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러 가는 길에 있던 칼국수집이 문을 닫았다. 두세번 가본 곳이었는데 가게에서 쓰던 의자가 한 켠에 버려진 듯하게 놓여있었다. 이 의자는 온라인에서는 Y체어라고 파는 것인데 덴마크의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 한스 웨그너(Hans Wegner)의 의자를 카피한 것이다. 요즘은 경기가 어렵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들만큼 저조하니 동네 식당이 버티기 어려웠나보다. 처음 식당을 오픈했을 때 축하 화환이 놓였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골랐을 의자가 버려진 모습은 안타깝다.
한스 웨그너는 덴마크의 대표적인 가구 디자이너로 많은 의자를 남겼다. 그 중에 Wishbone chair가 바로 Y 체너의 오리지널이다. 등받이 모양을 보고 Y체어라고 하지만 wishbone은 조류의 앞가슴의 뼈 모양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치 쌍쌍바처럼 양쪽을 잡고 당겨 부러지는 모양으로 운은 점쳤다고 해서 wishbone이라고 하는데 의자의 등받이가 wishbone을 연상시켰던 것이다.
사실 한스 웨그너의 이 의자는 중국 스타일의 의자로 분류된다. 중국의 전통 암체어인 ’권의(圈椅)‘의 등받이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미드센추리 의자들 중엔 중국 스타일의 의자가 제법 있다. 중국은 유럽처럼 송나라 중기무렵 입식 문화가 대중화되었고, 이후 권의나 관모의 같은 전통 의자들을 써왔다. 유럽은 19세기 이전부터 이국적인 동양의 문물에 꽤나 영향을 받기도 했으니 중국풍의 의자들이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나는 동네를 다니거나 여행을 갔다가도 집 앞이나 길 가에 놓인 의자들을 발견하면 기록 삼아서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지금은 별 거 아닌 것 처럼 흔하고 쉽게 사서 쓰다가 쓸모없으면 버리기도 하는 요즘의 의자들도 그 역사를 따져보면 거장들의 의자가 나오기도 한다. 편의점 등에서 쉽게 보는 플라스틱 의자들도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역시 동네에 있는 위스키바를 지나갈 때마다 가게 앞에 놓인 소파가 눈에 확 들어온다. 화려한 장식과 색감도 그렇지만 프랑스 로코코 양식을 담았던 포퇴(fauteuil)라고 부르던 의자와 닮았기 때문이다. 포퇴는 흔히 소파라고 부르는 의자들과 비슷한 프랑스 의자라고 보면 되겠다. 동물의 다리를 닯은 다리는 카브리올레라고 부르는데 과거부터 동물의 발을 묘사한 가구의 다리 장식이 의자에도 쓰였고, 발레에서 카브리올(cabriole)이라는 동작에서 유래된 표현이라고 한다.
곳곳에 칠이 벗겨진 모습이지만 정작 매장 안에서는 심플한 모던 양식의 의자들을 쓰면서 가게 앞에서 흡연자들을 위한 의자로 저런 화려한 의자를 고른 이유가 매우 궁금하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기에 이 위스키바를 갈 일이 없기에 알 수가 없을 듯 하지만.
몇 해 전에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에 반해서 여러 번 여행을 다닌 적이 있다. 아내의 그림책에서 고성의 교암마을을 배경으로 하기도 했기 때문에 답사라는 핑계도 있었고. 그렇게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구경을 하던 내 눈에는 집 앞에 놓인 여러 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의 의자들을 보면 마치 프리츠 한센의 의자들을 연상시키는데 때가 타고 칠이 벗겨진채로 놓인 의자는 어떤 이유로 저기에 있을까 싶었다. 아마 햇빛이 좋은 날, 또는 노을이 예쁜 저녁 시간에 나와서 잠시 앉아 한숨 돌리는 용도일 수도 있겠지. 낡았지만 여전히 쓰임이 있는 듯한 의자를 보면서 어떤 풍경을 연상해보게 된다.
마치 스웨덴이나 덴마크 어느 곳에서 만들었을 것 같은 디자인의 컨템포러리 윈저체어가 2024년 합정동 어느 빌라 앞에 놓여있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파는 많은 윈저체어 또는 스틱체어들은 20세기 초중반 북유럽의 많은 가구 디자이너들과 가구 회사들에서 디자인했던 다양한 스타일의 미드센츄리 의자들에 기반을 둔다. 저 의자 역시 그런 의자들 중에서 어떤 것을 본떠서 만들어진 많은 변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래된 한국적인 빌라 앞에 놓인 미드센츄리 디자인의 빨간 의자라니. 본래 저 의자를 샀던 사람이 어떤 이유로 밖에 내놓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누군가 이사가면서 놓고 간 의자가 너무 멀쩡해서 주워다 놓은 것은 아닐까. 더운 날 그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엔 딱 좋은 자리다. 의자를 저기에 놓은 사람에게 의자에 담긴 20세기 디자인의 감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겠지만 내가 보기엔 너무나 절묘한 조화라서 눈에 확 들어온다.
의자는 단순히 앉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어떤 시대적, 사회적 의미를 담기도 한다. 앉는 사람의 취향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나는 거기에 개인적 이야기까지도 담긴다고 생각한다. 모든 개인의 사물이 그렇겠지만 의자는 누군가의 공간이자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눈에 띌 때마다 저런 의자들을 찍어두고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보는 정도에 그치긴 했는데, 그걸 본격적이고 꾸준하게 실행한 사람도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산림조형의 소동호는 7년간 서울 길거리의 의자들을 아카이빙했고, 버려지고 변형되고 다른 용도로도 쓰인 많은 의자들을 담아 책으로도 만들었다. 하나같이 낡은 의자들이지만 내 눈엔 그 의자가 담은 흐름과 개별적인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의자를 만들게 되면서 의자를 알게 되고, 그럴수록 보이지 않던 의자들이 눈에 띄게 되었다. 소동호 작가의 기록들을 보면 그 다양한 생김새와 상태를 보고 놀랍기도 하다. 아래 링크에서 그 기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