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7
S와의 연락이 다시 끊긴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난 직후였다. 그때는 닷컴 버블의 초기라 아무나 다 인터넷만 제대로 사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온갖 종류의 웹사이트들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소식 끊긴 동창을 찾는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가 특히 유명했었는데, 그 사이트에서 서로 만나서 결혼한 사람들도 많았고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불륜을 하다 들켜서 이혼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외에도 2000년대 초반에는 프리챌이나 '선영아 사랑해' 광고 카피로 유명했던 마이클럽 등이 우후죽순으로 난무하였었다.
S도 아이러브스쿨에서 자주 보였다. 그런데 게시판에 올린 S의 공개글들은 평소 편지에서와는 달리 뭔가 들뜨고 산만한 분위기였다. 내키지 않지만 유쾌한 척을 하는데 읽는 사람들은 아무도 속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심리학에서는 '동창회 효과' 라는 것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 옛날 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그때의 사회적 위치로 회귀하는 현상을 말한다. 옛날 친구를 여러 동창들과 같이 만났을 때 그 사람의 행동은 실제와 다를 경우가 많다.
나는 S에게 종종 댓글을 달았지만 편지와는 달리 답신은 짧았다. 그리고 인터넷이 대중화된 이후로는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았다. 컴퓨터 켜고 게시판에 글 남기면 되는데 뭐 하러 볼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겠는가. 이메일이 두어 번 왔다 갔다 했던 것도 같은데 그때는 POP3라고 이메일이 서버에 남아있지 않고 컴퓨터로 다운로드하는 방식이어서 컴퓨터가 잘못될 때마다 이메일들은 없어졌고 그래서 그 당시의 기록들은 거의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무렵 S는 그 사이트에서 동창과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느라 바쁜 중이었다. 얼마 후 S는 요새 리니지라는 게임에 빠졌고 이것 때문에 유급할 처지라는 글을 남기고 잠수를 했다. 그때가 아마도 게임 폐인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날 무렵이었다. S는 졸업이나 취직 이런 거 생각 안 하고 게임에 몰두해도 굶을 걱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도 당시 첫 직장에 입사해서 생전 처음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차도 사고 밥도 사 먹고 하면서 돈이란 참 편리한 것이구나 하고 느끼는 중이었다. 연락이 오지 않는데 계속 뭐 하냐고 물어보는 것도 그렇고 해서 나도 연락을 그만두었다.
그로부터 한 5년쯤 후에 싸이월드라는 사이트가 생겨났다. 그 당시 기준으로도 조잡한 그래픽에 서버 사정도 형편없어서 매번 정기점검 중이라며 다운되기 예사였지만 사람들은 아이러브스쿨만큼 여기에 열광했다. 그때는 자기 미니홈피에 멋있다며 올리는 사진이나 문구들이 다 시덥잖았다. 40대들이 지금은 교양 있는 척 하지만 한때는 싸이월드에서 온갖 추접한 허세를 부리던 세대이기도 하다. 김구라가 데뷔 초에 인터넷 방송에서 쌍욕 해서 떴다고 지금까지도 비웃음을 당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먹혔다. 욕 잘하는 게 능력으로 간주되던 시대였다.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은 엽기토끼란게 그렇게 재밌다며 매주 새 마시마로 캐릭터 만화를 이메일로 보내주었지만 나는 멀쩡하게 생긴 애가 왜 이런 유치한 걸 좋아할까 의아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문화강국이니 하는 수식어는 당치도 않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고뇌에 찬 하루를 보내는지, 아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고 싶어서 온갖 낯간지러운 사진과 글을 올렸지만, 적어도 그것은 자신의 감성이나 지성을 자랑하려는 의도였다. 그보다 이전 세대들은 인터넷 대신에 대폿집에 모여서 자신들의 하찮은 철학을 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건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사람들은 모이면 애고 어른이고 주식, 코인, 투자, 스타트업, 연봉, 명품 가격, 연금, 세금... 죄다 돈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S도 싸이월드를 하지 않을까 하고 검색을 해 보았다. S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50명인가가 나왔다. 다행히 그때는 개인정보라는 개념도 없을 때여서 자기 얼굴, 나이, 사는 집, 심지어는 주민번호까지 대놓고 공개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S를 다시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S의 페이지는 게임과 팝송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방명록을 보니 얼마 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그따위로 살지 말라며 저주를 퍼부은 게 보였다.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S에게 다시 안부쪽지를 보냈다.
S는 9년 전처럼 반가워했다. 우리는 한 2년 동안 이메일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수없이 했다. S는 약대를 휴학하고 웬 음반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약학은 적성에 맞지 않지만 사실 약사면허가 있으면 평생 굶을 걱정은 없으니 따긴 따야겠으나 지금은 다른 걸 하고 싶다며 현재는 노량진 고시원에서 자취하고 있다고 했다. S는 임성한 작가의 하늘이시여 드라마와 노현정이 결혼한 이야기,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수많은 남자들 그리고 요새 한국 담배들이 맛이 왜 이렇게 약해지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나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 이야기나 월세 살고 있는 아파트가 서향이라 저녁에 너무 덥다는 식의 전체적으로 아무 목적도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S의 꿈은 돈을 모아서 미국으로 뭔가를 공부하러 유학을 가는 것이었다. 그 '뭔가'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옵션이 여러 가지였던 것 같다. 상습 연애범이었던 S는 이메일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짧은 연애를 반복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군대에서 백일휴가 나온 남친을 정리하고 돌아온 어느 날 S는 나에게 자기는 누군가를 사귀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는 것이 귀찮아지고 혼자 있는 게 더 편해지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 나는 S가 돈을 보고 결혼할 계획이 없다면 아마 계속 혼자 살지 않을까 생각했다. S는 30대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게임, 음악, 영화, 연예인 덕질 이외에는 크게 신경 쓰는 것이 없어 보였다.
매달 a4용지 두세장 정도로 답장이 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답장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싸이월드 메시지로 안부를 물었지만 조만간 답장할게- 하는 대답만 오고 메일은 오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는 시들해질 것을 예측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크게 섭섭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당시에 나도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아 이직을 알아보고 있었고 마침 빚을 내어 집을 마련했기 때문에 신경 쓸 데가 많아져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S는 더 이상 싸이월드에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9년이 지났다. 나는 운이 좋게 실리콘밸리의 어느 회사에 입사했고 월급도 예전보다 상당히 많이 올라 안정적으로 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컴퓨터를 정리하면서 예전에 S가 보내주었던 메일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런데 분명히 여러 번 읽었던 메일인데 처음 보는 말이 있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자기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으라면서 번호를 가르쳐준 것이다. 이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다 싶었고 아직도 이 번호를 쓰는지 궁금했다. 전화를 걸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S 씨 전화가 맞나요 하고 국제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한국 시간으로 9시쯤 답장이 왔다. 그런데요 누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