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의자 vs. 권력의 의자

의자의 사회적 의미

의자를 분류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용도나 형태, 소재, 제작 연대나 지역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의자를 쓰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은 별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용자의 지위와 사회적 신분, 경제적 여유 등의 이유로 사용하는 의자가 구분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재벌, 부자, 권력자들의 공간에 놓인 의자와 평범한 서민들의 공간에 있는 의자가 같지 않다. 허름한 골목 한 켠에 있는 슈퍼마켓의 앞에는 유래를 알 수 없는 플라스틱 사출로 만든 의자가 놓여있어야 하고,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도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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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자는 비싸다. 가격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효용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의자를 사기는 쉽지 않다. 의미있는 좋은 의자를 쓴다는 것은 사용자의 취향과 안목을 보여주는 사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의 서재와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보거나 패션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처럼 말이다. 과거 극우 인사들과 일부 언론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서 임스 체어를 닮은 50만원짜리 의자를 소위 ‘명품 의자’라고 가짜뉴스를 퍼트리면서 서민적인 척 하더니 사치품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손가락질을 한 적도 있었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격을 깎아내리려는 유치하고 황당한 사기극이었다.


역사적으로 의자는 사용자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사물이었다. 중국과 유럽은 입식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의자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권력자나 귀족들은 특별하게 만든 의자들을 쓴 반면에 서민들은 소박하게 만든 기능적인 의자를 사용했다. 가장은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고 가족들은 간단한 스툴이나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앉고 하인들은 서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의자는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쓸 수 있는 의자의 종류와 방식이 정해져있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다양한 의자를 쓰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애초에 서민들이 쓰는 의자는 Chair라고 부르지 않았다. 영어의 Chair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Cathedra에서 프랑스어 Chaise를 거쳐서 유래했다. Cathedra는 seat라는 뜻으로 앉는 자리나 공간을 말한다. 우리말의 ‘자리’가 여러 뜻으로 쓰이는 것 처럼 Cathedra는 어떤 사람의 지위나 존재 또는 차지하고 있는 역할 등 여러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같은 어원을 가진 Cathedral이 주교가 있는 교구의 중심 성당을 의미한다는 것으로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다. 즉 의자란 단지 걸터앉는 도구를 넘어서 앉는 사람의 자리나 존재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11세기 영국에서는 프랑스에서 건너와 영국의 왕위를 얻은 정복왕 윌리엄부터 노르만 왕조가 시작되었다. 소수의 노르만인들은 영국의 상류층을 이루게 되고 영국의 상류사회에 프랑스어를 비롯한 프랑스 문화를 퍼트리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의자(Chair)는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seat)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현대적으로 풀어쓰면 Great Chair의 뉘앙스였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편안하고 화려한 의자였던 것이다. 같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 중에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을 위한 의자(Great Chair)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등받이가 없는 낮은 의자, 즉 스툴(stool)에 앉았다. Stool은 노르만족 이전에 영국에 살던 게르만 이주민을 말하는 앵글로색슨(Anglo-Saxon)의 중세영어 stol에서 유래한 단어로 말 그대로 의자라는 뜻이다. 당시 앵글로색슨은 피지배층이었고 그들의 언어는 하류층의 언어였다. 따라서 Chair에 비해 Stool은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앉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였다. 그러나 Stool 역시 등받이만 없다뿐이지 Primitive Chair에 비하면 Great Chair와 마찬가지로 숙련된 목수에 의해 제대로 만들어진 의자였다.


Cathedra(라틴) > Chaise(프랑스어) > Chair(영어)

Stol(Anglo-Saxon) > Stool


서민들이 만들어 쓰던 소박한 민속 의자들을 Primitive Chair라고 한다. Primitive는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사물이나 사람을 말하기도 하지만 접두어 proto-와 같이 어떤 것의 원형이나 초기형태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Primitive Chair라고 하면 전문가에 의해 세련되게 만든 의자가 아닌 투박한 서민의 의자들, 그리고 우리가 아는 현대적인 의자의 원형이 된 오래된 의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Primitive Chair를 구글에서 찾아보면 나무로 만든 단순하게 생긴 투박하고 오래된 의자들이 나온다. 보통은 등받이가 없는 낮은 스툴 형태였으나 나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등받이가 있는 의자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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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itive Chair는 유럽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유럽부터 이탈리아, 프랑스와 영국, 아일랜드같은 섬나라까지 다양하다. 상류층들이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련된 의자를 쓰고 있을 때 서민들은 직접 만들거나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소박한 의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 Primitive 의자들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볼 수 있다. 가구처럼 장부를 만들고 틀을 짜는 것이 아니라 좌판 역할을 할 판재에 막대나 나무판을 꽂아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무를 막대로 다듬고 구멍을 내서 끼우는 작업은 별다른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나무를 준비하고 적당한 높이가 되게 다리를 끼워주면 의자가 된다. 나무를 생긴 그대로 쓰면서 다리만 끼운 의자들도 있다. 거기에 기댈 수 있는 등받이가 필요하면 나무판을 끼워주거나, 더 쉽게는 다리처럼 구멍을 뚫어 막대를 여러개 꽂아준다. 막대들이 따로 놀면 약하기 때문에 서로 연결해서 잡아준다. 거기에 팔걸이를 추가할 수도 있다. 물론 편하고 튼튼한 좋은 의자가 되려면 많은 고려와 추가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이걸로 의자는 완성이다.


