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 신의 놀이 듣다가
최근에 영화 보는 태도를 바꿨다. 상징을 찾아가며 해석하듯이 영화를 보다가 이야기에 보다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감상문의 형식도 내 생각을 더 풀어가는 방식으로 바꿨다. 계기는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라라랜드> 리뷰 때문이었다. 글쓴이는 ‘와이셔츠=꿈, 커피=현실’이라는 도식을 만들고 영화를 해석했다. 미아(엠마 스톤)가 처음 오디션을 보던 날 순백색의 와이셔츠에 커피가 쏟아지는 장면을 꿈이 현실에 방해받는다는 상징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개연성은 갖춘 리뷰였고 자기만의 해석을 하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글에서 나는 강렬한 거부감을 느꼈다. 우선 작품해석의 측면에서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에 이물질이 묻어 오디션에 실패하는 건 고전영화의 전개를 그대로 따라온 <라라랜드>라면 감독이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했다기보다 부담 없이 사용한 장치였을 확률이 더 높아 보였다.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는데 그 상징분석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로 ‘신의 놀이’에 푹 빠져버린 대중이다.
신은 독생자나 예언자를 보내 자신의 뜻을 전할지언정 스스로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다. 단지 전지전능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완전무결한 판단을 내리고 단죄할 뿐이다. 신의 선택이 개인이나 집단에게 크나큰 고통이 되더라도 그 선택을 원망할 수는 있을지언정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 가치판단이 없는 절대중립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은 어떤 선택이든 가치판단을 포함하며 완전무결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신의 놀이’에 빠지면 이 단순한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절대적 관찰자라도 되는 듯한 태도로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는 해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본인과 다른 의견은 모두 묵살되거나 오답으로 처리된다. 개인과 집단에게 큰 고통을 선사하는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더라도 당연히 느껴야할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대신 오히려 고통 받는 대상을 이성적이지 못한 인간들이라며 비하하는 일도 벌어진다.
‘신의 놀이‘는 한국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고원인을 규명해달라며 단식투쟁을 하던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일베 유저들. 박근혜정권이 무슨 잘못을 했냐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두르고 광화문에 나온 참가자. 지지하는 대선후보 외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욕설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만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신의 놀이에 빠졌다는 공통분모를 공유한다.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이라는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의 놀이는 때로 무관심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상징해석 하는 모든 이를 탓하려는 글은 아니다. 왜냐면 상징해석으로도 깊은 깨달음을 선사하는 좋은 평론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다만 ‘위대한 예술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다‘는 말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평론도 하나의 예술인만큼 영화를 접한 우리의 태도도 해답을 내놓는데서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을 던지는 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위대한 예술을 죽은 것으로 만들지 않고 영원히 살아 숨 쉬게 하는 방법이며,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닫힌사회를 극복하고 열린사회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작은 노력이기도 할테니까.
2016년 발표한 이랑의 두 번째 앨범 <신의 놀이>의 타이틀곡이다. <2017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상‘에 선정됐다. 그보다는 시상식에서 월세 낼 돈이 없다며 트로피를 경매로 50만원에 팔아버린 파격적인 수상소감이 더 화제가 됐다.
목수/성우/농부/서예가/제빵사/택배기사/한복제작자/마사지사/바텐더/요리사/뇌공학자/바이오공학자/바리스타/직조사/드러머/댄서/만화가/기타리스트 등 22명의 직업인들이 일하는 동작을 참조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프로젝트명이 <우리의 일은 춤이 된다>라고 한다.
이런 설명을 떠나 2박 3일 찬양해도 모자랄 앨범이다. 지금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꼭 들어야 한다.
이랑 – 신의 놀이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때로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좋은 이야기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나요
요즘도 무섭게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하고 계시는가요
중년의 나이에도 절망과 좌절의 무게는 항상 같은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만난 것 같은 이야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그들의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나요
성배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과 복수를 하려고 하는 사람
결국에는 모두가 집을 떠나면서 시작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단순한 영웅은 사람들을 대신해 제물로 바쳐져
죽음을 맞고 사람들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지요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좋은 이야기는 향기를 품고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죠
모든 이야기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비극
희극은 제물이 흘리는 피를 받는 입구가 넓은 모양의 접시
어쩌면~난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몰라
어쩌면~ 난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음악듣기: https://youtu.be/t6gDp9IsBg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