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팥 Aug 02. 2018

별자리는 보고 싶지만,
나의 마음을 알고 싶진 않아

누군가 '20살부터 꾸준히 해온게 있어요?' 라고 묻는다면, 하나 떠오르는게 바로 '별자리 운세 보기' 이다.


  학교 가는 길, 지하철을 타면 난 어김없이 폰으로 내가 자주 가는 블로그에 접속한다. 블로거들이 감사하게도 직접 해외에서 유명한 점술가들의 별자리를 가져와서 번역해준다. 종류도 월간/주간/연간, 그리고 궁합까지... 심지어 내 출생 연시에 따라 주어진 행성에 맞는 성격 풀이도 자세하게 있다. 또 나 혼자의 운세만 보는 것이 아니다. 스크롤을 쭉 내려서 12개의 별자리 중 내가 속해있는 별자리의 운세를 찬찬하게 읽고 틈이 나면,  내친 김에 친구 것도 읽어본다. 얘는 이번 주에 운세가 좋을 것인지, 나쁠 것인지. 이런 사이클을 한번 겪고 나면, 어느 새 학교에 도착해있다. 

  포스팅 댓글이 백 여개가 달리는 것을 보면, 나와 비슷한 패턴을 지닌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댓글 이외에도 포스팅이 조금만 늦으면 블로거한테 빨리 올려달라는 쪽지도 많이 보내 그 쪽도 나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한 주가 끝날 무렵에는 어떤 점술가 운세가 맞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해하는 글도 종종 보인다. 

  

  별자리 운세의 장점은 '앞으로 다가올 일에 조금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다. 다가올 일주일의 운세에 '잘될거다' 라는 말이 있으면, 어느 정도 힘을 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점술가들도 최대한 '나쁜 일이 있을거에요' 라기 보다는 '조심하면 괜찮아요' 라는 말을 많이 쓰려고 한다고 들었다. 별자리에 오랫동안 심취하다보면, 세상 만사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많다. 그래서 굳이 스트레스 안 받고 물 흐르듯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매번 올라오는 별자리 운세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싸면서 가벼운 상담 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막상 심리 상담 하기 부담스러워 하는데, 몰래 몰래 보는 별자리 운세는 텍스트로서 줄 수 있는 가벼운 신경 안정제지 않을까.

출처: 유미의 세포들 / 네이버웹툰

 

하지만, 별자리 운세는 나의 마음이든, 타인의 마음이든, 모든 것을 텍스트에 의존하고 만다. 그 사람이 행동을 해도, 직접 그 사람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별자리로 파악을 한다. 별자리 카페에는 '사수녀와 처녀남... 잘 될까요?' 라는 식의 글이 숱하게 올라오는데, '그걸 왜 여기에 묻고 있나요?' 라고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그 남자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사람은 그래도 오랫동안 곁에 있었을 당신이고, 관계에 대한 해답을 안면식도 없는 우리가 내줄 권리가 있을까요?' 말이다. 별자리는 단순히 내 허기를 채워줄 스낵거리이지, 나의 정신까지 잡아먹을 존재가 되면 안된다. 


결국은, 사람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불안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스타를 통해 가식적으로 드러내는 모습, 브랜딩해서 정의해야 하는 나 자신... 내 존재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인식이 되어 있지만, 그로 인해서 가장 멀어지는 것은 내 주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으로 기술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하지만 여전히 감성은 살아있으며,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크다. 감성을 이성적으로 대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이런 점성술 같은 것들이 더 영향력이 커지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요즘 '매너리즘'이란 단어를 많이 듣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