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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Jul 22. 2021

사람책을 만나는 시간, 책모임

빨강장화 북클럽 책모임 이야기



경기도 의왕시 '빨강장화'라는 공간에서 3 넘게 책모임을 해왔다. 쉬지 않고. 처음에는 한 달에   정도 모였고,   뒤에는  팀이  생겨났다. 그리고   하반기에도 모임이 늘어났다. 신기하게도 지역에서 여성들만 모이는 책모임인데,  시에서도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경기도라는 지역 특성상 평일 오전에 서울까지 책모임 하러 가기가 힘든 분들이 있었으니까.  역시 서울에 책모임을 하러  봤는데,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을 쓰고, 지치는 일이 다반사여서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다. 책모임은 역시 동네에서 해야 한다. 


3년 동안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 사실, 한 달에 5권을 읽고 책모임을 했다고 치더라도, 40개월 이면 200권 정도이다. 온 우주에 별과 같이 넘쳐나는 책들에 비하면 거의 먼지 같은 정도의 분량일 텐데, 200권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을 떠올려보면, 30권 정도 될까? 좋은 책을 찾기도 어렵지만, 그 책을 제대로 소화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더 넓고 얕은 책 읽기로 그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뜻밖의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자신감'이라는 선물이다.

나는 책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의 책모임은 강의가 절대 아니다. 그래서 특별한 학위가 없어도(학부는 생명공학 전공이지만....) 책모임을 이끄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우리 책모임은 '모임'이라는 말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모임을 이끄는 것이지, ‘책’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책은 그냥 거들뿐, 나는 3년 반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오시는 분들 중에서 2-3년 동안 꾸준히 참석을 하신 분들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책은.......책을 꼭 읽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정보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을 정도로 중립적이다. 이것 또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바뀐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한 권의 책을 읽고 각자의 해석과 느낌을 갖게 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책을 읽었는데 30명의 사람들이 전부 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일까? 시간대 별로 다른 팀들이 같은 책으로 책모임을 하는 경우는 팀마다 분위기가 다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의 조합인가에 따라 책모임 분위기가 달라진다. 내가 매번 책모임을 할 때마다 긴장하고, 준비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각자의 경험이 공유가 된다. 책은 정말 핑계이고,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책모임을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공부하고 싶어서 모이는 분들도 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더 많이 이야기하시곤 했다. 그렇다고 이런 책모임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인가?


사람의 손자국이 찍힌 원시 동굴벽화를 떠올려보자. 정말 그림, 글, 책도 없던 오래전 사람들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나 여기에 있다> 를 본능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의 존재감 표현에 대한 욕구는 글자를 만들어 냈고, 이야기를 창조했다. 당연히 미술이나 음악, 춤 등의 예술장르도 더 세분화가 되었다. 각자 하고 싶은 표현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고대부터 지금까지 '나만의' 무언가를 표현하기보다는 타인의 창작물이나 이야기에 기대어 비슷하거나 똑같이 반복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다.


나 여기에 있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

나는 당신과 다르게 생각하고, 느낀다.


책 읽기의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책모임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일 곳이 한 군데는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주로 중년 여성들에게 그런 장소는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과의 티타임에서 발생하지만, 마음 놓고 내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종종 조언을 듣거나, 간섭을 받기도 하고,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이 운영하는 책모임에 오면 크게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물론,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이기에 그 점은 우리가 훈련을 통해 극복해야만 한다.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시간, 그런 책모임. 사람들은 모두 방대한 역사를 기록한 한 권의 책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내가 운영하는 책모임이 가치 있는 이유다.  

나는 이야기를 할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고, 타인에게 비난당하지 않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가끔은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갖는 개인의 삶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물질적인 소유와 큰 관계가 없다. 물론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있겠지만, 한 달에 2권이니 한번 외식해서 쓰는 비용 정도다. 책모임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소박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소박하지만 뿌듯하고, 내 이야기를 담백하게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


2020년 5-6월 부터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다. 빨강장화북클럽 역시 온라인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2021년 현재 온오프라인 독서모임과 일기쓰기모임을 하고 있다. 이곳 말고도 온라인 책모임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는 내 집에서 전 세계인들을 다 만날 수 있다. (물론 언어의 장벽이 있겠지만, 번역기 덕분에 차차 허물어질 장벽이다.) 누구나 다 만날 수 있는 마법의 도구를 지녔지만, 정작 나와 만나 줄 사람이 없다면? 내 이야기를 편견 없이, 비난 없이 들어주는 좋은 친구들이 없다면? 고독감은 한없이 상승한다.  독서모임 운영자로서 요즘 더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이다. 비대면으로 만나야만 하는 시대에 마음 편히 책으로, 글쓰기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공간을 빨강장화북클럽이 만들어 가고 싶다. 주식공부, 부동산 공부, 재테크, 자기 계발 독서모임도 필요하겠지만, 정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책모임이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개인사업자로  쉴 틈 없이 일하는 삶을 살았다. 최근 2년은 저녁도 주말도 없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의 일터에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조금  기다려보면, 나의 저녁을 몽땅 내려놓지 않아도 될 거라 믿는다.  많은 분들과 일하고 싶고,  많은 연결로  자리의 역할만 하고 싶다. , 잠시 잊고 있었는데, 우리는 좋은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  작가들의 이야기도  듣고 있다. 글을 쓰는 모든 작가님들을 응원한다. 분명 당신들의 책을 읽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다는  알려드리고 싶었다. 계속 쓰시면 됩니다!


#빨강장화북클럽#책모임#여성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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