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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Nov 06. 2021

생의 마지막 날 쓰는 일기_죽음에 관하여

백번의 힐링다이어리

얼마 전 그림책 모임에서 리더인 도라지님의 미션이 있었다. 지나온 인생을 세 구획으로 나누고, 어떤 기준으로 나누었는지 설명을 하라는 것. 나는 20대, 30대, 40대로 나누었다. 20대까지는 가난해서 힘들었고, 30대에는 육아로 힘들었고, 40대 이후로는 일과 병행하며 육아 하느라 힘들다고 설명 했다. 온갖 부정적인 세포들이 몰려와서 칸쵸는 힘들게 살아왔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그렇게 내뱉어 버렸다.


힘겨웠던 10대, 20대, 30대를 거쳐서 마흔 살이 되었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어떤 종교의 가르침은 옳았다. 어떤 사람도 고난 없는 삶을 살지 않는다.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사진에서 나와 아기는 활짝 웃고 있는 것일까?


나의 둘째 다니엘은 구순구개열로 태어났다. 입술과 입천정이 갈라진 채로 태어난 것이다. 태어나기 일주일 전 초음파로 발견했고, 태어난 이후부터는 여기저기 병원을 다녀야했다. 열 한 살이 될 때까지 모 대학병원 수술실에 여러 번 들어가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아이가 수술 받는 동안 엄마인 나는 무엇을 했을까? 간절한 기도? 아니다. 열심히 밥을 챙겨 먹고 수술 이후의 일정에 대비를 한다. 보호자인 나는 막간의 시간을 활용해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마트도 미리 다녀온다. 한국에서 구순구개열은 성형수술 몇 번과 약간은 지루한 치아교정으로 개선이 되는 신체기형이다. 그렇지만 그 지루한 시간동안 반복되는 입원과 퇴원, 병원진료는 사람의 활기를 빼앗아 간다. 끝날만 하면 다시 시작되고, 다 되었다 싶으면 다른 일이 생긴다.  


 사진 속의 아가는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도 뭔가 아는 것처럼 활짝 웃는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웃는다. 무척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몇 안되는 행복한 순간들로 '살아있음'은 현실성 없어 보이고, 더 가볍게 느껴진다. 별일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들이 지극히 행복하게 느껴진다면, 아마 그 사람은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다. 사는 것에 큰 미련이 없어진다. 이제 됐다. 이걸로도 충분해. 아가야, 앞으로 수술도 많이 받아야 하고, 험난하겠지만, 괜찮아. 우리 지금은 웃자.


수술실에 아이를 보낼 때마다, 죽음을 생각했다. 늘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깨어나지 않는 그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나는 나의 죽음도 생각한다. 어느 날 나는 눈을 못 뜰 수도 있다. 행복도,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없는 그런 평온한 상태로 잠이 들 것이다. 죽음을 자주 생각해서 그런지, 이제는 기분이 좋아진다. 생의 마지막 날에는 인생이라는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배움을 마치고,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겠지. 이런 생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죽는 날은 최고의 날이 된다. 몇 안되는 삶의 행복한 순간들은 그냥 놓아버릴 수 있다. 기꺼이 내려놓고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할 테니까.


매일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쓴다. 잠들기 전에 쓰는 일기는 하루 동안 붙들고 있던 고민과 집착을 내려놓는 계기가 된다. 속상한 일들은 털어버리고, 기쁜 일들도 간단히 정리해서 내려놓는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면,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다. 그것은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절히 그날이 평온하게 살며시 오기를 기쁨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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