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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산책

난 아직 바다끝을 몰라

최백호 - 바다 끝 듣다가

by 고요한

땅에 발붙이고 사는 입장에서 땅끝은 익숙해도 바다끝이란 개념은 생소하다. 하지만 바다끝은 땅끝으로 볼 수 있으니 조금 꺼낼 이야기는 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에 해남 땅끝마을에 갔다. 보이스카웃 겨울방학 수련회였던 거 같다. 오며가는 버스 안에서 들었던 H,O.T.나 S.E.S의 음악들은 기억이 나는데 정작 땅끝마을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다.


땅끝이라기에 영화에서 보던 깎아지른 절벽 같은 걸 상상했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풍경은 여느 해안가와 다름없이 끄트머리에 빨간등대가 우두커니 서있는 회색빛의 방파제. 파도치는 겨울바다에 맞서는 방파제를 돕기 위해 잔뜩 박혀있던 트라이포트 정도다. 땅끝마을비 앞에서 단체사진도 찍은 것 같은데 나중에 앨범을 찾아봐야겠다.


(사리분별이 멀쩡할 때)졸업한 적도 없는 초딩들이 ‘끝’이라는 개념은 너무 어렵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이 땅끝마을을 코스에 넣은 이유는 모르겠다. 중간에 들렸던 진도의 울돌목이나 벌교의 낙안읍성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물론 낙안읍성 명물이라며 유자청을 5만원에 팔았던 일이 어린 나이에도 충격이 꽤나 강렬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후 20년이 동안 전라도 꽤 여러 곳을 여행했다. 여수에서 게장도 먹어보고 순천만도 구경하고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에서는 자전거도 타보고. 그런데 아직도 해남 땅끝마을은 근처도 간 적이 없다. 딱히 연고도 없는 걸 생각하면 평생 갈일이 없을지도.


어쨌든 기약 없는 해남 땅끝마을은 아니더라도 다행인 것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 땅도 끝이 많고 바다도 끝이 많다. 그리고 나는 조만간 다른 바다끝으로 갈 예정이다. 이제는 끝이라는 개념과 조금은 친해져버린 30대 초입에 도착한 바다끝에서 나는 무엇을 놓아주게 될까. 그 끝이 궁금한 만큼 이번에는 꼭 멀쩡한 기억으로 바다끝과 마주하련다.



2017년 발표한 앨범 [불혹]의 타이틀곡이다. 라디오에서 쏠쏠히 리퀘스트 되는 스테디셀러 ‘부산에 가면’으로 한 번 합을 맞췄던 에코브릿지와 다시 작업을 했다.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노을빛 추억들이/저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난 우리를 몰라”이다. 체념하듯 무심히 툭 던지는 최백호의 “몰라”에 나도 나를 던져버렸다.



최백호 – 바다 끝


먼 아주 멀리 있는
저 바다 끝보다 까마득한
그곳에 태양처럼 뜨겁던
내 사랑을 두고 오자


푸른 바람만 부는
만남도 이별도 의미 없는
그곳에 구름처럼 무심한
네 맘을 놓아주자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
난 우리를 몰라


짙은 어둠만 남은
시작도 그 끝도 알 수 없는
그곳에 물결처럼 춤추던
너와 나를 놓아주자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람에 날려 흐트러지면
난 우리를


오~ 아름다웠던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
난 우리를 몰라


음악듣기: https://youtu.be/GhjtRvanF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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