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스트 일기_시즌1
오늘 권영희 도예가의 개인전 <날아오르기> 를 마무리 한 날입니다.
도예 작품으로 개인전을 한 건 레드부츠 갤러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제게는 너무 뜻깊은 전시였습니다. 전시 기간동안 바짝 긴장했었던지 전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어야 하는데 정말 꼼짝도 못하고 뻗어버렸습니다.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 저녁을 차려주고 저도 저녁겸 맥주 한 잔하면서 쌓인 긴장을 풀어냈습니다.
<날아오르기> 권영희 개인전 2024.4.16-4.23
레드부츠 갤러리 기획전
물레 체험을 진행했습니다.
체험 신청자들은 도예가와 손을 맞잡고 어떤 지점에서 힘이 들어가고 빠지는 지 경험해보았습니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집중력도 필요하고 힘도 필요하지만, 그 정도에 대해 체감하지 못하면 작품은 그저 '너무 비싼 사치스런 예술품'이 됩니다. 체험에 동참하신 분들은 아마 몸으로 느끼셨을 겁니다. 작은 그릇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게 힘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구나 싶으셨을 거에요.
하지만 체험을 하신 분들의 가장 인상깊어하신 점은 작가님의 설명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씀을 너무 잘 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숙련자의 경험이 그대로 언어로 전달되면서 두 배의 감동이 되었을거라 믿습니다.
만들어 놓은 작품을 바라보기만 하면 절대 알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이번 전시에서 전할 수 있어서 기뻤고, 이 일에 최선을 다해 응대해주신 작가님의 노고에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또 이런 체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화분의 형태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식물을 작품안에 식재하고 함께 전시를 했습니다. 식재 디자인에 도움을 주신 조경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식물들과 작품은 서로를 빛내줄 준비가 되어 있엇습니다. 전시 기간동안 실내의 환경에 잘 지낼 수 있도록 물도 열심히 주고 환기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잘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나름 식물을 사랑하는 식집사라 식물들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식재 협업은
김태희 가든디자이너와 호솔재에서. . .
그리고 작가님은 갤러리 벽에 그림을 그리듯 도예작품속에 들어앉은 식물들의 선을 이용했습니다. 한 점의 그림같이 작품들은 서로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작품 캡션을 넣을 때 식물의 이름도 기록했습니다. 블루스타 고사리, 초설마삭, 무스카리, 오렌지 백화등, 박쥐란 등등 키우기 어렵지 않으면서 실내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로 엄선하였습니다. 도예 작품을 구매하시는 분들께 식물은 덤으로 따라가는 셈이지요. 실제로 작품의 구매자들은 도예와 식물 이 두가지가 모두 마음에 들면 구매를 결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예작품은 광물일 뿐이고 식물은 생명체인데 이 두가지가 서로의 모습을 존중받으면서 예술작품으로 전시되는 것이 이 전시의 중요한 테마이기도 했습니다. <날아오르기>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생명을 가진 생명체인 새의 날아오르기를 의미하기도 하고, 도예가 권영희님의 작업활동 재기를 응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작가가 스스로를 세워주고 싶어 굽, 높은 굽다리 위에 작품들을 얹어놓기도 했습니다. 올려놓은 그것은 작가의 자존감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나를 세워주고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으니까요.
가야토기의 특징 중 하나가 높은 굽 위에 올려져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가야토기의 역사적인 의미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에 잘 녹여내기 위해 공부를 했습니다. 비록 옛 도기의 굽은 어떤 의미로 그렇게 높은 굽을 만들게 되었는지 잘 알수 없었지만, 작가에게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띄고 있었습니다. 오랜시간 작가로서의 경력이 단절되는 경험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한 작가에게 이 높은 굽은 낮아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역할을 한 것이죠.
"흙을 떠나 있었던 오랜 시간은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왜’ ‘무엇을’ 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답을 스스로 내놓아야 했다. 무너진 자존감, 존재의 무의미함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만든 작은 것들을 높은 굽 위에 올려 놓기 시작했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응원했다. " 작가노트 중에서
스스로가 지나온 길을 응원하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도 응원하는 자축의 마음이 이 높은 굽에 올려졌습니다. 작고 희망이 없어보이는 새와 씨앗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나뭇잎 장식들은 실제의 나뭇잎을 흙에 찍은 그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연에서 실재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도토리는 언젠가는 거대한 참나무가 될것을 알기에 작아도 작지않지요. 이렇게 의미부여를 한 작품들은 전시를 감상할때 시선이 한번 더 가기 마련입니다.
권영희 작가 인스타그램
레드부츠 갤러리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redboots_gallery
레드부츠 갤러리 역대 최다로 많은 분들이 전시작품을 구매해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작가가 계속해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가 필요할까요. 소박하지만 작은 작품을 구매해주시고 소장해주신 분들은 앞으로의 작가의 행보에 관심을 가질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매일 보는 작품의 작가이니까요.
저 역시 작가님의 작품을 가지고 있었고 꽤 오래동안 일상에서 감상을 해 왔습니다. 물레를 쳐서 만들고 높은 굽 위에 올려진 작품들을 보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특별한 경험은 작품을 곁에 두고 자주 지켜보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저 역시 하나의 전시가 이루어지기 위해 열심히 홍보하고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전시가 끝날 때마다 저는 더 무거워진 책임감과 더 가벼워진 제 영혼을 선물로 받는 것 같습니다. 비록 몸은 힘들고 마음은 신경쓰느라 지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전시가 끝나면 기쁨이라는 작은 보석들이 제게로 와 박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쉬러 갑니다.
다음 전시는 <고영진 작가의 '길'>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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