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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May 18. 2021

일상 쓰기

일기 쓰기가 나를 데려가는 곳

 2017년 6월 ‘빨강장화’ 공간을 오픈하면서 시작된 블로그 글쓰기, 인스타 피드 올리기. 아이들을 키우느라 오랜 시간 웅크려 있다가 세상에 조금씩 내 생각을 알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몇 줄 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결국 무작정 그날 있었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날씨는 어땠는지, 아침식사로 무얼 먹었는지, 낮에는 누구를 만났는지, 저녁에 아이들과의 일상과 나와 아이들이 읽은 책은 무엇인지.


 나만의 생각을 쓰거나, 대단한 책 후기를 쓰는 건 무리지만 그날그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할 수 있었다. 날씨를 기록한다니 무슨 초등학생 일기인가 싶겠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우리 집 첫 초등학생, 조슈아에게는 매일 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바로 일기 쓰기. 이제 글씨를 막 쓰기 시작한 아이가 받아쓰기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일과를 기록하는 일기라니. 가능한 일이었을까. 어찌 됐든 나도 어린 시절 초등 1학년 때부터 그림일기를 썼었고 6학년 때까지 일기 쓰기를 했으니까 ‘우리 아이도 할 수 있겠지’ 믿었다.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매일 아이와 나는 전쟁을 치렀다. 날짜 한 줄, 날씨 한 줄, 글감 한 줄 쓰는데 평균 1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것도 2년 동안. 3학년이 되니 제목에 내용까지 쓰는데 1시간이 걸렸다. (기분 좋은 극히 드문 날에는 10분 만에 쓰기도 했지만) 아이는 정말 매일 저녁마다 고통스러워하면서 그 미션을 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엄마니까, 그런 숙제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엄마니까 ‘옛날에 다 해봤어’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느 날 문득,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감시’와 ‘지시’가 아니라 ‘마음의 공감’ 혹은 ‘함께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저녁에 일기를 쓰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매일 쓰라고 강요한 건 조금 속상한 일 아니었을까. 아이는 어쩌면 항변할 근거를 찾지 못해 억지로 참고 글을 써온 것 같았다.


 “그래, 엄마도 일기 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일기 쓰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작되었다. 날씨를 기록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 매일 일기를 써야 하는 아이와 함께 짐을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에 나의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 나만의 일기장이 아닌 대중에게 오픈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조슈아는 지금 6학년이고, 여전히 일기 쓰기가 괴롭다. 물론 4학년 때부터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고, 고통스러움의 강도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글쓰기는 창작의 고통 그 자체다. 남이 써놓은 글을 읽는 것은 즐거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써야 하는 글은 노동인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노동인 나에게, 일기 쓰기라는 노동을 더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제 일기 쓰기를 잘하고 있는데 굳이 엄마인 내가 일기 쓰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이런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 고통스러운 일상 기록하기를 권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하루의 노동은 저녁에 퇴근하고 나면 곧 잊히고, 한 달의 노동은 월급날이 되면 곧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1년의 노동은 여름휴가 1주일이면 상쇄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노동하는 행위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은 기록되는 순간 다른 빛을 발할 수 있다. 나는 일기를 쓰면서 그 일상의 빛깔이 달라짐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나에게는 스쳐가는 일상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지혜와 정보이고, 나에게 잊힌 어떤 날의 사건들은 일기장 검색으로 내가 다시 찾아볼 수 있는 데이터가 되었다. 내가 지난 3년 동안 작은 공간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우여곡절 또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에게는 역사의 기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상 기록이 색을 바꿀 때는 바로 타인에게 필요한 정보가 되었을 때이다. 나에게는 3년 동안 동네 지인들과 함께 보낸 정월대보름에 대한 3개의 기록이 있다. 정월대보름에 모여 나물과 오곡밥을 먹고 부럼을 깨고, 소원지를 써서 붙인 달집을 태우고, 아이들은 북과 장구를 두드리며 액맥이 타령을 불렀다.


 21세기에 ‘액맥이 타령’이라니, 신기한 일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그걸 3년 동안이나 했는데, 기록하지 않았다면, 희미하게 사라져 버릴 일상이었다. 그것을 담백한 문체로 나는 기록했고, 언제든지 누구나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꾸준히 글을 써온지 3년이 다 되어간다. 글은 쌓이고 쌓였다. 블로그에 앉혀둔 터라 오프라인 먼지 따윈 쌓이지 않았다. 온라인 잊힘만 있었을까. 블로그가 아닌 다른 곳에도 꾸준히 글을 남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일기만이 아닌, 책을 위한 감상, 미술관을 다녀온 기록, 사람들과 함께 책모임 한 역사를 기록하려고 한다.


 이렇게 일기는 다른 장르의 글쓰기로 발전이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일기를 쓴다. 작품을 쓰면서 꾸준히 일기를 기록한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곁에 두고 일기를 쓸 것이다. 평생 1000권의 손글씨 일기장을 남긴 올리버 색스가 그의 연인 빌 헤이스에게 했던 조언을 나에게 말한 것처럼 기억하면서 나는 죽을 때까지 일기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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