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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03. 2023

[k-pop] 마녀의 새 시대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음원차트에서 k-pop 여자 아이돌의 집권이 길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여자 아이돌 전성시대다. 2023년 상반기 서클차트 1위에서 10위 중 남성 아티스트는 10위 지민의 ‘Like crazy’가 유일하고 20위까지 범위를 늘려봐도 14위 태양의 ‘Vibe’, 16위 BTS ‘dynamite’ 20위 세븐틴의 ‘손오공’으로 20%남짓이다. 이는 유례없는 현상이다.

 이전의 한국 대중음악사의 주류는 남성 아티스트였다. 단편적인 예로 골든 디스크 어워즈(2001년 이전엔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가 개최된 후 88년 3회 주현미가 ‘신사동, 그사람’으로 여성 최초 대상을 받았는데, 이후 2004년 여성 발라더 이수영이 대상을 받기까지 16년이 걸렸다. 2006년 21회부턴 수상 개편으로 음반과 디지털음원 두 부분의 대상자를 각각 선정했고, 23년 37회까지 총 34개의 대상 트로피가 전달됐다. 여성 아티스트에게 트로피가 돌아간 건, 10회며, 그중에서 음반 대상은 2010년 소녀시대의 <oh>가 유일하다.


대중문화는 시대를 반영하고 유행가는 대중의 니즈를 반영한다. 사랑에 설레고, 이별에 가슴 아파하기보단 ‘나 퀸카! 너 반했니?’ (여자아이들 ‘퀸카’)나‘ 난 똑똑하고 키치해!’(아이브 ‘키치’), ‘한계 위로 남겨지는 우리 이름’(르세라핌 ‘언포기븐’)처럼 주체성이 뿜뿜한 화자가 등장하는 곡이 사랑을 받고 있다. 이는 여성 아티스트의 메시지, 서사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르세라핌은 이런 시류를 확실하게 겨냥하고 등장했다. 팀명에서부터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내세우며, 재데뷔를 하는 사쿠라와 채원, 발레를 그만두고 새 도전을 한 카즈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해 미국으로 돌아갔던 윤진, 그리고 짧은 연습생 기간으로 마지막으로 합류한 은채까지. 멤버들의 삶의 서사는 르세라핌이 주는 메시지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데뷔 앨범 <FEARLESS>로 ‘두려움은 없다’ 외치며 등장해, ‘충격받을수록 더 강해지니 어디 한번 공격해 봐’라며 <ANTIFRAGILE>, 이번엔 ‘남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UNFORGIVEN>까지. 그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의 방향으로 꾸준히 성장한다.


 7월 6일 1시 <UNFORGIVEN>의 수록곡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의 영어버전이 공개됐다. 공식 활동이 끝난 후 그것도 타이틀곡이 아닌 수록곡의 재발매는 이례적인데, 이는 후속곡 역주행의 결과다. 저지클럽 장르의 특색이 물씬 풍기는 ‘붐붐붐붐 내 심장이 뛰네!’의 후렴구는 따라 하기 쉬운 안무와 리듬으로 많은 릴스를 탄생시키며 빌보드 차트까지 역주행 중이다. 다소 긴 제목.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는 각각 창세기, 그리스 로마신화, 프랑스 전래동화 속 여성이다. 국적도 시대도 다른 세 여성의 공통점은 모두 ‘호기심으로 금기를 깬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브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 최초 여성. 창조신은 에덴동산에 먹음직한 수많은 과수를 심고 아담과 이브에게 어떤 과실도 맘껏 먹을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단, 선악과만은 빼고.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며 경고했지만, 이브는 선악과를 먹으면 신처럼 될 것이라는 뱀의 꼬임에 선악과를 먹게 되고, 아담에게도 권하게 된다. 선악과를 먹은 그들은 신이 되기는커녕, 영생의 삶을 잃게 되고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이프푸’의 M/V엔 신화를 나타내는 회화가 있다. 벤자인 웨스트의 1791년 작 ‘아담과 이브 낙원으로부터의 추방’ 앞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멤버들 사이 사쿠라가 잡혀있던 손가락을 끊는 순간 명화엔 선명한 글자가 새겨진다. don’t hide myself!


프시케

  아프로디테 못지않은 미모를 가진 프시케에게 빠진 인간은 아프로디테의 제사를 소홀히 하게 된다. 화가 난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에게 ‘저 오만한 자에게 사랑이 샘솟는 황금화살을 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혐오스러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벌을 주어라’라 명한다. 그러나 프시케의 침실로 들어간 에로스가 그녀의 미모를 보고 놀라 자신이 황금화살에 찔리게 되고 프시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에로스는 끔찍한 괴물이 남편이 될 것이라는 거짓신탁으로 프시케를 속여 정체를 숨긴 채 그녀와 결혼한다. 남편의 정체가 궁금했던 프시케는 등불을 켜 남편을 확인하고, 에로스의 미모에 놀라 등불 기름을 에로스의 등에 떨어뜨리게 된다. 에로스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신뢰를 깬 프시케에게 실망하고 떠난다.


푸른 수염의 아내

 푸른 수염이라는 별명을 가진 귀족 남성이 살고 있었다. 그는 여러 차례 결혼했지만, 그때마다 아내들이 실종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러다 어느 집안의 막내딸이 그에게 시집가게 되는데, 푸른 수염은 그녀에게 성의 모든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지만 지하실의 작은 방만은 열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지하실의 작은방이 궁금했던 아내는 호기심으로 그 문을 열고 그 안에서 푸른 수염과 결혼한 아내들의 시체를 보게 된다. 아내는 곧바로 방문을 닫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열쇠를 떨어뜨려 피가 묻게 돼 방문을 연 것을 푸른 수염에게 들키고 만다. 살해될 위험에 처한 막내딸은 마지막 기도할 시간을 달라 청하고, 그 사이에 찾아온 오빠들에게 구출된다.




 세 인물은 정해진 규율을 깼다는 공통된 이유로 형벌을 받거나 죗값을 치르게 된다. 르세라핌은 ‘어리석음’의 상징이었던 세 여성을 내세워 ‘내가 금기를 깬다고 하더라도 그건 네가 정한 규율이니 난 용서를 바라지 않아, 난 용서를 바란 적 없어’라고 말한다. 어리석은 호기심 때문에 실수를 범한 여성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규범을 깬 주체적인 여성으로 재해석했다. 7월 26일 인기가요. 꾸준히 역주행한 ‘이프푸’는 1위를 차지했다. 공식 활동 종료가 한 달가량 지난 시점에서, 타이틀곡이 아닌 수록곡이 이뤄낸 성적은 ‘역주행’으로만 해석하긴 부족하다. 팬덤으로만 이뤄낸 결과가 아님은 자명하다. 음악 시장의 메커니즘도 변화했고, 대중은 과거보다 더 주체적이다. 이런 상황 속 ‘이프푸’현상은 르세라핌이 2장의 싱글, 1장의 정규앨범으로 던진 메시지가 대중의 니즈를 충족시켰다는 것이다. 오는 8월 데뷔 1년 만에 첫 단독 콘서트를 연다. 또 다른 시작이다. 점차 믿고 듣는, 아니 믿고 보는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르세라핌이 쓸 역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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