그에 반해 건조목을 써서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의자들도 있었다. 가구제작자, 즉 캐비넷 메이커(Cabinet Maker)에 의해 만들어지던 의자들이고 짜맞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의자들을 Joined Chair라고 한다. Joined Chair를 간단히 말하면 가구를 만드는 방식으로 사각 프레임을 짜고 다리와 등받이 등이 연결되는 의자를 말한다. 캐비넷 메이킹(cabinet making, 소목)을 하듯이 사각 프레임을 만들고 거기에 다양한 장식과 조각으로 화려한 디테일을 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자는 비싼 건조된 판재와 숙련된 장인, 그리고 화려한 장식으로 소수의 사람만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의 Great Chair가 된다. 장식을 배제하고 보다 단순하게 만들어진 Vernacular Joined Chair도 있었지만 캐비넷메이킹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점이 Joined Chair의 가장 중요한 점이다.

866d33ec-ad73-4af3-b460-08702031588d_3315x3315.jpg A Charles II joined oak double panel-back open armchair, circa 1670

상류층을 위한 Joined Chair의 역사도 길고 다양하다. 이후 화려한 귀족 문화에 맞춰 아름답게 장식하고 푹신하고 부드럽게 업홀스터리를 한 의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류층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의자들이 된다. 대표적인 예로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가구 제작자 토머스 치펀데일(Thomas Chippendale, 1718-1779)의 의자나 17세기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쓰이던 화려한 타부레 스툴(Tabouret Stool)을 꼽을 수 있다.

1aed2980-e9eb-4836-b651-9b8f9929da02_1312x688.jpg (좌) Tabouret Stool, Versailles, 17C, (우) Arm Chair, Thomas Chippendale

근대로 넘어오면서 각 지역의 민속 의자들(Primitive 또는 Vernacular Chair)이 상품화되면서 현대적인 의자들의 뿌리가 된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의자가 바로 윈저 체어다. 잉글랜드 지역의 민속 의자를 바탕으로 대량 생산된 의자가 런던같은 대도시에서 널리 팔리게 되고 체어메이킹 산업의 모델을 보여주게 된다. 영국의 윈저 체어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만의 스타일로 발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많은 가구 제작자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데 예를 들어 한스 웨그너(Hans Wegner), 베르게 모겐센(Børge Mogensen) 북유럽의 디자이너가 만든 컨템포러리 윈저 체어들이 있다.

ac39084d-435c-4d0a-9490-493bd1460f3d_1376x644.jpg (좌) Børge Mogensen의 J52 for FDB, (우) Hand Wegner의 Nyborg Library Chair

윈저 체어 뿐만 아니라 영국의 Arts and Crafts Chair나 Ladder Back Chair, 미국의 Shaker Chair 같이 널리 알려진 의자들은 다리(Post)와 가로대(Rung)로 프레임을 짜서 만드는 민속적인 포스트앤렁(Post & Rung)의자라는 대표적인 서민들의 민속 의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20세기 들어 현대 디자이너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의자들 중에는 포스트앤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의자들이 있다. 한스 웨그너의 Wishbone Chair와 베르게 모겐센의 J39, People’s Chair 가 좋은 사례라고 본다.

b825b108-8f2a-4cfd-b876-f0f9e4d46175_1350x626.jpg (좌) Børge Mogensen의 People’s Chair, (우) Hans Wegner의 Wishbone Chair

현재에 와서는 Joined chair든 윈저 체어나 포스트앤렁 같은 민속 의자든 여러 의자에 기반한 정말 다양한 의자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럴수록 그 의자들의 유래와 기원을 알고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의자는 중요하고 역사적인 아티팩트(Artefacts)다.
의자들은 시대의 특정한 정신과 유행을 보여주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타낸다. 의자는 그 사용자들의 초상이며 생산 기술을 반영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의자들을 통해서 당대의 사회적 구조들, 산업의 재료들과 기술들 그리고 유행 등 당시의 시대를 이해하고 인지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일상 도구들 중에서 이처럼 다양한 면들을 보여주는 사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스위스 가구 브랜드 Vitra의 명예회장인 롤프 펜바움(Rolf Fehlnbaum)이 의자에 대해서 한 말이다. 건축과 가구, 패션 등 많은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히 의자에 대해서 이런 언급이 있는 것은 그만큼 의자가 사람과 친밀하고 관계가 깊은 사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의자를 앉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이런 분류와 흐름을 알아두는 것은 의자를 이해하는 좋은 접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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