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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01. 2023

[etc.] OTT가 쏘아 올린 지각변동

‘옥자'에서 '코다'까지

“두렵습니다. 칸 영화제만큼 영광스럽고 흥분되는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 동시에 불타는 프라이팬에 올라가는 생선이 된 느낌이었어요.“

 2017년 영화 <옥자>의 국내 기자회견장에서 봉준호 감독이 꺼낸 말이다. <옥자>는 OTT(over the top) 플랫폼 넷플릭스가 570억의 제작비를 모두 지원한 영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하지만 극장과 온라인스트리밍 동시개봉이라는 시스템은 기존 영화계, 특히 콧대 높은 칸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초대받은 불청객(?) <옥자>는 거듭 해프닝을 겪게 된다. 칸 영화제 언론시사회에서 넷플릭스 타이틀을 시작으로 <옥자>가 공개되는 순간 관객의 야유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등 소란은 계속돼 결국 상영이 중단되었다. 약 8분 후 상영은 재개되었지만 이후 칸 심사위원장은 공개적으로 <옥자>의 수상을 반대했다. 봉준호 감독은 “초청해 놓고 논란을 야기해 민망하게 하더라”라고 농담(?)했지만, 논란은 국내로까지 이어졌다. 스트리밍과 극장 동시개봉이라는 조건을 내세우는 넷플릭스와 적어도 2, 3주가량 극장에서 먼저 개봉해야 한다는 국내 멀티플렉스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대형 멀티플렉스 3사는 보이콧을 선언했다. 결국 <옥자>는 독립영화관, 중소영화관 등에서만 개봉해 국내 관객 수 32만 명이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2017년 당시 10만 명 남짓이었던 넷플릭스 국내가입자 수는 현재 300만 명을 훌쩍 넘겼다. 계정 공유를 염두에 두면 실제 이용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다. 토종 OTT 플랫폼도 해외 OTT에 대항하기 위해 개편을 실시했다. 푹, 옥수수, skt 등은 플랫폼을 통합해 ‘wavve’(웨이브)로 출범하고 HBO 시리즈를 독점 공개했으며, 티빙과 왓챠 또한 개봉관을 만들거나 오리지널 작품을 제작하는 등의 변화를 꾀했다. 2021년 엔 애플티비 플러스와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상륙을 마쳤다. 불과 5년 남짓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IPTV 시장의 시대를 빠르게 지나쳐 손 안의 스트리밍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OTT 플랫폼은 스트리밍 사업뿐만 아니라 제작사의 역할까지 해내며 몸집을 부풀린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여는’ 넷플릭스의 방침은 영화계의 거장들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 <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의 알폰소 쿠알론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를 제작하며 “영화라는 매체로 전달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작품이었다”라고 말했다. <로마>는 2018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에서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칸 영화제에선 넷플릭스 영화란 이유로 초청되지 못했다.)


 OTT 오리지널 작품은 ‘영화란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이라는 벽을 깨고 우후죽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2018년 <치욕의 대지>가 아카데미 촬영상, 각색상,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2020년엔 노아 바움백의 <결혼이 야기>,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 시 맨> 두 편이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비록 기생충에 밀려 수상은 불발되었지만 <결혼이야기>의 로라던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2021년엔 <맹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맹크>는 미술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2년 드디어 OTT오리지널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게 된다. 10편의 작품상 후보작 중 5편이 OTT 플랫폼 작품으로 넷플릭스의 <파워 오브 도그>, <돈 룩 업> HBO맥스의 <킹 리차드>, <듄>, 애플 TV의 <코다>가 이름을 올렸고, 수상의 영광은 <코다>가 차지했다. 션 헤이더 감독의 <코다>는 작품상 외에도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는데, 우리에겐 윤여정 배우가 수화로 트로이 코처에게 남우조연상을 시상하는 장면으로 익숙하다.

 2023년에도 OTT 오리지널의 질주는 계속됐다. 넷플릭스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작품상을 비롯해 9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어 음악상, 미술상, 촬영상, 장편국제영화상을 받았고, <기예르모데토로의 피노키오>는 디즈니와 픽사의 작품을 제치고 장편 애니메이션을 수상했다. 영화제뿐만 아니라 2018년 미국 에미상에선 HBO맥스가 <왕좌의 게임>의 9관왕을 포함해 23관왕을, 넷플릭스도 <블랙미러>의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으로 23관왕을 차지했다. 2021년엔 에미상의 수상작 27개 부분 중 18개인 67%가 OTT오리지널 작품이었으며, 2022년엔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도 6관왕을 했다.


 OTT가 쏘아 올린 지각변동은 빠르게 시스템에 흡수되었다. OTT 오리지널 작품의 수상은 예삿일이 되고 OTT 작품의 아카데미행을 결사 반대했던 감독들도 하나둘 넷플릭스에 합류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영화는 다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넷플릭스 영화를 제외해야 한다”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제작사 앰블린 파트너스는 2021년 넷플릭스와 계약, “매년 여러 편의 신작 발표”를 예고하며 태세를 전환했다. 국내에선 코로나로 인해 극장개봉이 미뤄졌던 영화들이 OTT를 통해 공개되어 적자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 행을 택한 승리호는 제작비의 130%인 310억 원에 판권을 넘겼다.)


 다시 2017년 <옥자>의 기자회견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날 봉준호 감독은 오늘날의 OTT 생태계를 예상이라도 한 듯 칸에서의 논란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도 결국은 스트리밍이나 극장이라는 것들 모두 공존하게 되리라고 봐요.

어떻게 공존하는 게 서로 가장 아름다운 방법인가 그걸 찾아가는 과정 같고,...

우리가 영화를 보는 형태는 여러 가지잖아요. 블루레이로도 보고 극장가서도 보고 넷플릭스로도 보고, 영화를 볼 수 있는 편안하고 좋은 방법들이 더 늘어나는 그런 과정에서의 작은 소동이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고 결국은 또 아름답게 풀어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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