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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ul 03. 2021

금손이 되고 싶어

기분 전환






전업작가도 아닌 내가 글쓰기를 묵묵히 지속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민한 감수성만은 예술가 못지 않은지라 아주 작은 것들에 감정이 흔들렸다. 좋아하는 건 그리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지속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세상에 그런 건 없었다. 좋아하면 잘하고 싶어진다. 잘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으려 해도 애를 쓰게 된다. 잘하나 못하나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때론 즐기는 것에 방해가 된다.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일에는 늘 설레는 번민이 따라 붙는다.


이 짝사랑의 끝에 뭐가 있을지 두려워진다. 한 것도 없으면서 얼른 사랑받고 싶다.


뒤돌아서서 얼굴 한번 돌려주지 않는 상대의 앞으로 다짜고짜 뛰어가서 싫다는데 끌어안아 버리고 싶은 무례하고 조급한 마음. 되지도 않은 욕심만 앞서고 그 욕심에 마땅한 성실함은 없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쪼물쪼물 대충 만든 것 같은데 좋은 문장을 빚어 내는 사람들. 타고난 꾸준함으로 체력 좋게 매일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써 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끄적거려 놓은 소설들이 완성되지 못한 채 잔뜩 서랍에 널부러져 있다. 계획했던 공모전들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내 습작은 같은 자리만 오랫동안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얼마나 어려운 상대를 짝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굉장한 지구력과 단련된 평정심을 요하는 일. 그것들을 단단히 쥔 채 잘쓰고 있는 것 같든 후진 것 같든 간에 그저 매일매일 일정 분량씩 쓰고 또 쓰는 것. 그래야만 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게 돼 버린 것이다. 내게 어울리는 건지 안 어울리는 건지 재보지도 않고 무작정.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 이따위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까일까 두렵지만 들이대 보고 싶은 마음.


애들 가르치는 일도 답답할 땐 무지 답답하다. 어디까지나 '코치'이다 보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선수의 치명적인 실수나 부주의로 형편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그다지 애쓰지 않아도 선수의 뛰어난 재능이나 행운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좋은 결과도 나의 공이 되지만, 나쁜 결과도 나의 탓이 된다. 내가 직접 손댈 수 없는 것이 내 공이 될 때의 얼떨떨함과 내 탓이 될 때의 억울함. 그 기분은 코치가 돼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오랜 시간 진득하고 묵묵하게 애를 써야만 어디 들이대 볼 수라도 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소설쓰기'

내가 직접 만질 수 없는 것임에도 공과를 책임지고 꾸역꾸역 개선을 해 내야만 하는 '가르치기'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두 가지에 다소 마음이 상한 나는 기분을 좀 바꾸고 싶었다.


순돌이를 추모한다고 샀던 자나장미가 예쁘게 말라서 리스를 만들어 볼까 하고 꽃시장에 갔다. 말린 블랙잭 유칼립투스와 리스틀을 사 왔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으면서 빠른 시간 안에 완성품을 볼 수 있는 것. 그런 걸 만들면서 기분을 풀고 싶었다.




코에 닿는 듯 강한 블랙잭유칼립투스 향이 만드는 내내 기분을 좋게 했다. 큼직큼직한 유칼립투스 잎을 리스틀에 묶고, 중간중간에 예쁘게 마른 자나장미를 꽂아서 묶었다. 시계 바늘을 따라 빠르게 채워지는 리스틀. 아무 생각없이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이런 시간엔, 머릿 속이 선명한 감각으로만 채워진다. 더없이 상쾌한 시간이다. 마르지 않은 생화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싶긴 했지만.





두어 시간 정도 걸렸나. 마침내 짙은 초록색 유칼립투스 잎들이 갈색의 리스틀을 완전히 덮었다. 군데 군데 꽂힌 빈티지한 자나장미가 자연스럽게 예뻤다.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지난 몇 주.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되었다.




기분을 풀기 위해 일부러 품을 들여 만든 것이지, 사실 이런 건 돈을 주면 꽃집에서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준다. 전문가니까 더 멋지게 만들어 주겠지.


두려움 없이 글을 쓰고 싶다. 욕심보다 성실로 글을 대하고 싶다. 나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나여야만 쓸 수 있는 소설을 끝내는 써 내고 싶다. 기어코 그걸 잘 해내고 싶어서 엉뚱하게 이런 것까지 만들고있는 것이다. 벽에 걸린 리스는 예쁘고 향긋했다. 언젠가 내가 만든 그것도 이것처럼 예쁘고 향긋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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