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고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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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는 동생 '윤'이가 친구 '연우'에게 매일 맞고 오는 게 안쓰럽다.
선: 연우가 때리면 가만히 있지 말고 너도 때려야지!
윤: 그럼 언제 놀아?
선: 응?
윤: 연우가 때이구(때리고) 나도 때이구 연우가 때이구, 그럼 언제 놀아? 난 그냥 놀고 싶은데?
선: ......
-영화 '우리들' 중
귀여운 꼬마의 한 마디가 가슴을 때린다.
난 언제 놀까?
나에게 '노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진짜 노는 것이겠지.
애석하게도, 노는 건 항상 미뤄져왔다.(우리 모두에게 그랬다.)
주말이 되면.
방학이 되면.
대학생이 되면.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하면.
애들 좀 크고 나면.
돈을 좀 모으면.
집을 사면.
승진을 하면.
확장을 하면.
좀 더 벌면.
......
이런 식으로 자꾸 미루다 놀 힘도 없는 백발의 노인이 될까 두렵다. 그 노인의 손엔 무엇이 쥐어져 있을까. 이제 쓸 시간도 없는, 사실은 원하지도 않았던 알량한 무언가가 쥐어져 있겠지. 그 얄량한 것이 노인의 지난 시간을 보상해 줄까.
나는 몇 년 간 이런 성찰을 해 왔다. '되도록 하고픈 일에 내 시간(삶)을 쓰자. 결과가 어떻든 하고픈 일에 쓴 시간(삶)은 온전히 내 것이 될테니.'라는 생각으로.
그 성찰의 일환으로 내가 하게 된 것이 바로,
'소설 쓰기'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소설' 마니아였다. 나를 쉬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예술은 언제나 '소설'이었다. 자주 소설을 읽었고, 아주 가끔 소설을 썼다. 아주아주 가끔.
그 '가끔'이 '종종'이 되던 무렵, 브런치 작가가 됐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발행한 몇 편의 글을 애인에게 보여 주고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이런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닌데......"
에세이는 비전문적인 글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그건 거짓말 같았다. 어떻게 쓸지 몰라 그냥 마음 대로 썼다. 브런치 북을 묶으며 봤던 초창기 글은 스스로 보기에 처참했다. 너무 '논설문' 같았다. 딱딱하고 직설적이라 더더욱, '이런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담백하고 멋진 에세이를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결과와는 별개로, 그리고 '의외로' 나는 재미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마감 직전 날 허둥지둥 '그래도 한 번 해볼까?'란 마음으로 써서 부랴부랴 응모했던 공모전이 '넷플릭스 스토리텔러'였다. '상금이 너무 짜다'며 오히려 많은 작가님들에게 외면 당하기도 한 공모전이라는 어느 글을 뒤늦게 보고 머쓱하기도 했지만, 나는 사실 감지덕지였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나는 명백한 아마추어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페이를 받는 작가가 아니고, 그냥 연습하고 있는 연습생. 그런 나에게 글을 쓴 대가로 무언가를 주고, 공식 배너를 단 활동을 시켜 주는 것이 고마웠다. 다른 사람에겐 별 거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열 편의 글을 발행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말이 많아진다. 그 영화 내용을 가지고 온갖 내 경험을 끌어내어 애인을 앞에 두고 수다떨기를 즐긴다. 그만한 술 안주가 없지. ^^ 그렇게 떠들고 싶은 말을 글로 적었다. 어릴 때의 예쁜 추억이나 아픈 기억에, 글을 쓰다 멈추고 웃고 울었다. 영화 내용에 기대어 내 지난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내 삶을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진심을 다해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활동을 하고, 브런치 북을 묶으며 '내가 쓰고 싶지 않았던 글'을 의외로 재미있게 썼다. 고맙고 뿌듯한 일이다. 즐거이 보낸 시간에 더해, 그것이 '글'이라는 흔적으로 남기까지 했다. 즐거움을 찍은 사진 같은 내글들이, 어설프지만 예쁜 내 유년처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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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이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세 편 정도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 구상 중인 소설이 또 서너 편 정도 있다. 마음에 둔 공모전이 두 군데 정도 있다.
나는 매일 소설을 쓰진 않지만, 매일 소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느낀 어떤 '감정'을 말하고 싶어진다. 그 감정을 잘 말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물이 하나 둘 씩 만들어진다. 그 인물의 캐릭터가 점점 또렷해지고, 그들끼리 관계를 맺는다. 사건이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 처음 생각했던 '감정'을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대략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걸 생각하는 중이나, 다 생각한 후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이런 생각을 하고, 써 보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을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좋아만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뭐 어떼?!'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거짓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잖아? 좋아하는 것에 삶을 쓰고 있잖아?'라는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을 다독이며 계속 소설을 써 보려 한다.
소설을 생각하는 순간 만큼은, 이 세상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은 '내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다.
'소설 읽기를 그토록 좋아하고, 소설가가 되고 싶은 나'이지만 글쓰기를 배우거나 필사를 하는 것에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고, 그것을 끄집어 내는 방식도 결국은 자기가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모국어를 다루는 기본적인 소양만 있다면, 자기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잘 들여다 보고, 그것을 꾸준히 써 보는 것만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쓰기 전 생각을 다듬는 과정에서, 쓴 후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타인과의 소통이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쓰는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자기 안에 침잠해서 그것을 천천히 혼자서 꺼내는 것. 글쓰기가 그런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게 아닐까.
직업적인 작가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글쓰기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글쓰기를 제외한)노동' 없이 먹고 살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기꺼이 소설쓰기에 내 삶을 쓸 것이다.
이제는 정말 '나'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소설가 '은희경'님이 서른 중반에 '이러다 내 인생 끝나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노트북 하나만 들고 산 속 절에 들어가 완성한 소설이 첫 장편 '새의 선물'이었다고 한다. '이중주'라는 단편으로 등단했지만 소설가로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새의 선물' 이후로 삶이 바뀌었다 한다.
지루한 생업을 엎어버리고 모아논 돈이나 아껴 쓰면서 나도 어디 틀어박혀 매일 소설을 써 볼까. 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하지만 꼭 그리하지 않아도, 나는 부쩍 요즘 내가 행복해졌다고 느낀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쓰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아서일 것이다.
뭐가 될 수 있을지, 이렇게 살다 더 늙어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뭐가 되어도, 안 되어도 괜찮다.
어쨌든 나는 '내'가 되긴 했으니까.
글과 어울리는 시 한편과 노래 한 곡 첨부합니다.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P.S. 브런치가 소설과는 다소 거리가 먼 공간이긴 하지만, 제가 일상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브런치 작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 만의, 몇 천의 구독자를 보유한 작가님들에 비하면 초라할 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제 글을 읽어 주시는 작가님들과 독자님들의 관심이 저에게는 눈물나게 소중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들러 댓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 좋아요를 눌러 주시는 분들, 구독하지 않더라도 지나가다 제 글에 눈길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