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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Aug 14. 2021

매순간사랑을 선택하는 화가

Redboots_Gallery 전시 이야기

전시기획자_김혜현 (레드부츠 갤러리 대표)

원지연 작가님과 Redboots_Gallery에서 7월 9일부터 8월 8일까지 초대전을 했다.


문화공간을 운영해 온 나에게는 정식으로 기획한 첫 전시다.


작은 패브릭 샵이었던 빨강장화가 문을 열어 사람들과 만나, 책읽기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주민이었던 원지연 작가님을 처음 만났다. 그게 2018년 4월이었다. 동네에서 책모임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하셨다.  활짝 미소 짓던 작가님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발도르프 학교 선생님도 하셨었고, 광고 신문 기자의 경험도 있다고 하셔서 글쓰기도 계속하고 싶다고 하셨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림도 그리고 계셨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그림을 배우셨다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보시면 어떠냐"고 내가 종종 말씀드렸고, 작가님도 붓을 놓지 않으신 것 같다. 한 번은 작가님 집에 가볼 일이 있었는데, 밥상 옆에 놓인 캔버스와 그림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정말 밥 먹다가도 생각나면 한 번씩 붓을 드신다고 하셨다. 나에게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밥 먹다가 고민하고, 붓을 드는 화가의 일상이라니.


작가님은 그 이후로도 붓을 놓지 않았고, 소설 쓰기도 놓지 않았다. 삶의 확장을 위해 경계선을 넘는 행보도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 인도와 포르투갈 드로잉 여행을 다녀오셨다. 모든 세계가 셧다운을 외치며 집안에 머무르기 시작할 때 원지연 작가님은 바깥으로 작품들을 내걸기 시작하셨다. 2020년 2번의 단체전을 마무리하고, 2021년 평창동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초대 받아 첫 개인전을 했다. 빨강장화가 우연히 계획에도 없던 공간이전을 하면서, 7월에 공간이전 기념으로 개인전을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좋은 작품들과 전시를 할 생각에 나도 작가님도 들떠 있었다. 


 불행히도, 7월 9일 오픈 기념식 겸 전시가 시작되는 첫날,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가가 붓을 내려놓으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일까. 기획자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붓을 내려놓고 전시를 시작하면서 미술품들은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그림은 그림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변화하고 재창조된다. 그것이 화가가 바라는 또 다른 형태의 완성일 것이다. 


작가님이 전시 주제에 대해 언급하셨다. '매순간 사랑을 선택하기로 한다.'


사랑을 '했다'도 아니고 '선택하기로 한다'라니. 그렇다면 그 전에는 사랑을 안 했다는 것일까, 혹은 모자랐다는 것인가. 그렇다. 작가님은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다. 사랑을 주고 싶은데 충분히 주지 못했고 늘 아쉬웠던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사랑 할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하셨다. 의식적으로 사랑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했고, 다짐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림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선포한 것이다. 이제 내뱉은 말이 있으니 작가님은 꼼짝없이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작가님의 이번 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목적이 되었다.


코로나 확진자는 전시가 진행되는 내내 점점 더 늘어났다. 운명처럼 느껴졌다. 사랑에는 늘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은 매일 끊이지 않았다. 매 순간 끊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가님과 나는 한 사람이라도 전시를 보러 오겠다고 연락이 오면 뛸 듯이 기뻐했다. 한걸음에 달려가서 문을 열어드리고,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그렇게 뜨거운 2021년 7월 한 달을 보내고, 8월 8일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큰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해서 전시 관람을 했다.


사랑을 선택하지 않는 화가가 있을까. 그림 그리는 행위를 사랑하든, 그려지는 사람이나 풍경을 사랑하든지 간에 사랑의 마음이 아니면 좋은 작품이 그려질 수 있을까. 어쩌면 사랑없는 그 그림은 완성된 작품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원지연 작가님의 이번 전시는 글을 계속 써야 하는 내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랑'의 마음. 동일한 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든 전시를 기획하든 사람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창작물에 대한 경외와 사랑이 없다면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과물이 숫자로 산출되어 우리 모두를 만족시켜 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나 혼자 끌어 안은 숫자들은 무의미하다. 지켜봐 주는 관객이 없다면, 작품은 의미를 잃는 것처럼, 우리도 홀로 존재해봤자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다. 


나를 봐 주는 이가 없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 이외의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 서로를 붙들어야 한다.


전시를 보러 와주신 모든 분들께, 큰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아래는 원지연 작가님의 이번 전시 '작가의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 마다, 행동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담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렵기에 더욱 간절해지는 일이다. 사랑을 나누는 일이 저절로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작은 결심을 해 본다. 매 순간 사랑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놓치는 순간도 많겠지만 심장에 새길 것이다. 즐겁고 유쾌한 일을 엮어 사랑을 주렁주렁 매달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얀 바탕에 색을 칠하고 다른 색을 또 칠할 때마다 선택해야 한다. 이 한 획이 조화로운지 어우러져 즐거운지, 그리고 조화롭지 않아도 각자가 즐거운지 까지 말이다. 선택하고 나서 후회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한 획을 그으면 되니까. (2021년 7월 9일)

#원지연작가#매순간사랑을선택하기로한다#RedbootsGallery#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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