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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인생 May 26. 2023

S (2)

1990 - 2023

캐나다에 도착해서 나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S에게도 편지를 썼지만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S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아이였다. 그 집 어머니는 무척 엄하셔서 편지가 어머니 선에서 없어진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S의 장래희망은 서울대나 하버드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그런 애가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쓸 리는 없었다.


그런데 답장이 왔다.  나는 그 답장을 읽고 또 읽었다.  우선은 S가 답장을 보내줬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고, 두 번째로는 S의 문장이 너무 두서가 없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생각과는 달리 S는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듯했다.  이상하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애가... S가 나의 수준을 낮추어 보고 일부러 어린애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것은 꼭 정비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몇 차례 편지가 오고 가면서 S의 글솜씨도 많이 매끄러워졌다.  S의 어머니는 시험기간이 끝나야 내 편지를 전해주셨지만 다행히 태워버리거나 하시진 않았다.  S가 나중에 말하길 어머니는 저렇게 편지를 꼬박꼬박 보내는 걸 보면 분명히 흑심이 있다며 S에게 주의를 주셨지만 S는 얘는 전혀 그런 애가 아니라고 반항까지 했다고 한다.  다른 대륙에서 편지만 보내는 남자애를 경계하실 정도라면 S에게는 당시 어머니들의 이상적인 플랜, 즉 명문대를 졸업하고 바로 선을 보아서 재력과 매너를 겸비한 남자에게 22세의 나이에 시집을 간다는 미래가 놓여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S는 내가 아는 아이들 중 아마 제일 먼저 결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S는 책을 많이 읽었으며 팝송에 열광했었다. 다른 아이들이 곧 다가올 소풍이 기대된다고 편지에 쓸 때 S는 수업보다 더 싫은 소풍을 가야 할 생각을 하면 괴롭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S가 아직도 따돌림당하기 때문일 거라고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저마다 S의 이야기를 편지에 쓰면서 이상한 아이니 너도 조심하라는 식으로 훈계를 했다.  나는 S에게 별 내색을 하지 않았고 가끔 그놈의 뉴키즌지 뭔지 하는 애들 좀 작작 좋아해라 하는 핀잔만 날리곤 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한번 찍히면 모든 행동이 부풀려지고 입방아에 오른다.  S는 전형적인 물정 모르고 해맑은 양갓집 따님이었다.


일 년이 지나자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이제 공부할 게 많을 테니 그러려니 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스무 살이 되었고 나는 토론토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가끔씩 S는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다. 아직도 왕따일까, 하버드는 갔을까. 그래서 그때까지 편지를 계속 주고받던 오랜 친구 한 명에게 S의 근황에 대해서 물었다.  친구의 답장에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S는 고등학교에서 소문을 몰고 다니는 아이였다고 한다. 연애는 물론이고 수업도 예사로 빼먹고 비행 청소년들과도 어울리는 것으로 모자라 일 년 휴학을 했는데, 임신설이 유력하다고 했다.  나는 잠시 같은 이름을 가진 S가 또 있었던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부모가 아무리 엄해도 애들이 좀 크고 나면 그건 별 효력이 없다. 나의 사촌들은 고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뒷산에 올라가 본드를 불었고 이웃 학교에 가서 패싸움도 했고 어디서 아주 가려운 성병도 옮아오기도 했지만 그들의 부모들이 보기에는 그냥 공부는 못하지만 아주 착한 아이들이었다. 등잔밑이 어두운 외삼촌은 걸핏하면 빠따질을 했고 사촌들이 설설 기면 "애들은 맞아야 제대로 커" 하면서 뿌듯해하셨다.


나는 S의 근황을 전해 들은 그해 겨울 다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  이번에도 답장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옛날에 이사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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