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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Dec 27. 2020

‘명품백은 차려 입을 때 든다’는 생각에 대해

진짜 좋아하는 게  뭐야?




몇 년 전 갓 결혼한 친구 A의 집들이에 갔을 때였다. 안방 화장대 위에 500-600만 원 상당의 C사 핸드백이 놓여 있었다. 스크래치 하나 없는 완전 새 거.


“야 너 이거 언제 샀어? 어머, 너무 예쁘다. 왜 안 들고 다녀?”

“결혼식 갈 때나 들지 평소에 들긴 부담스러워. 이렇게 전시만 해 놓을 걸 괜히 샀나 봐."


그 백은 캐주얼한 옷에는 어울리지 않을 약간은 '각 잡힌' 스타일이었다. C사의 트위드 투피스 위에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친구 말대로 '결혼식 갈 때나' 들 만한 백이랄까. 실제로 결혼식장에 가면 평소에 볼 수 없던 명품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미지 출처: 샤넬 공식 인스타그램




친구들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하는 평범한 여자들의 명품 스토리는 대략 이러하다.


보너스를 받았거나, 아주 특별한 기념일이거나, 아니면 유럽으로 신행을 가서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거나 등등 그럴 때 고가의 명품백을 산다. 그리고 맘 카페에  '30대 후반 여자인데 적당한 명품백 추천해주세요.’ 같은,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질문을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보통 자주 들 수 있는 데일리하고 캐주얼한 것이 아닌 어디 특별한 곳에 갈 때나 들어야 할 것 같은 '각 잡힌' 백을 산다. 그리고 집에 정성스레 모셔둔다. 딱히 들고 갈 데도 없고, 부담스러워서. 그리고 어쩌다 들고 나간 날엔 든다기 보단 모신다. 그러면서 ‘명품보다는 에코백이 좋구나. 괜히 명품 명품 거렸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허영을 성찰하고, 그 다음부터 남편이 생일 선물로 명품백을 사다 줘도 ‘돈으로 주지.’ 또는 ‘환불하고 딴 걸로.’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의 명품 타령에 ‘언니도 그럴 때가 있었다. 나이 들어 봐라. 다 필요 없고 현금(예를 들면)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명품백을 좋아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쁜 백'을 좋아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쁜 백'이란, 내가 평소에 옷 입는 스타일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의 백을 말한다. 그런 '예쁜 백' 중에는 명품도 있고 명품이 아닌 것도 있다.  난 옷을 차려입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이힐 위에 올라가기를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편하게 입는 편이다. 명품백 중엔 생각보다 캐주얼한 옷에 잘 어울리는 것이 많다. 내가 백을 선택하는 기준은 명품 여부도 아니고 가격 수준도 아니고 유행도 아니고 순수하게 그냥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이다. 그리고 어떤 물건이든 자주 사용하는 물건에 돈을 더 쓰고 취향을 더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진 그 어떤 명품백도'모셔둔' 적은 없다. 그냥 평소에 잘 들고 다니게 된다. 자주 들고 오래 들어도 기본적인 내구성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정도이지, 쉽게 낡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면 10년은 거뜬히 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명품 대신 에코백'(에코백도 예쁜 건 좋다.),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백 하나 사는데 사람이 뭐 명품씩이나 되어야 하나. 피곤하다.) 이런 생각에는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명품이 좋다' '명품을 사라' '하나를 사도 제대로 된 걸 사라'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명품을 좋아하고 말고는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닌 자기 선택이니까. )


이것은 명품 이야기가 아니고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뭘 선택하든 본인이 '좋아하고' 본인의 일상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라는 얘기다.


유행 말고. 남들이 다 사는 거말고. 단순히 싼 거나 비싼 거 말고. 요즘 잘 나가는 거 말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변했다. 국민의 대부분이 농부이던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 강국이 되기까지.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적응하려면 바뀌고 적응하려면 바뀌다 보니, 변하는 세상을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이 국민성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 정답을 찾기가 어려우니, 어떻게든 남들이 하는 것과 비슷하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당연하다 못해 정답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왜 그 행동을 하냐고 물으면 보통 그 대답은 '남들도 다 하니까' '이게 대세니까' '이렇게 안 하면 뒤쳐지는 것 같아서'일 때가 많다. 빠른 변화 속의 굴곡은 항상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마련이다. 변화의 흐름을 잘 타면 잘살게 되기도 하고, 잘못 타면 못살게 되기도 하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눈치껏 남들이 많이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선택이 되어 버렸고, 자신의 선호나 사적인 만족은 뒷전이 된 것이다. 



옷 가게에 옷을 사러 가면 점원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이게 잘 나가요."

나는 늘 이 말에 심드렁하다. 요즘 이게 잘 나가는 게 내가 옷 고르는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명품백 하나 가지고 너무 멀리까지 온 게 아닌가 싶지만



예전에 고1 애들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거의 90%가 북쪽면 패딩을 입고 있어서 소름 돋는다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종종 그런 ‘복붙 패션’을 볼 때마다 묻고 싶다.


“네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야?”






*표지 이미지 출처: 샤넬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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