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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인생 Mar 20. 2023

신념

전교조, 그러니까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이란 조직이 내가 중학교 1학년때 설립되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전교조를 반국가단체로 규정지었고 전교조 소속 교사들 중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경찰에게 끌려나가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사실 나는 잘 몰랐지만 하튼 뉴스에서 전교조가 빨갱이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서초동에는 신흥 부자들이 슬슬 몰려와서 살기 시작할 때였고,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새로 생긴 학교였기 때문에 좋은 선생들이 많이 배정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서울대를 졸업한 선생들이 그렇지 않은 선생들보다 훨씬 많았다. 누구도 수업 도중에 아이들에게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기껏해야 4.19 나 5.16 때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 주곤 하는 정도였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물리 과목을 물상이라 불렀고, 틈만 나면 매일 4.19 때 이야기를 해주시던 할머니 선생님이 가르쳤었다.  어린 마음에도 저 할머니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르칠 건 다 가르치는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중 2가 되자 과목 이름이 물리로 바뀌었고 담당 선생은 우리 학교에 갓 부임한 젊은 여자 선생이 되었다. 미인이라 불릴 만했지만 체구가 매우 말랐고 뭔가 항상 눈이 반짝이면서 결의에 차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지구과학을 전공하였으며 사회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경험상 나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한다. 왜냐면 마른 사람들 중에 신경질적인 또라이들이 은근히 많기 때문이다.  물론 돼지들 중에서도 미친놈들이 많긴 하지만 그들은 몸이 무겁기 때문에 갑자기 달려와서 공격한다던지 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마른 놈들이 진짜 무서운 놈들이다.  또라이에다가 재빠르기까지 하다면 그것은 최악의 조합이다.


물리는 첫 수업에서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교실의 분위기는 뜨뜻미지근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미국 프로레슬링이 아직도 진짜라고 믿는 바보들에게 한민족이 세계열강 앞에서 보여야 할 당위성 같은 이야기가 먹힐 리가 없었다. 우리 한민족은 가엾게도 강대국의 주사위놀음에 국토가 반으로 찢겼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흥분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미국에 빌붙어 그들의 식탁 아래서 떨어지는 것을 주워 먹으면서도 그들에게 고마워하며 살고 있지만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반에서는 물리의 말에 동조하고 싶은 아이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고, 메시지를 알아들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들은 저게 티브이에서만 보던 빨갱이 전교조 년이구나 하며 등을 돌렸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속했다. 물리의 말대로 미국도 나쁜 짓을 많이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거지 나라에 공산당이 쳐들어왔다고 자기네 돈과 인명을 쏟아부을 정도라면 의도야 어쨌든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다.  미국이 그만큼 얻어 갈 게 있으니까 도와줬겠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감사의 표시는 상대방의 의도를 넘겨짚은 다음에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실을 바탕으로만 고려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는 고마워할 일이 하나도 없다. 사실 우리 부모들도 지들 좋으라고 우리를 낳은 게 아닌가.


물리는 매주 전략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우리를 깨우치려고 노력했다.  6.25는 사실 미국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반공교육은 잘못된 것이고, 사실 북의 동포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한 겨레라며 87년 대선에서 잠깐 나왔다 들어간 백기완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우리에게 읽어주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고 뭔가 좀 지루했던 글이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러면서 맹목적인 반공사상 때문에 너희들은 북한 사람들이 정말 머리에 뿔이 나고 늑대처럼 이빨이 난 괴물이라고 생각한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북한에는 사람이 아닌 괴물이 산다고 믿는 아이들이라면 애초에 그런 바보들은 뭘 가르쳐봐야 소용없을 것이었다.  어차피 그런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서 성인이 되면 온갖 쓸데없는 유언비어에 괴담이란 괴담은 모조리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는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피를 나눈 한민족 어쩌고 하는 말도 전혀 감흥이 오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싸울 건덕지가 없다. 여차하면 원수가 되는 게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형제나 친척이다. 특히 돈이 관련이 되면 성인이 된 뒤 제일 조심해야 될 사람들은 가족이다. 아버지도 할아버지 생전에 항상 월급에서 얼마간 떼서 꼬박 갖다 드렸었고 합가 한다는 명분으로 살던 집까지 갖다 바쳤지만 돌아가신 뒤에는 유언장 한 장 보지 못하고 손윗 고모들이 재산을 다 처리했다.  서열이니 예의범절이니 이런 거에 목매던 아버지께서는 그걸 보고도 아뭇 소리도 하지 못하셨다.  다행히 요새 들어서는 아주 물정 모르는 노인네들 말고는 피를 나눈 형제니 민족이니 이딴 쉰내 나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유산을 가지고 재산 다툼이 있을 경우 옛날처럼 첫째가 맘대로 하지도 못하고 대개는 소송으로 결판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물리는 전교조에 대해서도 슬슬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들도 일종의 노동자이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지금 선생님들을 탄압하는 정부의 행태는 옳지 않다고 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선생이란 직업은 지식을 파는 서비스업 종사자이며, 우리는 손님이었다.  선생은 우리에게 최적화된 교육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여야 옳다.  그런데 선생들은 주제넘게도 손님인 우리를 걸핏하면 때렸다.  물리는 여기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수업태도가 불량하거나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으면 때렸다. 학생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도 예사로 했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  하지만 백여 년 전 버나드 쇼는 말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행동을 하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르친다" (‘Those who can, do; those who can’t, teach’)


물리는 우리가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자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을 냈고 몇 번은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녀의 생각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지만 뭔가 사명감과 열정이 있는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밥 벌어먹으려고 선생질하다가 수틀리면 애들이나 패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달랐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은 뭐 하고 사시나 찾아보니 환경위기에 대해서 책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아직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계시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 길에서 1인 시위도 하는 사진도 보았다.  얼굴은 많이 변하지 않았고 살도 조금도 찌지 않았다.  아직도 나와는 생각이 다르신 분이었다.  지구가 온난화되는 것은 사실이고, 인간이 주범인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플라스틱 안 쓰기 같은 쪼잔한 행동으로 깔짝깔짝 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인간들은 자기가 그동안 지불했어야 할 대가를 지금 내는 중이고, 아무리 온난화가 되어도 지구는 아파하지 않는다.  지구 위에 사는 인간들이 아파할 뿐이다.  자신들과 후손들의 안위를 지구라는 행성의 안녕과 동일시하는 인간들의 거만함에 합당한 대가는 더 거대한 재앙뿐이라고 생각한다.  환경문제란 건 애당초 지구의 인구가 반으로 줄어버린다면 금방 해결될 문제다.


세상에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많고 이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런 사람들과 생각이 다를 때가 많고 대개 그들은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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