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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은 애들이나 하는 것이다

1995

by 그런인생

토론토 대학 학부에서 입결이 가장 높은 곳은 공대였다. 문리대보다 요구하는 성적이 훨씬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대생들은 조별과제를 많이 하기 때문에 학생들끼리 동지의식이 강하다. 1학년때 조별과제를 같이 했던 그룹이 4학년때까지 유지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같은 조에 있던 학생들끼리 다 같이 같은 회사에 취직해서 다니는 경우도 보았다. 날로 먹는 조원들도 거의 없다. 한번 찍히면 4년 동안 아무도 조원으로 끼워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능력이 없는 애들은 1학년때 일찌감치 잘린다. 한국의 카이스트도 비슷한 분위기라고 들었다.


들어가기도 어렵고 소속감도 강한 공대생들은 그만큼 콧대도 높았다. 기숙사에 살 때 공대생들은 타 학부 애들을 자주 조롱하곤 했다. "너네가 한 달 공부하는 거 우리는 일주일에 다 끝내. 너네가 공대를 다니지 않는 이유는 우리보다 멍청해서야." 그들은 그 구린 과잠 팔에 자기 전공을 표시하는 네 글자 알파벳을 붙이고 다녔다. 전자면 ELEC, 화학이면 CHEM 이렇게. 그리고 그 밑에는 "ERTW" 란 글자도 간혹 있었다. "Engineers Rule The World"의 약자였다. 그들은 틈날 때마다 "우리가 없으면 다리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어. 컴퓨터도 못 만들지. 우리가 실질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이런 우월감의 배경에는 캐나다의 P.Eng. 제도도 한몫했다. 캐나다는 공대를 졸업하고 엔지니어 협회에 등록된 사람만이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부를 수가 있다. 공대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나 엔지니어예요 하는 건 불법이다. 정식 엔지니어로 등록된 공대 졸업생들은 졸업식에서 쇠로 만든 반지를 받는다. 엔지니어들의 표식 같은 것이다. 듣기로는 20세기 초에 설계를 잘못해서 무너진 다리의 잔해에서 나온 철을 가져다가 이런 실수를 다시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로 반지를 만들었다는데, 그게 전통으로 굳어진 모양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캐나다에서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엔지니어가 존경받는 직군 중의 하나였다. P.Eng.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캐나다 여권을 신청할 때 신원보증인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나 남의 신원보증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판사, 의사, 변호사, 경찰, 자격증을 가진 엔지니어 등등의 직군만 가능했다. 나도 시민권을 따고 캐나다 여권을 만들어야 했을 때 엔지니어였던 내 상사가 보증을 서 주었다.

그래서 공대생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다들 난 이 대학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다. 여길 졸업 하면 여기저기서 날 모시러 갈 테고 난 아주 어려운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받을 것이다. 우리 공대생들의 전 지구적 연합은 강고하며 영원할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나는 복수전공을 했고 그중 하나는 Computer Science였다. 그 안에도 세분화된 전공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 막 생겨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란 전공을 골랐다. 그런데 이 이름이 공대생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감히 문리과 주제에 공대 아니면 쓰지 못하는 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를 전공에 쓰다니! 혹시라도 남들이 보고 너네들도 공대생인 줄 오해하면 어쩔 거냐며 게시판에 우리를 비웃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대학생들은 사실 덩치만 큰 애새끼들이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것에 예민하다. 우리 쪽 학생들도 너네가 그렇게 잘났냐 하고 서로 비아냥과 비난이 오갔다. 어떻게 일단락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은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고 토론토대는 늘 그렇듯 그런 건 두루뭉술 뭉개버렸던 것 같다.


그런 공대부심은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서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별로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는 과 2등으로 들어가서 한화 장학금을 받은 이야기를 40년이 넘어서도 했다. "연고대는 이름만 쓸 줄 알면 들어갔다" "나는 원래 사회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못 가게 하는 바람에 공대 가려고 할 수 없이 재수를 했다." 아버지는 공대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들어갔으면서 공대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지, 공대 천재들이 얼마나 기가 막힌 것들을 만들어내는지 항상 이야기했다. 얘기만 들어보면 공대를 나온 사람들은 하지 못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 허상이라는 것도 아버지를 보면서 깨달았다. 그렇게 일류대 공대를 나왔어도 그냥 회사의 부품으로 지내다가 이민와서 야채공장에서 상추를 썰던지 면도기공장에서 포장일을 할 뿐이었다. 그래도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말이야..." 하면서 몇십 년 전 잘 나갔던 시절을 바로 어제처럼 이야기한다. 간혹 "야 이게 내가 몇십 년 전 배운 건데도 아직도 기억하잖니?" 하면서 나의 미적분 숙제를 설명해 주는 건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근데 그렇게 똑똑하신데 왜 돈은 못 버는 걸까 가끔 궁금했다.


