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 - 홀로 있는 사람들 듣다가
2000년대 초반에 귀 좀 트였다 까부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언니네 이발관’은 암묵적 기피밴드였다. 말할 필요 없이 국내 최고의 밴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언급은 곧 반대 없는 칭찬으로 이어졌다. 의미 없는 바이트낭비를 할 바에는 없는 욕이라도 쥐어짜서 관심을 받는 게 생산적 활동이었다.
2008년 [가장 보통의 존재]가 발매된 후 커뮤니티에서 ‘언니네 이발관’은 금기어가 됐다. 요즘 말로 ‘인싸밴드’가 됐기 때문이다. 언니네를 몰랐던 사람도 언니네를 추천하고 이석원의 에세이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까부는 사람들이 제일 견딜 수 없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이다. 모두 언니네를 들었지만 누구도 언니네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됐다. 모두 듣던 언니네는 아는 사람은 아는 언니네로. 아는 사람만 아는 언니네에서 ‘~~하는 밴드 근황‘으로 유머게시판에서 더 친숙한 존재가 됐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가장 특별한 존재로. 가장 특별한 존재에서 가장 잊혀진 존재까지 변하는 시간은 10년 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근황이 궁금했던 밴드의 새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오늘 공개됐다. 편집증적 집착이 관여했음이 분명한 풍성하고 섬세한 소리의 잔치. 나도 모르던 내 감정을 촘촘하게 분절시켜놓은 가사 같은 시들.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앨범을 듣다가 불안하게 떨리는 이석원이 “그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결국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막 전역을 하고 가장 보통의 존재까지는 어찌어찌 가능했던 것 같은 2008년을 지나 어느덧 세상이 바라던 사람이 아님을 실감하는 2017년을 살고 있는 내게 ‘그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라는 말이 필요했음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았다면. 아니 언니네가 앨범을 조금 더 빨리 냈다면. 그 시간들을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원망 아닌 원망으로 잊을 수 없는 인생의 곡을 하나 늘리고 나니 2017년의 6월의 첫번째 날이 저문다.
2017년 발표한 6집 [홀로 있는 사람들]의 동명 타이틀 곡이다. 23년의 활동을 마무리 짓는 앨범이기도 하다. 9곡이 수록되어 있고 그에 따라 곡을 만든 여담이 붙어있는데 유일하게 이 곡은 부연설명이 없어서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언니네 이발관 – 홀로 있는 사람들
나는 세상이 바라던 사람은 아냐
그렇지만 이 세상도 나에겐
바라던 곳은 아니었지
난 그걸 너무 빨리 알게 됐어
너무 빨리
말하고 싶어
그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라고
원하고 있어
그대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길
나이 기억 그 모든 꿈들
그저 다 모두 다 그래 그래 그래
너에 대한 나의 모든 꿈은 이렇게 깨져버리고
나는 다시 남겨졌네
말하고 싶어
그 모든 게 니 잘못은 아니라고
원하고 있어
이런 나의 마음들이 전해지길
나이 추억 그 모든 꿈들
그저 다 모두 다 그래 그래 그래
말하고 싶어
모든 것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원하고 있어
그대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길
노래
언젠간 끝내야 하지만
아직 나는 여기 서 있네
그래
언젠간 끝나고 말겠지
그래도 난 아직 여기에
너와 함께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우리 함께 계속 노래해
음악듣기: https://youtu.be/GNZYSJF-6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