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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수업은 만만하지 않다

1994

by 그런인생

나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옳다고는 말할 수 없는 몇 가지의 믿음들이 있다. 흔히 세상에서 편견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남을 지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예요"라고 성급하게 말할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뱀눈깔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도박쟁이였었다고 하자. 그럼 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 새로운 뱀눈을 만난다면 "아마도 도박쟁이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물론 누군가가 "그건 편견에 불과해, 모든 뱀눈들이 도박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하며 날 가르치려 들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 세상 어딘가에는 도박하지 않는 뱀눈도 존재할 거야. 하지만 난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바탕으로 그럴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성급한 일반화'라고 할 때 성급하지 않으려면 들여야 하는 시간이 열흘일 수도 있고 오십 년일 수도 있어. 넌 지금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지난 경험들을 모두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이게 과연 올바른 태도일까?"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도박하지 않는 뱀눈들에게 억울한 편견을 갖고 바라볼 것이고 그건 뱀눈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행위예요." 그럼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겠다는 생각만 갖고 살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나의 그러한 편견들 중 하나는 여자는 이과보다 문과에 훨씬 많다는 것이다. 1학년 심리학개론 과목 수업은 대학에서 가장 큰 convocation hall에서 했다. 수업 시간이 되면 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은 2층까지 빈틈없이 들어찼고 대부분은 여학생들이었다. 나는 50분의 수업 시간 중 절반까지는 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두리번거리면서 여자들 구경을 했다. 그들은 수업에도 화장을 열심히 하고 나와서 구경할 맛이 났다. 여학생들은 필기도 아주 열심히 했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노트를 보면 빽빽하게 무언가가 씌여 있었다. 나는 게을렀기 때문에 수업을 듣다가 교과서에 나오지 않을 것들만 필기를 했지만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필기했다. 악착같이 공부를 하는 여학생들은 그런 노가다를 정성스럽게도 한다. 심지어 색이 다른 여러 가지 볼펜을 쓰기도 했다. 볼펜 한 자루만 가지고 다니던 나는 쟤네들은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생각을 했지만 시험을 보면 내가 사소하다고 무시했던 부분에서 문제들이 많이 나왔고 그네들의 점수는 나보다 높았다. 한 페이지를 다 채워야 하는 서술형 시험에서는 아무리 내가 아는 것을 다 써도 75점 이상이 넘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90점짜리 답안지를 보게 되었는데 그 시험지에는 아주 작은 글씨체로 빽빽하게 답이 씌여 있었고 교수가 수업시간에 한 농담 같은 것도 언급되어 있었다. 나는 심리학으로 진로를 정하기는 글렀구나 생각했다.


컴퓨터를 전공으로 하려면 1학년 미적분은 필수였다. 미적분 과목은 난이도에 따라 세 종류가 있었는데, 컴퓨터 전공희망자는 그중 어려운 과목을 택해야 했다. 이곳에는 여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수업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수학이란 건 남이 문제를 푸는 걸 볼 때는 다 쉬워 보인다. 연필 쥐어주고 네가 이제 풀어봐라 하는 순간부터 실전인 것이다. 교수는 수업시간에는 주로 개념정립을 위한 일반적인 문제들만 풀어 주었고 정말로 어려운 문제들은 랩 시간에 조교가 풀어주는 방식이었다. 조교들은 주로 돈이 필요하고 머리가 좋은 인도계 대학원생들이었다. 태어나서 인도 악센트를 처음 듣는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집중해서 듣다 보면 10분이 지나지 않아 머리가 아프고 잠이 왔다. 학생들이 교수를 평가하는 anti-calendar 에는 지속적으로 나오는 요구사항이 영어를 좀 잘하는 조교를 갖다가 쓰라는 것이었으나 토론토 대학은 그때는 교수고 조교고 가르치는 능력이 형편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남을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나의 수학 성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떨어졌다.


