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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17. 2022

Going Home 3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https://brunch.co.kr/@redangel619/351







Going Home


  대문이 빼꼼하게 열려 있다. 눈치를 보며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아래에 괴어놓은 묵직한 돌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은수는 잠시 멈춰선다.  물기가 촉촉한 눈이 반짝 생기를 내며 중호를 떠올린다.  덜겅거리는 캐리어를 아무렇게나 끌고 가는 은수의 뒤를 오후의 볕이 다정하게 따라간다.


   "오빠!"


  커피머신 소리에 갇혀 있던 중호가 그제서야 현관 쪽을 돌아본다. 여전히 동그랗게 울리는, 듣기 좋은 은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중호는 눈가에 주름을 그리며 얼굴 전체로 웃는다. 일그러진 얼굴은 얼핏 보면 우는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둘은 울음과 웃음이 섞인 눈을 맞추며 서 있는다. 정직한 그리움이 둘 사이의 공간을 팽팽하게 채운다. 서먹함이나 서운함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나도 안 변했어. 그대로야."


  은수가 중호 곁으로 걸어와 중호를 끌어 안는다. 중호는 아무 말도 없이 은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어깨를 세게 쥐어 안는다. 중호에게 잘 알던 은수의 냄새와 처음 맡아 보는 냄새가 섞여서 난다.  은수에겐 잘 알아 몹시 익숙한 중호의 냄새만 난다. 말했던 그대로 중호는 변한 것이 없다. 어깨를 세게 잡는 습관도, 머리를 쓰다듬을 때의 온기나 단단한 촉감도.


  둘은 똑같이 이런 재회를 예상했었다. 만남과 헤어짐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떻게든 그 패턴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처음 헤어질 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고, 처음 다시 만날 땐, '우리가 다시 헤어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헤어짐과 재회가 두번째가 되고 세번째가 되면서, 헤어지면서는 다시 만나는 순간을, 다시 만나면서는 또 헤어질 순간을 상상하게 되었다. 은수는 그러려는 의도 없이 그 모든 순간을 주도했다.


  은수는 어딘가에 아주 중요한 것을 두고 온 사람처럼, 당연히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중호를 떠났다. 그리고 가출을 했다가 가진 것이 모두 소진되어 돌아오는 어린 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왔다. 중호는 이 모든 과정에 무력했다. 영혼이 먼저 집을 나가 겉도는 은수를 도저히 잡아둘 수가 없었고, 사실 자기가 찾던 건 여기 있었다는 표정으로 자연스레 돌아오는 은수를 다시 안을 수밖에 없었다.


  찹찹한 은수의 손이 따뜻해질 때까지 중호의 손은 한참 동안 은수의 손을 감싸고 있다.




오래된 시계


  긴 여행에서 돌아오면 은수는 항상 긴 낮잠을 잤다.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부드럽고 연한 촉감의 파자마를 입고, 중호가 빨아 놓은 바삭한 이불을 덮고서. 은수가 뿌리는 향수의 향은 익숙해지면 바뀌어 코가 예민하지 못한 중호가 기억하기는 어려웠다. 파자마의 촉감만은 언제나 비슷해서 중호가 은수를 기다리며 따로 두어 벌 사 두기도 했다. 중호는 자기가 가늠할 수 있어 세심히 챙길 수 있는 은수만의 패턴을 아꼈다.


  중호는 잠든 은수를 한참 내려다 보고 있다. 머릿속에만 살던 은수가 눈 앞에 누워있는 게 비현실적어이서 몇번이고 만져 보려다가 깰까봐 주저한다. 여전히 새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 여전히 봉긋한 이마와 결이 좋은 피부. 눈가에 잔잔하게 자리잡기 시작한 주름과는 별개로 여전히 중호의 눈엔 추위에 떨다 집을 찾아든 아이처럼 애틋하다.



  은수가 중호를 처음 떠난 건 7년 전이었다.


  중호 아버지의 바람에 평생을 시달렸던 중호의 엄마는, 남편으로부터 완전히 놓여 난(중호의 아버지는 결국 황혼 이혼을 하고 같이 살던 여자와 늦결혼을 했다.) 순간부터 급격히 자기를 잃어 갔다. 마음의 응어리가 몸을 다 망쳐버린 건지, 뒤늦게 알게 된 그녀의 몸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에 퍼진 종양은 빠르게 그녀의 몸을 죽어 가게 했다. 삼키면 토해 버리며 앙상해져가던 작은 몸과, 눈물이 말라붙어 퀭하던 검은 눈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겼다. 중호의 아버지가 결혼을 한 뒤, 육 개월을 채 못 넘기고 중호의 엄마는 죽었다. 그녀는 죽기 전 제 정신이 아니었을 때(어쩌면 이 때가 오히려 제정신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중호의 아버지를 찾았다. 어떻게 느이 엄마 얼굴을 내가 보겠냐며 거절하는 아버지를 겨우 끌고와 앙상한 그 손을 잡게 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움푹 팬 눈에 뜨거운 눈물을 가득 담은 채 눈을 감았다. 지긋지긋한 외곬이었다.


  중호는 그런 엄마를 똑같이 닮았다.


  아버지의 손을 기어이 잡고 나서야 눈을 감은 엄마. 움푹  눈꺼풀 위로 차오르던 검은 눈물.  장면은 중호에게 무겁게 남았다. 손목시계 하나를 사면 가죽줄이  헐어져도 바꿀  모르는 중호는, 계절마다 향수를 바꾸는 은수가 불안했다. 불안한 사람은 상대를 믿지 못했고, 믿음을 주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를 불안하게  사람은 어쩔  없이 피로해졌다.


  “이 다 떨어진 시계 좀 버려!”


라고 화를 내던 은수는, 엄마를 그렇게 보내고 엉망이 된 중호를 두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렇게 은수가 사라지고 이 년 쯤 지났을 때, 중호는 은수의 인스타그램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은수의 사진을 봤다. 눈을 감으면 자연스레 그려지는 은수의 동그란 이마와 깨끗한 눈매, 가늘게 각이 진 어깨라인 같은 것들이 웨딩드레스 때문인지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져 중호는 속을 앓았다. 낯선 은수를 한참 쳐다보며 소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그러고 나서 이 주 쯤 지났을 때, 갑자기 은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오빠한테 가면 라면 끓여줄 수 있어?


  은수는 중호가 기껏 만들어 준 파스타는 하나도 먹지 않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 같은 건 안 하고 싶다며 짐을 풀었다. 둘은 티비가 없는 중호의 오피스텔에서 중호의 노트북으로, 파혼을 하고 돌아온 첫사랑의 여자만을 평생 사랑하다가 그녀가 죽는 날 함께 죽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를 보며 끌어안고 말없이 오랫동안 울었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그날의 격정 가득한 해후와, 더없이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오늘의 재회. 중호는 새삼스레 그 날과 오늘을 비교해 본다. 곤히 잠들어 큰 숨소리를 내는 은수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중호의 손목을,  오래된 시계가 감싸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부제는 '자우림'의 노래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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