나도 곧 오십이 된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보면 공대를 나온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여기저기 음식 얼룩이 묻은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같은 직장에서 십 년 이상 일하는 중늙은이들이다. 나도 그중 하나다. 직장생활을 못 버티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저런 무식한 놈들이 정말로 세계를 제패하면 어쩌지 하는 나의 우려는 기우였고 그들은 아직도 아주 사소한, 그러니까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다리에서 떨어지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과속카메라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 같은 하찮은 주제들을 엄숙하게 토론한다. 정말 눈치 빠른 사람들은 그런 공대생들을 졸개로 부린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공대에 있어봤자 시간낭비란걸 알아차리고 중간에 때려치고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뭔가에 긍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우스웠다. 학벌, 재력, 가문, 애국심 등등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건 자기들만 아는 명품 브랜드의 옷 같은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요새는 참으려고 많이 노력하지만 남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하찮게 보는 내 속마음을 들키게 된다.


십 년 전에 나는 실리콘밸리의 조금 알려진 회사에서 일했었고 어찌어찌하다가 페이스북에서 한국의 테크 쪽 사람들과 안면을 튼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었다. 그 양반은 카이스트를 나와서 하버드를 졸업하고 매 해마다 새 트렌드를 분석하는 책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했고, 이후 한국에 가게 되었을 때 어쩌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잘 나가고 있다니 나중에는 뭐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얼굴 도장이나 찍어둬야겠다 생각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뭔가 좀 미심쩍었다. 명문대를 나와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대화의 반이 그 당시 유행하는 마케팅 용어들이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애자일, MVP... 뭔가 게임의 NPC를 보는 것 같았다. 화술은 뛰어나서 무슨 주제가 나와도 그에 대한 자기 의견을 피력했으나 기술적인 관점을 자세히 물어보면 슬그머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 사람은 정치에 더 잘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회사의 홈페이지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잡했고 에러 투성이었다, 나는 만난 자리에서 사이트에 좀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요... 하고 이야기를 하니 당장 직원에게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그 후에도 그 문제는 몇 년 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 사람은 일을 벌리고 수습을 못하면 또 다른 일을 벌렸다. 이러다 하나만 걸리면 되지, 하는 마인드인것 같았다.


저렇게 살려면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야기 도중 내가 "뭐 그렇게 열심히 살 필요 있나요, 학벌이고 노력이고 나중에는 다 별거 없어요, 어차피 그런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라고 말했고 그 양반도 속마음을 감추는 건 잘 못했던지 조그맣게 혼잣말로 '아 정말 싫다'라고 말했다. 그 후로 난 한국의 소위 테크 선구자들과 연락하는 걸 그만뒀다. 다른 사람들도 다 느낌이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건 하버드 나오고 스타트업 하는 사람이면 분명 가난한 사람은 아닐 텐데 점심을 늦게 먹어 시장하지 않다며 식사 자리에서 자기 건 주문하지 않다가 내가 입맛이 없어 남긴 음식들을 '그거 안 드실 거죠?" 하면서 접시째 가져가더니 싹싹 긁어먹었다. 간염 같은 건 걱정이 안 되나 궁금했다.


그 사람의 근황을 나중에 보니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 그는 항상 국내 명문대와 하버드라는 수식어를 앞세우며 다녔고, 여러 대학에 겸임교수로 적을 두고 있다. 스타트업도 아직까지는 유지되고 있지만 정부 계약만 어쩌다 가끔 따는 것 같다. 예상한 대로 정치권에도 기웃거렸지만 논란거리만 만들고 무산되었고 세바시 같은 방송에도 나와서 젊은이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좋은 말씀을 한다. 지금도 여기저기 글을 쓰고 방송에 나오는데, 정말 전문가라면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미디어에는 자주도 나온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 그가 하는 것의 절반도 따라 하지 못할 텐데 그는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일을 벌이고 뭘 한다. 그거 하나는 진짜 칭찬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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