 매일 보는 사람이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면 최대한 일 할 때만 보고 사적으로는 멀리했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 크게 신경 쓰거나 눈치 보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떠오른다. '지안'과 '동훈'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 서로를 만나 인간적으로 교우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각자의 삶을 지켜낸다. 어렵고 힘들 상황일수록 더더욱 관계는 진심으로 맺어야 한다. 진실한 관계는 영혼을 따뜻하게 다독이고, 그것은 자기를 지키는 힘이 된다.
이건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을 쓸 수 없을 때도 가능했다. (너무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하고 싶은 일을 조금도 지속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또 살다 보면 옆에 나를 사랑해 주는 좋은 사람이 전혀 없을 때도 있으니까.) 나는 서사물을 즐긴다. 소설, 영화, 연극, 미드, 웹툰 등. 영상 서사물도 요즘은 접근이 굉장히 쉽다. 월 만 얼마만 지불하면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서사물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주욱 읽어오던 수많은 소설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내 경험과 생각으로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져서 지금은 단단한 내 내면이 되었다. 그것들은 내 취향과 기호가 되고, 결국 내 정체성이 되었다. 그것들은 굉장히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해서, 나를 해치려는 그 어떤 존재가 와서 때려도 부서지거나 상하지 않았다.
영화 '소공녀'에서 떠돌아다니며 거지같이 살지만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않는 미소가 이렇게 말한다.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그러면서 미소는 '남들이 다 하지만 자기의 취향이 아닌 것들'은 다 포기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은 끝까지 지켜낸다.
인간의 고유한 내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단하다.
불필요한 것들을 잔뜩 파는 상점이 즐비한 시장에서 하나라도 더 팔아 보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천박한 호객꾼들을 뿌리치고 오로지 내가 갖고 싶은 것만을 향해 우리는 단호하게 걸어가야 한다.(by Savina)
*표지 이미지 출처: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