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여 프레임 극복하기
여적여. "여자의 적은 여자"(사실 이 말보다 여성 생식기를 지칭하는 단어가 '여자'를 대신해서 더 많이 쓰이지만)라는 이 말에 대다수의 남초 커뮤니티는 동의의 시그널을 보낸다.
'인기 판독기'라는 제목으로 네이트판의 댓글을 캡쳐하며 조소를 날리는 건 남초 커뮤니티에서 여적여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여자 연예인 게시물에 달린 악플과 인기가 비례한다는 것이다. 태연, 김연아, 수지, 설현, 최근에는 성소까지 수많은 여자연예인이 인기판독기를 통해 대세냐, 아니냐 논쟁에 휩쓸리며 저속한 평가를 당했다.
여적여는 이외에도 ‘남초학과vs여초학과’, ‘남초직장vs여초직장’ 등 여러 바리에이션이 존재하는데 기저에 깔린 심리는 모두 동일하다. 여성은 감성적 존재이며 대중적 인기 혹은 집단 내 영향력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아 파벌을 만들고 시기와 질투로 상대를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이 남자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드문 일이지만 가끔 적용되더라도 개인의 특징으로 분류될 뿐 남성 전체로 확대되지 않는다. 사랑에 눈 먼 오델로가 죄 없는 카시오를 찔러 죽여도 이는 오델로의 성격이 문제인거지 남성 전체의 일이 아니다. DJ와 YS가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 나뉜 것처럼 정치판에서 계파가 쪼개져 너 잘났네, 나 잘났네 다퉈도 대의를 위한 권력쟁탈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될 뿐이다. 남여의 차이가 없음에도 우리는 여성을 쉽사리 폄훼한다.
따라서 <이브의 모든 것>을 볼 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여적여 프레임으로 작품을 해석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의 상징인 '이브(Eve)'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주인공 이브 해링턴(앤 백스터)이 연극계의 스타로 태어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패악질을 부리는 게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이브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면 오해의 여지도 없다는 현실에서 우리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런 설명을 붙여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한계는 분명하다. 모든 남성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좌지우지할 수 권력자라는 사실은 이 작품에 찬사만 보내기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다만 참작할 여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여성참정권이 보장 된지 몇 년 지나지 않은 1950년 작품이라는 사회적 배경. 이브가 악녀의 전형으로 남아 수많은 작품에서 차용되어 당시의 능동적 여성이라는 지위를 상실한 점 등을 고려해야만 우리가 고전에서 되새길 교훈과 버려야할 편견을 구분할 수 있다.
아카데미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6개를 수상한 <이브의 모든 것>은 여적여 프레임을 거두고 본다면 영화사에 남을 완벽한 군상극 중 한 편이다. 냉정하고 계산적인 쇼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배신과 음모. 그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해내며 행복을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자존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138분 동안 연이어 터지는 명대사 속에서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의 내면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스크린에 단단히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이브의 모든 것>을 접하는 하루 동안 우리의 내면도 덜컹거리게 될 테니까.
Fasten your seat belts!! It's going to be a bumpy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