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무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주변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게 나무다.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는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하다못해 가로수나 아파트의 조경수들도 매일 마주친다. 그러나 실상 그 나무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무관심도 정도가 있지, 매일 보는 생명에 대해서 이름조차 모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아니 사실 그 나무들은 생명이라고 인식은 하고 있을까? 풍경을 구성하는 사물 중의 하나로서 살아있긴 하지만 생명이라기 보단 오브제라고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 있다. 옆집 아랫집 사는 사람도 이름을 모르는데 나무이름이야 뭔 대수인가 싶다. 밀도 높은 공동주택에 살면서도 간섭받지 않는 생활을 편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지역사회와의 고립은 피하기 어렵다. 몇 년을 살아도 그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무의 이름도 모르면, 문득 날아가는 작은 새의 이름을 모르면, 산책로에 핀 꽃의 이름을 모르면 그만큼 자연과의 거리도 멀어지고 관계성이 떨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연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게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면 무심해질 수 밖에 없다. 산의 나무들이 잘려나가 산사태가 나든, 강이 갇혀서 썩어가든, 기후위기로 제주도 구상나무가 멸종 위기에 있든, 30년 된 아름드리 가로수들이 호텔을 짓는다고 싹 다 잘려나가도 새로 짓는 호텔 숙박권의 최저가 검색만 하게 될 것이다. 그 호텔의 이름이 Double Tree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JTBC 밀착카메라 - 그 멋졌던 '30년 가로수들'…이틀 만에 사라진 이유
반대로 생각해보자.
이름을 아는 것 부터가 시작이다.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지어주면 키우던 가축도 반려동물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이웃의 이름을 알면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인사를 하고 스몰토크를 피하기 어렵다. 귀찮을 수도 있지만 적당한 관계는 필요하기도 하다. 나무도 역시 그렇다. 이름을 알고, 봄부터 겨울까지 매일의 변화를 눈여겨 보고, 꽃이 피고 씨앗이 열리고 눈이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면 풍경 속에 한 사물이 아니라 내가 아는 그 나무가 될 수 있다. 그렇게 관계가 생기면 관심이 생기게 되고 저 나무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을까.
나 역시 그랬다. 나무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기 전에는 은행나무, 벚나무, 메타세콰이어, 플라타너스, 아카시아(사실 정확한 이름은 아까시 나무다) 등의 흔하게 만나거나 때에 따라 눈에 확 띄는 나무들은 알고 있었으나 정확한 이름이나 생태, 특성 등 나무의 삶과 일상에 대한 지식과 관심은 전무했다. 봄날 밤에 만나는 벚꽃의 화려함에 감탄을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나무를 다루게 되고 그 특성을 활용해서 의자를 만들면서 나무의 생태, 그리고 삶에 대해서 알고싶어졌다. 인터넷을 주로 활용해서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았지만 사실 나무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풀어주는 책은 많지 않다. 나무를 쓰고 이용하는 목수들의 삶은 이야기하지만 목수들이 쓰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노르웨이의 나무라는 책은 정말 누구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나무와 사람의 일상과 관계, 북유럽 자연의 생태와 지역 문화까지 아우르는 흥미로운 책이다. 일반 서점에서는 절판으로 구할 수 없지만 우드워커 쇼핑몰에서는 아직 구매할 수 있다.
찾아보면 국내외에서 나무를 다루고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제법 있다. 자연의 일부로서 나무에 대한 내용, 그리고 그런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좋은 책들이 있다면 추천을 부탁드린다.
