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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Dec 31. 2020

'좋아요'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1>

'추락(블랙 미러)'으로 묻고 '노트북'으로 답하다.

***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공모 당선작입니다.




"난 솔직히 네가 싫어."


고등학교 때 동아리 친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당황해서 이유를 물었지만, 이유가 없다고 했다. 노래를 가수급으로 잘했던 그 애는 노래 부르고 기타 치는 그 동아리에서 기가 세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쪽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 서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애였고. 방과 후 늦은 시간 운동장 스탠드에서 단합회(?)를 한다는 명목으로 서로에게 쌓인 감정 같은 것을 풀어내는 자리였다. 다행히 어두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바보 같은 표정을 감출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집에 와서 화장실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유 없는 혹평'을 당한 어린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말이 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입소문'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처럼 직설적이진 않지만, 나에 대한 듣기 불편한 평을 전해 들을 때가 있다. 이제는 화장실에서 울지 않고 그냥 피식 웃으며

"그렇게 뒤에서만 말하고 내 귀에 좀 안 들어오게 하라 그래."라고 무심하게  넘기는(때론 그런 척하는) 강 멘털의 어른이 되었지만,






인간이 완벽하게 타인의 인정과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자아가 강한, 영향력 있는 존재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너는 참 예뻐."

라는 말을 매일 듣는 사람이 외모에 자신이 없을 수 있을까?

"너는 참 무능하고, 별 볼 일 없는 놈이야. "

라는 평가를 매일 받는 사람의 자존감이 온전할 수 있을까?


누가 나를 두고 뭐라 하든 오로지 자기 자신의 생각만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걸까?


'좋아요'가 자존감을 넘어 '돈'이 되고, '어그로를 잘 끄는 것'이 능력이 된 세상이다. '똥을 싸도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조두순이 탄 경찰차를 발로 차고, 뱉고 토하면서까지 먹방을 찍는다.


브런치를 시작하고부터 나 또한 '구독자 수'와 '라이킷'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Netflix Original)  '블랙미러' 시리즈(시즌3)  중 '추락(nosedive)'은 '좋아요'에 집착하는 오늘의 우리를 거울처럼 비춰준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입니다.***


주인공 '레이시'가 조깅을 하는 모습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마치 sns에 올리려고 필터링을 한 것처럼 지나치게 화사한 배경, 기념 촬영을 하는 것마냥 과하게 밝은 사람들의 미소. 어딘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레이시의 '작위적인' 하루가 펼쳐진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같은 곳에 올린 피드에 '좋아요'를 받는 우리와는 다르게 이 드라마 속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서로의 sns를 볼 수 있고, 보는 즉시 서로에게 별점을 매긴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미소가 지나치게 밝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거리와 상점, 엘리베이터와 사무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별점 주고받기는 계속된다. 그 별점의 평균이 그 사람의 신분증이나 가격표처럼 그 사람을 쫓아다닌다. 



새 집을 계약하려던 레이시는 평점이 약간 부족해 계약을 미루게 되고, 어떻게 평점을 올릴지 고심하던 중 곧 있을 결혼식의 들러리를 서 달라는 어릴 적 친구 '나오미'의 연락을 받는다. 나오미는 평점이 4.8인데다, 그녀의 결혼식에는 평점 4.5 이상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레이시는 이 기회를 잘 이용해 꼭 평점을 올리리라 다짐하고 최선을 다해 들러리 연설을 준비한다. 사실 레이시는 나오미에게 남자 친구를 빼앗기는 등 괴롭힘만 당한 처지라, 그녀의 진짜 친구라 하긴 어려운 처지였다. 둘은 전혀 친하지도 않고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단지 각자의 평점을 올리는 데 서로가 필요했을 뿐이다.



레이시가 들러리 연설을 준비하는 모습이 압권인데, '뭐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가식적으로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 같았다. 그것은 바로 인스타 갬성이라며 허세와 가식이 가득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사진을 sns에 올리고 '좋아요'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레이시는 그만  남동생과 싸우다가 욕을 해 버린다. 편안하고 진실한 관계를 맺어야 할 가족조차도 서로 평점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이 섬뜩하다.  남동생에게 평점 테러를 당하며 그녀의 추락이 시작된다. 깎인 평점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고, 차에도 문제가 생겨 평점이 1점대인 아주머니와 카풀하게 된다. 그녀는 레이시를 보며 예전의 자신 같다며 레이시를 안타까워한다.



겨우 결혼식에 다 와 가는 중 레이시는 평점 2점대인 너는 절대 내 결혼식에 오면 안 된다는 나오미의 전화를 받게 된다.



하지만 평점 테러에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자포자기 상태가 된 레이시는 나오미의 결혼식에 기어코 입장해서 나오미의 과거 나쁜 행동들을 까발리다가 결국 결찰에게 잡혀서 감옥에 가게 된다. 감옥 안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평점에서 자유로워진 레이시는 옆 방 남자와 서로 주저 없이 쌍욕을 해대며 드라마가 끝난다. 비로소 진짜로 웃게 되면서.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레이시의 가식적인 입꼬리를 보니 내 입꼬리까지 경직되어 쥐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화장이 엉망이 된 레이시가 쌍욕을 퍼붓는 장면을 보며 가면을 벗어던지고 무대 뒤로 퇴장하는 배우가 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평점을 올리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짓고, 진심이 아닌 이벤트를 기획하고, 그렇게 올라간 평점이 무형의 자산이 되어 평점을 또 올리고.

사소한 실수로 평점이 떨어지고, 떨어진 평점이 행동을 제약하고, 그래서 또 평점이 떨어지고.






이렇게까지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일상의 전부가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자기를 지키며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을까. 사실 이 시나리오가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드라마 못지않은 가혹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정한,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기준으로 끊임없이 남에게 평가받는다.


얼마나 예쁘고 키가 큰지

얼마나 날씬하고 학벌이 좋은지

얼마나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는지

얼마나 좋은 직업을 가졌으며 연봉은 얼만지

얼마나 잘난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이 있는지

얼마나 유머 감각과 패션 센스가 있는지

얼마나 좋은 신발을 신는지

얼마나 좋은 음악을 듣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너는 못생기고 난쟁이 똥자루잖아

너는 돼지에 지잡대잖아

너는 월세 살고 똥차 타잖아

너는 직업도 후지고 월급도 쥐꼬리잖아

너는 흙수저에 센스도 똥이잖아

너는 후진 신발을 신잖아

너는 거지 같은 음악을 듣잖아

너는 싸구려 음식만 먹잖아


이런 기준과 평가에 동의하고 거기에 맞추어 조금이라도 더 평점 높은 인간이 되기 위해 레이시처럼 발버둥 치며 일생을 보내야 할까. 유감스럽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고 있는 당신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기 힘들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남의 평가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사는 것이 무가치한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을 망가뜨린다고, 지금이라도 당장 '좋아요'에 관심을 끄고 진짜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경고한다.


그러면 어떻게 보잘것없고 하찮을지도 모르는 ‘나’를 긍정적으로 규정하고, 기꺼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내 인생 영화 ‘노트북(notebook,2004)’에서 찾았다.


***''좋아요'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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