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빨래를 들고 지하실까지 내려가서 동전을 넣고 세탁기를 돌리는 일은 조금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자주 빨래를 하면 돈이 들고, 그렇다고 빨래를 계속 미루면 입을 옷이 없었다. 나는 언제 빨래를 해야 가장 효율적인가를 연구했고 결론은 2주에 한 번이었다. 나는 그런 일상의 쓸데없는 것들을 최적화하는 게 취미였다. 이를테면 목적지까지 어느 경로를 택해야 가장 에너지 소비가 적을 것인가, 가장 적은 수의 보도블록을 밟으려면 어떤 식으로 걸어야 하는가, 가장 싸게 먹으면서도 필수영양을 충족하려면 뭘 사 먹어야 하는가 등등.
한국에서 이민 온 후로 오랜만에 살게 된 아파트였다. 그곳은 뭐랄까 기묘할 정도로 조용했다. 눈치를 보니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혼자 사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많이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의 표정도 그다지 밝지 않았다. 하긴 나래도 나이 먹고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혼자 월세를 산다면 그렇게 하하호호 하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파트는 블루어 스트리트와 스파다이나 로드 근처에 있었다. 당시 그 일대는 번화가이면서도 뭔가 음침한 동네였다. 사실 90년대 토론토는 몇몇 동네를 빼고는 대부분 후줄근했다. 아파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대낮부터 술에 취한 원주민들이나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누워 있었고 길거리에서 아무한테나 욕설을 내뱉는 미친년놈들도 흔했다. 근처에 정신병원도 있고 보호시설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북미의 대도시들이 다 그렇듯 토론토에도 노숙자가 많다. 도시에서는 가만 앉아서 구걸만 해도 굶지는 않는다. 시골에서 그랬다간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도시는 원래 빈민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은 만만한 사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시비를 건다. 그래서 아시아계 여자애들이 자주 봉변을 당하곤 했다. 아무리 술과 마약에 찌들어 제정신이 아니어도 누구한테 대들어야 맞지 않는지 정도는 아는 것 같았다. 수업을 들으러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어느 경로를 택해야 제일 노숙자를 덜 마주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 시체처럼 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짜고짜로 달려드는 사람들도 간혹 있으니까.
기숙사에 살 때 야간 수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려면 온타리오 의사당 뒤의 공원을 지나가야 했는데, 나무가 울창하고 가로등은 거의 없었다. 간혹 트랜스젠더 노숙자들이 나무 밑에서 호르몬 주사를 놓고 있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지름길이긴 하지만 지나가기 꺼려지는 곳이었다. 기숙사 하우스메이트 중에는 밤에 가끔 약에 취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노숙자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한 사람들도 있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무섭다.
별 고생 없이 살아온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뭔가 부채의식 같은 게 있다. 난 그동안 편하게 잘 먹고 잘 살았는데 길바닥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해줘야 할 것 같고 이 불공평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든 나서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그런 경향이 더 많다. 멋모르고 그런 애들 앞에서 21세기 사회정의에 반하는 말을 했다가는 캔슬을 당한다. 캔슬시킨다는 건 "쟨 나쁜 놈이니까 우리 쟤는 없는 애 취급 하자"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항상 몰려다닌다.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들 치고 제대로 된 사람들은 없다. 그들의 정의감은 오랜 사색의 결과물이 아니다. 인스타그램 쇼츠처럼 즉흥적이고 모순적이고 얄팍하다.
언젠가 보수 꼴통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완전히 따돌려야 된다고 열을 내던 20대 여자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걔네들은 그럼 가만히 있을까?" 내가 묻자 그들을 주류사회서 쫓아냈는데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투표권은 아직 가지고 있었고 그 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동안 그렇게 사회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은 트럼프가 두 번째로 취임하자 목소리가 많이 사그라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한때는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저 운이 나빠서 저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도와주기만 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는 어렸을 때 시내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 돈을 주면서 넣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돈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부자가 되려면 노력도 필요하지만 운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내가 따뜻한 집에 있을 때 누구는 밖에서 떨고 있는 것은 순전히 운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도와줬을 때 어떤 사람은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 고마운데'라고 할 수도 있고 '도와주려면 화끈하게 도와주지 쩨쩨하게 이게 뭐야' 하면서 더 많은 걸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굶고 있는 사람에게 밥을 주면 고기를 내놓아라 국이 짜다 이딴 소리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남을 도와주면 고마워하는 사람보다는 또 와서 당연한 듯 요구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인간은 그런 것이다. 몇 년 전 기본소득의 개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로봇이 많아지면 사람은 늘어난 생산성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전 국민이 기본소득을 받아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조금만 생각해도 이상한 논리였다. 그 로봇 주인들은 왜 자기가 번 돈을 남에게 그냥 나누어 줄까? 세계 각국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했고 결론은 공짜로 돈을 뿌려서 장기적으로 나아지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걸 꼭 해봐야지만 아나?
물론 남을 돕는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남을 돕는 사람들은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법이 정한 테두리 밖에서 그럴 의무는 없다. 주디스 톰슨은 '낙태에 대한 변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뉴욕에 한 죽어가는 병자가 있다. 그를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루크의 손길뿐이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병자의 이마에 손을 얹기만 한다면 병자는 깨끗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루크에게는 그럴 의무는 없다. 루크가 그렇게 해 준다면 그는 무서우리만치 자비로운 사람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루크가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그럴 의무란 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운이 좋았다고 해서 그것이 꼭 타인에 대한 부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를 어느 정도 굴러가게 하려면 복지정책이 필요하지만 그건 도덕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실리적인 이유에서이다. 빈곤층이 너무 많아지면 사회가 불안해지니 부자들에게도 득 될 게 없다.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정말로 자기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를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는 자기가 얼마나 인격적인 사람인지 어필할 목적으로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그런 게 더 이상 훈장 취급을 받을 나이가 지나면 투자처나 연봉이나 자식 교육으로 주제가 넘어간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는 그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메꿔진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것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환풍구 위에 온풍을 맞으려고 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 이번 겨울에도 저 중에서 몇은 얼어 죽겠구나. 뭐 그런 거지. 생각하며 혹시 달려들지는 않을까 주의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