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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한 Apr 06. 2017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재앙은 스스로가 한걸음씩 다가가는 거야

 4월 1일에서 하루 더 흐른 지난 일요일에 장국영 영화 4편을 몰아봤다. <영웅본색1,2>, <아비정전>, <패왕별희>. 스크린에서 본 건 처음이라 마치 신작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래전에 본 작품들이라 스토리를 까먹은 이유가 컸으리라. 이래서 영화는 재관람이 필수다. 아침 10시에 시작한 정주행은 밤 11시에 끝났는데 닷새가 지난 지금도 장국영의 그림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본 <패왕별희> 여운이 길고도 짙다.

<패왕별희>를 처음 본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45분의 수업시간 동안 볼 수 있던 분량은 데이(장국영)과 시투(장풍의)의 유년시절까지였다. 뒷부분이 궁금해서 방과 후 비디오가게에서 테이프를 빌려 나머지 부분은 집에서 봤다. 그전까지 내가 좋아한 영화들은 <인디펜던스 데이>, <아마겟돈>류 였기 때문에 ‘슬픔‘이라는 감정과 ’명작이다‘라는 경외감을 느낀 건 <패왕별희>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가장 슬픈 영화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패왕별희>를 넣는 건 아마도 강렬했던 첫 경험 때문 일거다.

장국영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꼽히는 건 <아비정전>이다. <동사서독>, <해피투게더>로 이어지는 절대고독의 상징인 ‘발 없는 새’라는 정체성을 구현한 작품이니 그럴 만도 하다. <패왕별희> 역시 ‘아비’라는 캐릭터에 빚을 지고 있으니 말이다.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형과 누나들에게 치이고 너무 바빴던 부모님을 둔 탓에 유모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아서 외로웠다는 성장배경도 장국영이 갖고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분석도 많다.

하지만 <아비정전>만으로는 장국영이란 인물을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품고 있던 절대고독의 근원은 성장배경뿐만 아니라 그를 가만두지 않던 세상의 지나친 관심도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배우보다 가수로 먼저 인기를 얻었지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파파라치 때문에 은퇴를 선언하고 캐나다로 떠났던 일. 컴백 후 배우로써의 성취보다 그의 성적취향을 공격하던 언론과 등을 돌려버린 팬들은 장국영이 미처 닿을 수 없는 영원한 고독의 공간을 찾아 떠나게 만든 이유였을 것이다.

편견 어린 시선과 맞서 싸워야했던 장국영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세상을 등지며 남긴 “마음이 피곤하여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는 유언. 그리고 파란만장한 중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에 원치 않게 휘말린 데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오열하며 남긴 “재앙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한걸음, 한걸음씩 다가가는 거야”라는 대사의 일관성은 <패왕별희>가 장국영의 도착하지 않은 시간까지 스크린에 투영한 경이롭고 애틋한 ‘인생 작품’이라는 나만의 결론을 확고하게 만든다.

‘영화당-장국영 추모 특집’에서 김중혁 작가는 요절 후 금세 잊고 마는 하는 스타들 사이에서 유독 장국영의 추모가 꾸준한 이유에 대해 “우리 속의 아프고 약하고 작았던 마음들을 대변했는데 그 마음이 다치고 훼손된 거 같아서”라고 말했다. 장국영을 액막이무녀로 내세워 그가 겪는 처절한 고독의 시간을 ‘지켜보며’ 어떤 위안을 받았다는 죄책감을 떨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고독의 시간이 너무도 빛나고 아름다워 차마 눈을 돌릴 수 없기에 피할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이면서도 매년 돌아오는 4월 1일을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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