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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라샤 Aug 25. 2021

갱년기

50이 된다는 건

초저녁 언제나처럼 드라마를 보려고 TV 앞에 앉았다.  ". 엄마  누워서 편하게 자 " 딸아이가. 나를 흔들면서 얘기한다. 아~~ 또 졸았구나!

"아니야 엄마 드라마 볼 거야" 그렇게 대답한 기억도 잠시 난 거실 소파에서 이미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투닥투닥 남편과 딸아이의 장난치는 소리와 TV 소리가 어렴풋이 귓가에 맴도는 느낌이 들다가 어느새 기억이 없다.


오줌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침대로 다가간 나는 핸드폰을 집에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3시~~ 오늘은 그래도 푹잤구나!라고 느끼면서 침대에 다시 누워본다.

평상시에 눈을 뜨면 1시 또는 2시 25분 어떨 때는 11시 15분 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예전 내가 어렸을 때 저녁 8시 에서 9시 면 언제나 꾸벅꾸벅 졸던 엄마를 기억한다.

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졸고 계신지 어김없이 방에 가서 주무시라고 해도 엄마는 손에 쥔 빨래나 나물을 끝내 놓지 않고서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그리곤 어김없이 새벽을 걷고 계신걸 매일 보며 자랐는데.....


49살에서 50살이. 된다는 그 숫자 더함에 나의 몸속 호르몬을 빼기를 하고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서야 나는 인정해야 했다.

갱년기라는 단어가 내 것이 되었다는 현실에 말이다.

그지 긋지긋 하던 생리와. 영원한 이별을 했고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를 강타하는 열감과 연애를 시작했다.

손선풍기를 보이는 곳곳에 두어야 하는 수고로움과 한겨울에도 창을 활짝 열어 두어야 하는 밀당을 나는 다 온몸으로 받아내고 느꼈고 아팠고 어느 날은 멍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많이 나는 날에는 드라마 핑계를 대야 했고 온몸이 뜨거운 열감이 심한 날에는 보일러 탓도 해보았다.


모두 다  내 탓이 아니길 바랬다.

그렇게 부정하고 외면했더니  아주 큰 현실이 나를 덮쳤다.

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난 계속 눈물이 났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난 내가 너무나 큰 병에 걸린 듯 울부짖었다.

전화받는 이들이 모두 걱정을 하고 남편도 딸도 나를 꼭 안아 주었지만 난 계속 삶의 끈을 놓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내 인생에게 실연당한 것이다.

눈물과 한숨이 부쩍 나른 뒤덮어  내가 나를 붙잡기도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다.


부산에 있는 언니가 전화를 했다.

". 언니 친구도 그렇게 울더니 산부인과 진료받고 약 먹고는 지금 엄청 바쁘게 살고 있어 너도 병원 가 얼른  "  이야기를 듣고 언뜻 든 생각은 갱년기 호르몬 약 먹으면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다고 배웠는데.... 학부 때 들었던 정보가 뇌리를 스쳤다.

그리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죽고 싶지는 않는구나~~ 나


동네 산부인과 선생님의 블로그를 읽어보고 정말로 친절해 보이는 곳으로 나는 진찰을 받으러 갔다.

내 마음이 닫은 끝에 약물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시작해 보자는 의사의 상냥함과 격려에 결심을 했다.


일주일 이 지난 어느 날 나에게는 새로운 직장이 생겼고 내손에는 긍정의 책이 꼭 쥐어졌으며

늘 내 곁에는 남편과 딸아이가 나를 사용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더 이상 열감은 나를 흔들지 않았다.

새벽에 깨는 건 여전했지만 그 대신 일찍 잠들어서 7시간 수면을 맞추고 있다.


새벽시간에 책도 일고 드라마도 보고 노래도 들으면서 내 우울을 달래는 방법을 채워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사귀고 싶지 않았던 갱년기라는 녀석과의 연애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통도 감싸 안아야 함을 말하고 싶다.

피하고 싶게 끔찍한 걸 즐기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겪어본 사람만 아니깐 말이다.


나의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시작되었다.

치열히 싸워보고 많이 겪어보고 글로 써볼예정이다  누가 봐도 정말 즐기고 있구나 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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