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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인생 Jul 06. 2023

S(5)

2015-2023

나는 S가 그동안 결혼해서 애가 여럿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아무리 결혼 생각이 없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어도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결혼을 했다. 결혼은 비즈니스 거래의 최정점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경우 연애는 이 사람과 같이 계속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는 면접 같은 것이다. 사춘기의 사랑이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린애들은 외모밖에 볼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연애의 종착역은 결혼할 사람 이외에는 이별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후에는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그만큼 연애감정이 바탕이 된 인간관계는 얄팍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어코 이걸 아름답게 포장해야 직성이 풀린다.      


S의 이상형은 뭔가 얼굴이 약삭빨라 보이고 체형이 호리호리한 전체적으로 족제비 같이 생긴 남자였다. 교실 뒤에서 공부 안 하고 껌 씹는 일본 폭주족 스타일로 생긴 남자들이 S의 취향이었다.  재력이니 학벌이니보다도 오직 외모와 몸매가 최우선이었다. 나이를 먹었지만 S는 그렇게 순수한 연애를 지향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지금쯤은 작은 족제비들을 두어 마리 정도 낳고 용산 같은 데 살면서 부부합산 세후 월 천은 벌면서 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S는 아직도 싱글이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9년 전보다는 생기가 덜한 것 같았다.  예전에 그렇게 노래 부르던 유학을 가지도 않았고, 주중은 물론이고 토요일에도 약국에서 페이약사로 진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앞으로 약국을 차릴지 아님 요양병원에 약사로 갈지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 옛날 예술 쪽으로 유학을 간다는 포부를 들을 때와는 달리 매우 현실적인 계획이었다. 추상화인줄 알았던 그림이 물류창고 도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음악과 책을 아직도 좋아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격무에 시달려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주로 카톡으로 대화를 했다. 예전처럼 긴 호흡으로 메일을 쓰기에는 아무래도 나이도 먹었고 시간도 없으니까.  카톡의 특성상 대화의 호흡은 짧았고 주제도 한층 더 가벼웠다.  우리는 연예인 이야기, 음식 이야기, 여행 이야기들을 주로 했고 시간이 많이 나는 날이면 아주 가끔 30년 전 중학교 때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내가 말을 거는 편이었다.  문득 '아, 요새 너무 귀찮게 한 게 아닐까' 하고 연락하지 않으면 2-3주 후에 연락이 오곤 했다.  우리는 스마트폰 세대답게 휘발성 강하고 남는 게 별로 없는 대화를 주로 했다. S와 다시 연락하게 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이번에는 아직 연락이 끊기지 않았다. 이메일이야 그냥 답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카톡은 직접 차단을 해야 하니 그만큼 노력을 들일 이유가 아직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많은 것이 운에 좌우된다. 중2 때 S와 방과 후에 비를 맞으며 오락실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민 올 때 주소를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편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어느 날 갑자기 예전 이메일에서 S의 번호를 보지 않았더라면 S는 나에게 그냥 30년전의 아이로 흐릿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S에게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S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던 예전의 S가 아닐 테니 그렇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S 이외에도 나는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중학교 친구들이 몇 있다. 동네가 좋아서 그런지 다들 전문직 아니면 대기업의 높은 자리에 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자기들도 바쁠 텐데 시간을 내어 준다.  어릴 때 친구들은 뭔가 계산 없이 만나도 괜찮은 듯한 느낌을 준다.  아주 성공한 친구도 있지만 그렇게 자격지심이 들지도 않는다.  우리가 다 비슷비슷한 사회적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S는 그중에서도 약간 특별하다. 돈이 전혀 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 심도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서는 S가 유일하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이야기라던지, 그룹에서 솔로로 전향해서 성공한 가수들이라던지. 어디 곱창집이 제일 맛있느냐로 한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S 말고는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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