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그린우드워킹

Sajifest 2024를 다녀오다

2024년 10월, 일본의 스푼페스트(Spoonfest)라고 할 수 있는 Sajifest(さじフェス)를 다녀왔다. Saji(さじ)는 숟가락이라는 뜻으로 영국의 Spoonfest를 본떠서 생긴 일본의 그린우드워킹 이벤트다. 그린우드워킹을 하는 공예가들이 모여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그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일종의 축제같은 행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침 나와 함께 체어메이킹 클래스를 했던 분이 일본어를 잘 하셨고 일본을 자주 오가면서 전시 및 교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그린우드워킹을 위한 단체를 조직하고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지도자를 배출하고 있는 활동가 마사시 코츠와(久津輪 雅)하고 잘 아는 사이였고,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던 Sajifest가 오랜만에 열린다기에 함께 다녀오게 된 것이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언젠가 한번 가게 될 일이 있으려나 했었는데 약간은 갑작스레 일이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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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그린우드워킹은 마사시 코츠와를 포함해서 몇 명의 동료들이 그린우드워크 랩(Greenwoodwork Lab, GWW Lab)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조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사시 코츠와는 NHK PD를 하다가 다카야마의 타쿠미쥬쿠(森林たくみ塾, Takumijuku)에서 목공을 배우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영국에 취업해서 가구 제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6년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에 체어메이커 마이크 애버트(Mike Abbott)의 체어메이킹 코스를 참여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린우드워킹을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마이크의 수업에 함께 참여했던 다른 일본 사람들과 함께 일본에서도 비슷한 활동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린우드워크 랩은 스푼 카빙부터 체어메이킹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그린우드워킹을 소개하고 책과 자료를 만들면서 컨텐츠를 쌓아갔다. 그리고 마사시 코츠와는 기후현의 산림문화아카데미(岐阜県立森林文化アカデミー, Gifu Academy of Forest Science and Culture)에서 그린우드워킹 전공을 개설하고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일본에 가기 전, 2024년 7월에는 마사시 코츠와가 일본의 그린우드워크 랩의 관계자들과 함께 내 작업실로 방문한 일이 있었다. 쿠보타 요시히로(久保田 芳弘)와 이노우에 마리(井上麻里)는 마사시 코츠와의 제자이면서 이제는 그린우드워크 랩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10월에는 반대로 내가 일본의 Sajifest를 참관하러 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마사시 코츠와는 아카데미에서 그린우드워킹 지도자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배출하면서 동시에 Sajifest를 기획했다. 2년에 1번씩 행사를 열었는데, 한 해는 그린우드워크 지도자 과정에 집중하고 한 해는 시간을 내서 행사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2회까지는 마사시가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장소도 기후현 산림문화아카데미에서 개최했지만 이번에는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에게 그린우드워크 랩을 맡기고 2024년의 행사는 그들이 맡아서 준비했다. 마사시는 이제 자신은 즐기면서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웃음이 가득했고, 행사를 담당한 사람들은 피곤에 절어 행사가 얼른 끝나기만을 바라는 듯 했지만 어쨌든 모두 설레면서 행사를 기다리고 참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2024년이 3회차인 행사는 일본에서도 목공과 임업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다카야마에서 열렸다. 다카야마는 전통적인 오래된 산촌이었고 예로부터 세금 대신 교토의 건물을 짓는데 목수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목조 건축과 목공 기술에 대한 오랜 문화로 잘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요즘은 작은 교토라고 불리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의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오래된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된 작은 도시다. 다카야마는 일본의 산림세(forest tax)로 조성된 기금을 받아서 임업과 목공 등 관련 사업과 인력을 지원하고 있고, 이번 Sajifest 역시 다카야마 시의 제안으로 시작해서 시의 후원을 받으며 행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넓은 주차장이 완비된 1천명은 충분히 수용할 만한 체육관을 임대하는데 딱 10,000엔을 냈다고 한다. 행사에 참여하는 전문가들과 스텝들을 위한 숙소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 중에 하나가 충분한 조건을 갖춘 장소를 찾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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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a0bac8-6ce3-4899-8fe5-07f65e99229b_4032x3024.jpg Sajifest 2024가 열린 다카야마 체육관(清見高齢者運動広場)

이번에 열린 Sajifest는 그린우드워킹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큰 운동회 같은 분위기였다. 친한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하고 두리번 거리며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나무를 쪼개고 깎으면서 곁눈질로 다른 사람의 작업을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함께 갔던 분과 함께 행사를 둘러보고 곳곳을 다니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을 몇몇 만나기도 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일본에는 이미 스푼 카빙이나 볼(bowl) 카빙, 와가타봉(我谷盆, wagatabon)이라고 하는 밤나무로 깎은 목쟁반 등 여러 방식과 주제로 그린우드워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끌과 대패 등의 전통적인 수공구 뿐만 아니라 도끼, drawknife나 카빙용 나이프 등의 칼들을 만드는 툴 메이커(tool maker)들도 있어서,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배우고 인사를 나누는 만남의 장이기도 했다.