1학년 철학수업을 담당한 교수는 아주 늙은 할아버지였다. 그는 교내에서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다. 학기 초 문리과 건물 앞에는 동아리 대표들이 테이블을 펼쳐놓고 회원들을 모집했었는데, 그는 항상 혼자 낡은 양복차림을 하고 해맑은 얼굴로 학생들을 기다렸다. 일설에는 그가 토론토대학 공산당 모임의 유일한 회원이라고 했다.

과목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이었다. 마음은 물질인가 비물질인가, 마음의 본성은 무엇인가 등등 평소의 어른들이 흔히 말하던 "아무 쓰잘데기 없는 소리들"이었다. 교과서는 수첩만큼 작았지만 거기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한 페이지당 이십 분 이상 시간을 써야 했다. 대부분의 단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고 영한사전을 찾아봐도 어차피 모르는 단어들이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영영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었다. 내가 은근 놀랐던 점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분명히 나처럼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학생들일 텐데 이런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게 토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제대로 된 토론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교회에서는 철학은 위험한 학문이라고 가르쳤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있잖아요, 쓸데없는 것에 집착해요. 이를테면 '사랑'을 갖고도 "사랑이 뭐냐?" "이건 사랑이냐 아니냐?" 이런 문제로 수십 년을 소비해요. 그게 어리석어요 안 어리석어요?" 목사들은 그런 것에 시간을 버리지 말고 그냥 열심히만 믿으면 지혜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가르쳤다.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의문을 가지는 것을 건방지다고 여기는 태도이다. 그 교수의 이름은 Dan Goldstick이었고, 그는 그때도 노인이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토론토대학 교수로 등록되어 있다. 그는 유명한 무신론자였고, 유태인이지만 반시오니스트이기 때문에 항상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편을 들었다.


1학년 컴퓨터 과목은 컴퓨터를 만만하게 보는 학생들을 초장에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어 보였다. 처음 2-3주는 간단하고 재미있는 컴퓨터 역사나 개론 같은 것으로 채우다가 갑자기 "자 이제 그럼 지금까지 배운 것을 바탕으로 코딩을 해 봅시다. 다음 주까지 이러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오세요" 하고 뜬금없는 코딩 과제를 줬다. 참고로 학교에서는 이론을 가르치지 코딩을 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건 알아서 어딘가에서 배워와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토론토대학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튜링이라는 언어로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석좌교수들 중 하나가 교육용으로 만든 언어라는데 왜 이미 있는 언어를 쓰지 않고 이상한 걸 만들어서 쓰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때는 인터넷에서 예제를 찾아본다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습시간에 조교가 칠판에 적어놓은 코드를 외우고 컴퓨터실에서 좀 한다는 애들한테 가서 굽신거리면서 모르는 걸 물어보고 주말에는 밤늦게 교과서에 나온 대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코딩을 배웠다. 4주 정도가 지나자 교실 학생의 수는 반으로 줄어 있었다. 성적 페널티 없이 과목을 취소할 수 있는 날짜 이후에는 더 많은 빈자리가 보였다. 대학은 경쟁을 하는 곳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의외로 학생들간의 경쟁은 치열했다. 남한테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수업에 늦게 들어와 공지를 듣지 못한 학생이 시험범위를 물어보면 일부러 틀리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토론토대학은 도시에 위치해서 그런지 학생들끼리의 유대감이 적었고 많은 학생들에게 학교는 그냥 공부하러 가는 곳 이상은 되지 못했다. 토론토는 타지인이 사람을 사귀기 가장 어려운 도시 중 하나라고 한다. 토론토 토박이들도 서부 사람들처럼 그렇게 붙임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토론토 대학에는 그때 한인 동아리가 세개나 있었고 그런 데에 들어가야 사람도 사귀고 족보도 얻는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나는 대학까지 와서 아시아계끼리 몰려다니는 것이 웬지 탐탁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사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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