그런데 사실 나무를 써서 의자나 도구, 사물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나무를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톱을 자르고 대패와 끌로 다듬어 가구나 집을 짓지만 과연 그 나무의 삶과 생애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작업을 위한 자재로서 가격과 품질만 따지기보다 나무라는 생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무는 섬유질과 리그닌으로 이루어진다. 광합성을 통해 셀룰로오스(Cellulose)와 글루코오스(glucose, 포도당)를 만들어내는데, 셀룰로오스는 섬유질을 만드는 원료가 되고 글루코오스는 에너지원이다. 나무의 무게에서 60~70%는 섬유질이라고 하는데 나머지 20~30%는 리그닌이라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나무는 섬유질과 리그린으로 구성된 생명인 것이다. 섬유질은 나무의 식물세포를 위한 세포벽의 재료이기도 하고, 물관이나 체관같은 구조를 구성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섬유질은 말 그대로 실과 같이 탄성과 유연성을 나무에 부여해준다. 그리고 리그닌은 섬유질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면서 접착시켜주기 때문에 나무에 단단하고 견고한 성질을 더해준다. 덕분에 나무는 꽤나 단단하면서도 금속과 달리 유연한 특성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이걸 철근 콘크리트에 비유하는데, 철근이 없는 콘크리트는 단단하지만 쉽게 깨지는 것 처럼 나무의 내구성을 확보하는데 섬유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풀과 나무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부피 생장을 하느냐의 여부다. 즉 나이테가 생기면서 자랄수록 두꺼워지는 것은 나무이고, 그런 것 없이 크기나 키만 자라는 것은 풀이다. 그래서 대나무도 나무가 될 수 없는데, 대나무는 죽순의 지름이 곧 다 자란 대나무와 같다. 그대로 키만 훌쩍 자라는 것이고, 대나무를 잘라보면 단단하지만 나이테는 찾을 수 없다. 리그닌을 봐도 차이가 있는데, 풀에도 리그닌은 있으나 훨씬 적다. 그러므로 나무보다 더 유연하지만 단단하진 않은 것이다. 물론 대나무처럼 단단한 풀도 있을 수는 있으니 풀도 풀 나름이긴 할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위의 사진이다. 같은 밤나무를 결대로 쪼개서 깎은 나무인데, 하나는 왼쪽은 빠르게 자라서 나이테 간격이 넓은 Fast Grown이고, 오른쪽은 천천히 자라서 나이테 간격이 좁은 Slow Grown이다. 수종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다르지만, 같은 나무라도 자란 환경에 따라 또는 그 시기의 기후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차이가 생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사진처럼 아주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목한 밤나무들이었으니 아마 하나는 어딘가 그늘진 곳에서 다른 나무들에 비해 느리게 자란 모양이다. 같은 나무라 할 지라도 시기에 따라 나이테 간격은 달라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어릴 때는 천천히 자라서 나이테 간격이 좁다가 어느 시점부터 환경이 개선되면서(주변에 경쟁자가 사라져서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든가) 자라는 속도가 확 빨라질 수도 있다. 이런 특성을 활용해서 오래된 고목을 이용해서 과거의 기후 환경을 조사하는 연구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다른 두 밤나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두 나무 중에서 어떤 나무가 더 가볍고 더 강할까. 차이가 난다면 얼마나 나고, 그에 따라 어떻게 써야 할까. Fast Grown은 Slow보다 더 단단하고 무겁고 강하다. Slow는 더 가볍고 힘을 받으면 쉽게 부러진다. 나무의 내구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어려가지가 있지만 특히 파괴계수(Modulus of Rupture)에서 차이가 크다. 즉 옆으로 하중을 받으면 Fast가 Slow보다 더 큰 힘을 견딘다는 말이다. 그 차이는 Slow가 섬유질이 더 많기 때문에 단단함을 더해주는 리그닌이 Fast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힘을 받으면 더 쉽게 부러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공예가 Peter Follansbee가 그의 블로그에서 실험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하시라.
> slow-growing oak vs fast-growing oak by Peter Follansbee
> 번역한 글
대신 Fast는 칼로 깎거나 대패 작업을 할 때 더 어렵다. 단단한 리그닌을 주로 깎아야 하기 때문인데, 칼이 달라붙고 잘 나가지 않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Slow는 섬유질이 많기 때문에 윤활작용까지 해서 칼이나 대패가 슥슥 나가며 쉽게 깎인다. 무게도 가볍기 때문에 가구의 무게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어떻게 유의하고 활용해야 할까?
의자의 경우 다리, 가로대(Rung이나 Stretcher), 등받이살(Spindle)과 같이 선의 형태로 만드는 파트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막대들은 강한 내구성이 필요하다. 큰 힘을 받아도 쉽게 부러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용도로는 Fast가 훨씬 더 적합하다. 나는 국산 참나무와 밤나무로 의자의 파트들을 만드는데, 하부에는 밤나무를 쓰고 상부에는 참나무를 쓴다. 그리고 의자를 조립하면서 밤나무로 만든 가로대가 부러지는 일이 가끔 있다. 조립할 때 가해지는 압력, 살짝 오차가 있는 장부구멍의 각도나 정렬에 생긴 오차 등의 문제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 무사히 조립만 되면 실제 의자를 사용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조립 과정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 때가 있다. 그리고 Slow는 Fast에 비해 그런 스트레스에 훨씬 취약하다. 만약 의자의 하부를 위한 파트를 만들었는데 Slow가 있다면 보다 조심하고 부러질 위험이 없는지 꼭 확인을 해야만 한다.
네이버 블로그를 오래 운영하면서 많은 글을 써왔는데, 그 중에 조회수가 가장 많은 글 중에는 아까시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나무에 대한 글들이 있다. 이름의 유래부터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언제 심었고 어떤 특성과 생태를 보이는지 등의 내용이다. 자재로서의 나무가 아니라 생명으로의 나무는 어떤 모습이며, 우리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내용들이다. 섬유질과 리그닌까지 알아야 할까 싶지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데 있어 상대방의 기분과 성격, 외모 뿐만 아니라 취향까지 고려한다는 걸 생각하면 나무가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궁금즘은 지나친 관심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