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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03. 2023

[Movie] 샬롯 웰스의  《애프터썬》(2023)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감정. 사랑.

‘평범한 10대 소녀인 소피는 그동안 자신에게 소홀했던 아버지와 단둘이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다’


예상이나 했을까, 이 단출한 한 줄의 시놉시스가 짙은 여운을 남기게 되리라고.

영화는 조악한 캠코더 화면으로 시작한다. 장난기 가득한 11살의 소피는 30살의 젊은 아빠 캘럼을 인터뷰한다. “11살 때 아빠는 지금 뭘 할 거라 생각했어요?” 캘럼은 대답하지 않고, 화면은 멈춘다. 이윽고 빨리 감기되는 푸티지들을 지나 헤어지는 공항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사랑한다”

“사랑해”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소피는 입국장으로 들어간다.다시 캠코더 화면은 되감기 돼 여행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소피는 떨어져 사는 아빠와 매 년 여행을 가는데, 이번 여행은 튀르키예 패키지다.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해 보니 2개가 있어야 할 침대는 하나뿐이고 리조트 곳곳엔 공사가 한창이라 어수선하다. 아빠는 미안해하지만, 소피는 개의치 않고 신날 뿐이다. 아빠와 바다 수영을 하기도 하고, 포켓볼을 치 고, 밥값을 내지 않고 도망가기도 하며 추억을 하나씩 쌓아간다.


캘럼은 이번 여행에서 유난히 소피에게 당부의 말을 자주 한다. 11살이 된 사춘기 소녀에게 ‘호신술’을 가르쳐주며 자신을 지키는 법과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학교생활과 새로운 담임에 관해 물어보며 소피에게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려 애쓰다. 소피도 그런 마음을 아는지 이 여행이 끝나면 다시 떨어져 지낼 아빠에게 이렇게 말한다.

“노는 시간에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거든 그러다 태양이 보이면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 같은 하늘아래 아빠랑 내가 있는 거니깐, 그럼 같이 있는 거지”

캘럼의 생일날, 소피는 귀여운 이벤트를 계획한다. 함께 패키지 투어에 나선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라며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하지만 축하받는 캘럼의 표정은 ‘기쁨’이 아닌 것 같다. 캘럼의 불안정한 상태는 툭툭 튀어나온다. 소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서 청소년을 넘어가는 시기에 타인보다 격동하는 자신의 세상이 커서 아빠의 흔들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여행의 마지막 밤 파티에선 데이빗 보위가 함께한 퀸의 <under pressure>(1981)가 흐르고 소피는 캘럼의 손에 이끌려 함께 춤을 춘다. 노래가 절정으로 갈수록 둘의 행복한 모습과 섬광 속 몸부림치는 캘럼, 어른의 소피가 반복적으로 교차한다.

거리의 사람들, 세상의 실체를 안다는 건 끔찍한 일이야. 착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 날 내보내 줘! 이건 우리의 마지막 춤이야 우리 자신의 모습이지’  -under presseure


집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 캘럼은 캠코더에 소피를 담고, 그런 캘럼을 바라보며 소피는 장난을 친다.


“사랑한다”

“나도 사랑해”

“잘 가”


멈춰버린 화면과 어른이 된 현재의 소피. 카메라는 360도 돌아가고 그 맞은편엔 캠코더를 든 캘럼이 있다. 캘럼은 캠코더를 끄고 문을 열고 나간다. 아니 들어간다. 어둠 속 반짝이는 불빛 속으로.


선형적으로 진행된 서사는 단편적인 DV캠코더 시퀀스가 등장하며 우리가 본 장면이 어른 소피가 소환한 11살의 소피임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캠코더를 매개체로 과거로 플래시백 하며 현재보다 과거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표현한다. 감독 샬롯 웰스가 인터뷰에서 “스크린에 재생되는 모든 순간이 자연스럽고 생생한 현재로 느껴지길 바랐다”라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든 장면이 실제 일어난 일이라곤 볼 수 없다. 시간, 공간적 구조상 소피가 관찰할 수 없는 몇몇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카펫을 사러 갔을 때의 아빠와 검은 바닷속으로 달려가는 아빠처럼 소피의 시선이 없는 곳에선 불안정한 캘럼이 등장한다.


어두운 클럽 안 사이키델릭한 조명 아래 춤인지 몸부림인지 알 수 없는 몸짓을 반복하는 캘럼을 통해 그가 딸과의 시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 중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딸과 놀아주기 위해 일찍 풀어버린 깁스와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지은 알 수 없는 표정, 때론 널브러져 있는 모습까지. 소피는 캠코더 화면 속 캘럼의 나이가 된 지금, 서로를 찍어주며 남긴 기록을 통해 기억을 꺼낸다.


영화는 모든 걸 보여주는 듯하면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튀르키예의 11살 소피와 30살 생일을 맞은 소피만을 보여주며 그 시간의 틈에 있었을 서사를 관객이 상상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나’로 의식을 옮겨가게 한다. 《애프터썬》은 극장에서 멀어질수록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시간의 틈을 관객 스스로 채우게 하는 힘이 있다. 어느새 관객은 나의 아버지는 어땠지? 엄마는 내 나이에 어땠지? 라며 겪지도 않은 추억을 꺼내게 되고,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묘한 울림은 나의 중심으로 옮겨 가게 된다.


캘럼 역의 폴 메스칼은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의 중심은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가장자리는 꽤나 복잡하다” 각자가 느끼는 복잡한 가장자리는 다르겠지만 영화가 말하는 따뜻한 중심은 하나이다.

그건 아마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랑, 사랑,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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