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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Apr 29. 2021

윤여정 패션, 자기답게 아름답고 싶은 자들의 로망






아름답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여기서 '아름답다'는 것은 내적인 것까지 포함한다. '자기'를 제쳐두고 언제까지고 남의 아름다움을 찬양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뛰어난 아름다움이 찬탄을 자아내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에 탐닉하는 것은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박수만 치다 삶을 끝내고 싶진 않다. 박수를 받고 있는 존재들처럼 나도 아름답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미지 출처: 에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잘못된 염색약으로 검게 변한 자신의 머리를 보며 비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어."

이 말을 들은 내 애인이 내게 말했다.

"쟤 자기 같애."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예쁜 것에 늘 각별하다. 아름답고 예쁜 것에 각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진다. 나도 예쁘고 싶고, 아름답고 싶다.


나는 타고난 이목구비가 정교한 미녀가 아니다.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를 가지지도 못했다. 나의 외모는 전형적인 미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분투해 왔다. 찬탄을 받는 존재들처럼 나도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관련한 첫 번째 좌절


20대 때는 내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 어떻게 화장을 하고 어떻게 옷을 입어야할지 몰랐다. 어려웠다. 그래서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걸 입고, 잡지에 나온 화장법을 따라했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꾸미기 전보단 예뻐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쁘게 타고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노력에 비해 결과는 처참한 쪽이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면 순위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 나는 타고난  미남미녀를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진 고유한 것들이 외부로 아름답게 발현되기를 꿈꿨다.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는 상대적인 예쁨을 찾고자 했다. 그러면서 점점 중증 홍대병 환자로 변모해 갔지만(ㅋㅋㅋ) 괜찮았다. 고유한 것을 꺼내어 예쁘게 드러내 보이는 방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서른 살 쯤 되어서야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동시에 어떤 옷이 내게 어울리는지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체형을 커버한다기보다 어떤 느낌의 옷이 나를 잘 보여주는지, 어떻게 눈썹을 그려야 내 원래 얼굴에 잘 맞는지를 알 것 같았다. 나이나 직업 같은 것과 무관하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또렷하게 생겼다. 자주 찾는 브랜드가 생기고, 옷이나 악세사리를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꾸미고 치장하기가 즐거웠지만, 좀 더 깊은 재미를 느끼게 됐다. 자켓이, 스커트가, 반지가, 가방이, 구두가 말이나 글처럼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 표현은 언제나 상쾌하고 즐거운 것이다.



아름다움과 관련한 두 번째 좌절


이제야 겨우 내 스타일을 찾았는데, 최근 몇 년 들어 다시 한 번 좌절했다. 불필요한 군살이 붙으며 안들어가는 옷이 생기기 시작하고, 못생긴 주름이 생기며 예전처럼 화장이 촥 붙지 않는다. 나에게도 어김없이 '노화'가 찾아온 것이다. 잘 어울린다 싶은 옷을 입어도 전처럼 핏이 예쁘지 않고, 전보다 나은 화장품과 화장 실력으로 무장해도 전처럼 얼굴이 화사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예쁨'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이제 망했나?'

싶은 순간에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배우 윤여정님이다.


늙어도 예쁜 연예인들은 수두룩하다. 그런 분들을 보면 희망을 얻기는커녕 절망을 맛본다. '어떻게 저렇게 이쁠 수가 있겠어? 난 저렇게 안 생겼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미지 출처: 뉴스엔미디어



하지만 윤여정은 다르다. 그녀 역시 미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로망을 자극하고, 희망을 준다. 그녀는 자기답게 늙었다. 자기답게 아름답다. 자기다운 삶이 곱게 쌓이고, 그것이 밖으로 뿜어져 나와  지금의 아름다운 그녀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패션을 구사한다. 내가 늙어서 절대 갖고 싶지 않은 것이 '권위'인데, 그녀의 우아한 패션에는 놀랍게도 '권위'가 쏙 빠져있다.


최근 오스카 시상식 뒤에 입었던 윤여정의 항공점퍼가 화제다. 패션을 나이에 가둘 수 없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예능에 나올 때마다 나는 그녀의 패션을 눈여겨 봐 왔다. 자연스런 핏의 청바지나 스트라이프 티셔츠. 독특한 모양의 선글라스나 무심한 듯 눈길을 끄는 쥬얼리들. 특히 그녀가 자주 하고 나오는 c사의 브레이슬릿이나 링은 어떤 젊고 예쁜 연예인이 한 것보다 훨씬 멋졌다. 비정상회담에 나왔을 때 하얀 가죽줄 시계와 브레이슬릿을 교차시켜 레이어드한 것을 봤는데, 너무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고 여러 번 돌려봤다.



*이미지 출처: 꼼데가르송 인스타그램



늙어가고 있는 나는 그녀의 패션을 보며 희망을 찾았다.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다움'이다. 자기다움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삶의 태도가 센스있고 멋진 패션으로 발현된 것이다. 자기다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은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다. 그것은 '노화'조차도 압도한다.

 


*이미지 출처: 스포츠 한국(좌), 유희열의 스케치북(우)



항송점퍼를 입은 윤여정이 털털하게 권위를 내려놓고 예의 그 정다운 말투로 말할 때, 찬혁이가 춤을 추거나 자기가 만든 노래에 대해 말할 때, 화사가 청바지에 크롭한 란제리 탑을 입고 춤추고 노래할 때


나는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어떤 젊은 미남 미녀보다 섹시하고 힙하다. '자기다움이 발현된 예쁨'을 '세상의 기준에 맞춘 몰개성한 예쁨'이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나는 보았다.






세상에 젊고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너무 많다. 그들을 따라가려고 무리해서 성형을 하고, 몸매를 가꾸고, 비싸고 화려한 것들로 치렁치렁 자기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아름다움에 표본이 있고 등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움에는 기준도, 표본도 없다.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다움일 뿐이다. 아름답게 늙을 수 있는 것 또한 그러하다.


무성한 백발과 주름 가득한 얼굴이 '나다움'으로 아름다울 나의 노년을 꿈꾼다. 그것과 동시에, 흉내낼 수 없는 다양한 예쁨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그런 세상에는 부끄러움도, 부러움도 없을 것이다. 각자의 색깔로 모두가 자유롭게 아름다울 것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lovesavina



*유사한 생각을 담았던 글을 링크합니다. ^^


https://brunch.co.kr/@redangel619/53


https://brunch.co.kr/@redangel619/146



P.S. 너무 멀어서 안 들리시겠지만, 존경하는 윤여정 님의 오스카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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