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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Oct 27. 2022

엄마는 몇 살이야_009. 장바구니

아낄수록 아까운 너의 리스트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를 열어보자. 절반 이상이 내 물건이 아니라면 아마 당신은 엄마다.


엄마가 되고 소비 패턴이 아이 위주로 돌아서면서 이젠 여유가 있어도 아이 물건 먼저 뒤적이는 게 습관이 됐다.

"머리핀 예쁘네. 계절도 바뀌었는데 클릭."

"운동화 작아질 때가 됐는데 클릭."

"공룡치킨 몇 봉지 쟁여 놔야겠다 클릭."

"초콜릿 그만 먹여야 되는데... 클릭."

"그래 바로 이 원피스야! 클릭."


내 물건을 고를 때는 놓쳐서 못 산 물건에 대해 딱히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냥 내 것이 아니었으려니 한다. 그런데 아이 물건은 놓쳐 버리면 어찌나 아쉬운지 모른다. 올봄에 사이즈가 170까지 밖에 안 나오는 에나멜 구두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다. 분명 금세 앞코가 까질 텐데... 그냥 5번 신는다 생각하고 살까 말까 살까 말까 하는 사이에 제품은 품절. 사이즈 큰 건 사도 작은 건 살 수 없는 게 아이 물건인지라 나는 그 구두를 포기하고 어찌나 후회를 헀는지 모른다. 알록달록 리본이 달린 구두를 신고 폴짝폴짝 뛰는 너의 모습이 너무 예뻤을 텐데...


이런 경우를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아이 물건을 고를 때는 유난히 집중력이 발휘된다.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검색하고 비교하고 최저가, 최적가를 골라서 구매 완료! 이런 집중력으로 공부했으면 장학금도 받았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엄마빌리티를 발휘해 구매한 물건도 최종 관문을 넘지 못하면 반품 처리되기 일쑤다. 바로 아이의 눈.

"엄마, 이거 맘에 안 들어."

한 마디면 바로 반품이다. 내 맘에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 맘에 드는 것도 중요하니 말이다. 아이들의 거절 사유는 상상초월이다. 엄마 눈에 귀여워 보이는 곰돌이가 아이 눈에 징그러워가 되기도 하고, 엄마 눈에 세련돼 보이는 컬러가 아이 눈에 회색이잖아가 되기도 한다. 반짝이는 게 좋다는 아이의 표현은 말 그대로 글리터처럼 반짝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실제 LED 불빛이 반짝이는 것, 을 의미할 수도 있다. 파란색이라는 아이의 표현 속에는 무한히도 다양한 파란색이 있다. 바다 같은 파란색, 하늘 같은 파란색, 구름이 없는 하늘색, 구름이 있는 하늘색, 어두운 파란색, 밝은 파란색, 초록이 섞인듯한 파란색, 민트색인지 좀 헷갈리는 파란색...


그래서 나는 물건을 사기 전에 아이로부터 정보들을 최대한 뽑아낸다. 자세하고 또 자세하게.

"원하는 빨간색이 주황에 가까운 색이야 아니면 정말 새빨간 장미색이야?"

"하늘하늘 치마가 주름이 많이 잡힌 모양이야 아니면 얇고 투명해 보이는 천이야?"

정보들을 바탕으로 장바구니에 후보 1, 2를 담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컨펌을 받는다.

"1번이 마음에 들어 2번이 마음에 들어?"



물론 모든 물건들을 이런 과정을 거쳐 살 수는 없다. 내가 하루 종일 쇼핑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와 항상 의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나의 장바구니에는 늘 아이 물건이 그득그득하다. 품절 임박이 아닌 상품들 위주로, 엄마의 고민 안에서 처리할 만한, 아이의 취향에 가까운 그런 물건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같이 쇼핑몰을 걸으며 서로에게 어울리는 걸 골라줄 수 있을 것이다.

아, 언젠가 내 아이의 장바구니에 엄마 물건이 담기는 날도 올까? 그건 좀 많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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