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토론토대학의 인지과학-인공지능 전공은 철학, 심리학, 전산학을 모두 아우르는 융합 전공이었다. 취직을 하려면 전산학은 4학년까지 필수로 해야 했고, 철학과 심리학은 어디까지 공부를 해야 할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었는데, 난 어떤 쪽에 흥미가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둘 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해 보고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들었던 철학 과목들은 일전에 언급한 마음 철학 외에도 이름도 생소한 기호논리학이었다. A가 참이고 B가 거짓일 때 "A 나 B는 참이다"는 참인가, "A가 참이면 B도 참이다"는 참인가, 뭐 이딴 것들을 아주 지루하게 배웠는데, 사실 학생들은 자기가 잘 못하는 과목을 평가절하한다. 어렵고 재미없을수록 '이걸 뭐 하러 배워' 하면서 무시한다.
어쩌다 친해진 포르투갈 출신의 심리학 전공 여자애가 있었다. 그 나이대의 뭐든 열심히 하는 여학생들이 흔히 그렇듯 자기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항상 남한테 알려주고 싶어 했다. 그녀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유독 통계학 과목에서는 죽을 쒔다. 친해지게 된 계기도 통계학 수업에서 내 뒤에 앉아있다가 내가 채점받은 시험지 점수를 보더니 다가와서 말을 걸면서 공부를 도와달라 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설명을 해 주다가 문득 얘는 그냥 통계의 기본 개념이 아예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을 별로 안 좋아하니?" 하고 물어보자 "나 고등학교 때 미적분 A+ 받았어! 그니까 난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라고, 이 거지 같은 과목이 이상한 거야." 하고 열을 냈다. 그녀는 훌륭한 심리학자가 되고 싶어 했고, 왜 통계가 심리학 전공에게 필수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통계 같은 건 잘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하면 되잖아! 난 그 시간에 심리분석을 하고! 이런 계산 같은 건 돈 주고 맡기면 되지!"라고 주장했다.
"음.. 이론을 정립하려면 통계적 사실이 뒷받침이 돼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그니까 그 부분은 돈 주고 다른 잘하는 사람한테 맡긴다니까!" 그녀는 통계 따위를 필수로 지정한 이유는 학교에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부자들은 모든 것의 이면에는 돈이 있고 자기가 못하는 건 돈 주고 사람을 부르면 된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수도관이 새면 철물점 가서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부품을 사 와서 직접 고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누굴 고용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남 줄 돈이 있으면 그걸로 내가 하지.
부잣집에서 물정 모르고 자라서 답답한 구석이 좀 있는 아이였지만 그녀는 미모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난 계속 친하게 지냈다. 어떤 사람의 사상이 간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예쁘다면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다.
나도 역시 기호논리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답답했다. 정말로 돈 주고 누굴 사서 쓰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있었던 것 같다. 영어를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 과목인데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철학이니까 말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참 빗나갔다. 내 기억으로는 겨우 B학점을 받았던 것 같다. 논리의 가치를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철학은 논리가 빈약하면 얄팍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논리는 타인의 주장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다. 그래서 철학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도 잘한다.
그래도 나는 다행히 나중에는 철학에 흥미를 느꼈고 나중에는 미국의 작은 주립대에서 인지철학으로 석사도 받았다. 생업과는 전혀 관계없이 순수한 취미의 발로였다. 철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말을 잘해야 하는 학문은 아니다. 문과 체질이라고 꼭 철학에 소질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문과는 내 생각에 분석철학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재미있는 학문이었고 실생활에 쓸모도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철학을 배우고 싶다면 갖추어야 할 기본요건들이 있다. 우선 첫째로 성질이 급하면 철학은 어렵다. 감정을 건드리는 명제를 마주쳐도 찬찬히 분석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 의외로 어렵다.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 이를테면 안락사나 낙태에 대해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것들을 옹호하는 논리를 편견 없이 분석하기는 어렵다. 상대방의 반대의견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감정에 거슬릴 것이다. 내가 혐오하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건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둘째로 권위 같은 건 적당히 무시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인들은 권위에 너무 쉽게 고개를 숙인다. 유럽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유럽에서는 요새 이런 훌륭한 생각이 있어, 이런 식으로 보따리상처럼 그들의 철학을 수입해다 파는 걸 자주 보았다. "그거 좀 이상한데요" 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대부분 불편해한다. 네깟 게 뭔데 위대한 들뢰즈나 훗썰의 이론에 토를 다느냐는 식이었다. "저서들을 안 읽어본 모양인데 좀 공부하세요" 라고 대답한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자기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말 무언가를 안다면 어린아이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철학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믿는 사상을 선교하는 것이다. 문과를 공부한 사람들 중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선진사상을 배워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북미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닌 거 같다. 미국 캐나다에도 멍청이 교수들은 많고 유럽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지금은 인터넷이 있는 시대에 맘만 먹으면 유튜브로 뭐든 공부할 수 있는데 간판 따는 거 말고는 굳이 다른 나라까지 가서 뭘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간판은 중요하긴 하다.
내가 칸트를 배울 때 기말시험 주제는 칸트의 도덕개념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나의 주장을 서술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위대하신 칸트 님에게 반박을 하겠는가. 그래도 나의 생각이라는 게 있고 그게 때로는 대가들의 생각과 다를 때도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옳을 때도 있다. 이 모든 걸 판가름하는 도구는 논리다. 철학은 일방적인 설교가 아니라 토론과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논리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이대로 간다면 철학은 점점 쇠퇴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책을 읽지 않고 긴 글을 싫어한다. 나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는 조롱과 비난을 하고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천천히 생각하는 것보다 빠른 판단이 덕목인 시대가 되었다. 울려대는 카톡에 빨리 대답을 해야 하고 주식 매수매도를 분초 단위로 결정해야 한다. 그래도 90년대까지는 뭐랄까,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시간을 가지는 게 어렵지 않았다. 사색을 하려면 뭔가 나른하면서도 정신은 또렷한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우리는 24시간 내내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점점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지고 인공지능에게 판단을 일임하게 된다. 세상이 그리 된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나는 살 만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