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겠지
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
새벽 사이 꽁꽁 언 기다란 그물을 비닐하우스 안에 얼기설기 늘어놓고, 짧지만 강한 한낮의 겨울 햇살에 녹기를 기다리며, 난 뭘 하고 있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코 끝을 스치는 강물 냄새를 맡으며 아직 덜 녹아서 차가운 그물의 엉킨 부분을 조심조심 풀어내고 낙엽과 나뭇가지 따위를 떼어냈던 그때의 나와, 한 쪽 입가에 비스듬히 담배를 물고 서서 그물 끝을 개키던 아빠의 모습만은 선명하다. 내 기억 속의 겨울 햇살은 마치 반짝이는 가루처럼 우리에게 천천히 내려앉았고, 아빠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중에서는 손꼽히게 평화로웠던 순간이었다. 왜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나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낚시를 할 때, 근처에서 한참 동안 그물을 사리던 한 아저씨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았나 보다.
이젠 내게 너무나 익숙한 구룡포항의 풍경 속에 너를 앉혀둔다. 따가운 여름 햇살에 지칠 법도 한데 제법 끈기가 있다. 민장대를 내려두고 입질을 기다리는 너의 모습은 마냥 평화롭다. 우리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아마 그물을 사리던 나와 아빠 사이에도 대화는 오가지 않았을 것 같다.
아빠가 잡은 고기는 작고, 내가 잡은 물고기는 크다며, 물고기의 무게만큼 크게 휘어진 민장대 같은 호선을 그리는 너의 눈 모양이 사랑스럽다. 나는 너를 바라보기도 하고, 네가 낚은 물고기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시시각각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한낮의 여름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늘 아래 앉아서 오가는 낚싯배들을 보는 건 마음이 편안했지만, 그물을 사리는 아저씨의 표정을 가까이에서 보며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와 함께 그물을 사리던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미안했을까. 고마웠을까. 그도 아니면 그저 고단했을까. 나는 돌이켜 생각해 보니 행복했던 것 같다. 손가락 끝이 꽁꽁 얼어도 매번 따라갔던 걸 보면.. 아빠도 행복했겠지? 어차피 내 질문에 대답할 이는 세상에 없고, 추억은 남겨진 사람의 몫이므로, 이 정도는 나 좋을 대로 각색해도 될 것 같다.
"바다는 알 수 없다"라고 몇 번이나 말해주긴 했지만, 폭염 속에서 발갛게 익어가며 견디고 있는 아들이 웃을 수 있도록 부디 물고기가 낚여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인생은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지만, 너에게만큼은 비례했으면 좋겠다.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