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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한 Mar 06. 2017

로건(Logan, 2016)

'있음'의 증명

로건 (Logan, 2017)


엑스맨 시리즈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뭘까. 나는 “‘있음’을 증명하느냐, 못하느냐”로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뮤턴트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인류에게 자신들의 ‘있음’을 인정받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엑스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고 대전제다. ‘있음의 인정‘이라는 대전제 프로페서X의 온건파와 매그니토의 급진파로 갈라지는 방법론은 드라마성을 극대화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있음‘의 증명이란 대전제가 붕괴되면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가 지구를 수백, 수천번 박살내도 영화는 실패로 향할 뿐이다.


<엑스맨: 아포칼립스>가 망한 이유도 대전제가 박살났기 때문이다.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에서 미스틱의 활약으로 뮤턴트들의 ‘있음’이 인정받았다. 자비에 영재학교는 정부의(인정 혹은) 묵인 하에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뮤턴트들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도 차차 옅어지고 있다. <아포칼립스>에서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 암살을 기도해 신분을 숨기고 도망다니는 처지인 매그니토뿐이다. 부활한 아포칼립스 존재를 ‘없음’으로 되돌리기 위한 여정은 ‘있음’을 향해 내달리는 엑스맨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엑스맨을 부정하는 엑스맨을 받아들이고 감정적으로 동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로건>의 흘륭함은 엑스맨 시리즈의 대전제에 단단히 내린 뿌리에서 시작된다. <로건>의 세계에서 뮤턴트의 맥은 끊겼다. 돌연변이를 막는 유전자변형식품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힘을 모아 ‘있음’을 증명하던 엑스맨 동료들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고로 등장하지 않는다. 천애고아가 된 로건과 로라는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에서 가장 처절하고 절박한 목표를 세워 자신들의 있음을 증명하려 멀쩡하지도 않은 몸과 정신상태로 이리 뛰고 저리 구른다. ‘일단 살아야 한다’는 목표 말이다. 이런 조건이라면 <로건>보다 더 엑스맨스러운 엑스맨 시리즈가 있던가.


석가모니의 말처럼 인간사 모든 고통은 ‘있음’으로 존재한다. 가난이 있어서 힘들고. 병이 있어서 힘들고. 차별이 있어서 힘들고. 집착이 있어서 힘들다. 하지만 오늘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삶의 순간들을 희생하는 엑스맨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있음을 외면하기는 쉬워도 받아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매순간 우리 주변의 있음을 응시해야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집, 안전한 곳을 지킬 수 있다.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줄평: 엑스맨들이 사라져도 엑스맨만이 말할 수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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