전야제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2.5일간 열린 행사에 수백명이 참여했는데 일단 그런 행사가 가능하고 실제로 진행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다양한 소재와 작업으로 그린우드워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비슷한 행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을 가끔 만날 때마다 인사처럼 하곤 한다. 그러나 확실한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아직은 실제로 일을 꾸미고 진행하는 것은 녹록치 않는게 사실이다. 마사시 코츠와를 비롯한 사람들이 10여년간 씨를 뿌리고 일구어낸 결과이고, 그들은 그 과정을 그린우드워킹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단지 Sajifest만 다녀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눈여겨본 일본의 목공방들 중에서 교토와 기후시 주변의 공방들과 추천을 받은 장소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관광지 방문은 일절 없이 공방과 공방을 넘어다니며 산 속에서만 지냈던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쉐이커 체어를 만드는 우노 마사유키 (宇納正幸)의 작업실과 의자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노씨는 스승으로부터 쉐이커 가구와 의자를 알게되었으나 사실은 더 모던한 가구에 관심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러다 인터넷이 생기고 온라인으로 쉐이커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점점 더 빠져들었고 지금은 쉐이커 가구와 의자를 일본에서 재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교토에서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산 속의 작업실은 길의 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즈넉하게 산에 둘러싸인 풍경과 직접 지은 작업실, 그리고 우노씨가 만든 쉐이커 체어들은 너무나 조화롭게 모여있었고 유쾌한 우노씨의 이야기와 맛있는 음식들이 깊어가는 밤을 즐겁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b6f79b5b-94b6-4e22-84a4-2ea2d382f150_4032x3024.jpg Sajifest. 누구나 무료로 카빙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쿄토에서 방문한 아사쿠라목공(朝倉木工)에서는 일본 목공방과 목수들이 의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아사쿠라목공은 밤나무 등의 지역에서 나는 목재를 써서 가벼운 의자를 만드는데에 오랜 시간 노력을 해왔고, 그 결과로 교토레제라(京都レッジェーラ)라는 의자를 포함해서 여러가지 디자인의 컨템포러리 의자들을 만들어냈다. 일본에서는 목공방들이 의자로서 수준을 평가받는다는 말도 신선했지만 아사쿠라목공의 의자들 중에 90%는 일반 가정집에서 구매한다는 말도 놀라웠다. 그만큼 의자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이해가 넓다는 의미로 이해되고, 일본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자에 대한 담론이 많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윈저 체어를 비롯한 컨템포러리 의자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있고 관련 전시도 많이 열린다.

914dbe9c-82a7-46c7-a842-6663ef2fadf7_4032x3024.jpg 우노 마사유키 (宇納正幸)의 shaker chair
b45574c8-0949-47d5-b91c-cfc9e534a29d_4032x3024.jpg 아사쿠라목공(朝倉木工)의 교토레제라(京都レッジェーラ)

일본 투어에서 마사시 코츠와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70년대부터 있었던 일본의 목공운동과 그 결과로 지금까지 이어진 목공 문화에 대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경제 성장과 현대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환경과 생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야나기 무네요시로부터 비롯된 일본 민예운동의 영향으로 일본의 전통 목공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숲과 나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환경 운동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단체와 학교가 설립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오크 빌리지(Oak Village)라는 곳은 1974년부터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일본의 국산 하드우드를 활용해서 그릇부터 건축까지 나무로 만드는 모든 대상을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하는 활동을 해왔고, 그에 필요한 교육과 제작, 숲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까지 다양하게 해오고 있다고 한다. 처음 Oak Village를 시작한 사람들 중에는 지금 쉐이커 체어를 만드는 우노 마사유키의 스승이 있었다고 한다.

87bd3655-97fc-47cb-b025-b629afe0ed79_4032x3024.jpg 다캬아마 Oak Village의 매장

마사시 코츠와가 활동하는 기후현 산림문화아카데미 역시 아주 인상적인 곳이었다. 임업과 환경, 그리고 목조 건축과 가구 제작, 거기에 그린우드워킹까지 나무와 숲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협력하는 학교였다. 특히 기후 지역에서 나는 목재를 쓰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으로 학생들은 지역의 산림에 나가 숲을 관리하고 배우고 벌목부터 제재해서 목재를 생산해내고, 그 목재를 써서 건물과 가구 등의 작업까지 해내고 있었다. 일본의 대학에서도 하기 힘든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훌륭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타쿠미쥬쿠를 둘러봤을 때도 그랬지만 공립과 민간 양쪽에서 모두 철학과 기반을 갖춘 훌륭한 목공 학교들이 있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또한 요즘 일본에서는 국산 목재의 활용을 넘어서 지역 내에서 난 목재로 관심이 확장되어 교토에서는 지역의 목재로 만든 가구나 물건을 쓰자는 운동까지 있다고 한다. 마치 음식에서 원산지를 따지고 유기농과 로컬의 제철 식재료를 구분하는 것처럼 목공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퍼지는 듯 하다. 산림문화아카데미 등의 목공 학교나 일본에서 만났던 목수들이 모두 같은 철학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역의 목재를 활용하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었다. 이런 담론이 대중들에게까지 설득력을 갖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일본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들 중 하나였다. 이제 우리도 목공의 기술과 디자인 수준을 향상시키는 노력에 그치지 말고 그 안에 담을 문화와 태도에 대해서 보다 많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참고

Greenwoodwork Lab
기후현 산림문화아카데미(Gifu Academy of Forest Science and Culture)
우노 마사유키 - 쉐이커 체어
아사쿠라목공(朝倉木工)
타쿠미쥬쿠(森林たくみ塾, Takumijuku)
Oak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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